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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1월호

춤과 환경 구상나무는 죽기 전에 춤을 춘다

구상나무는 구과목 소나뭇과의 식물이다. 바늘잎은 성인 손가락 절반 정도로 짧고 끝이 살짝 갈라져 있다. 잎이 길고 끝이 뾰족한 소나무나 잣나무와는 확연히 다르게 생겼다. 한국이 원산지이며 한국에만 자생하는 특산 나무다. 수형樹形, 종류나 환경에 따른 특징을 지닌 나무의 모양이 무척이나 아름답다. 6·25 전쟁 당시 미군이 구상나무의 아름다움에 반해 미국에 가져간 이후 세계에서 가장 비싼 크리스마스 트리로 팔리고 있다. 정작 한국 사람에게는 이름조차 낯선 한국 토종의 글로벌 스타인 구상나무는 현재 멸종위기종이다.
나무는 절대 사람을 먼저 부르지 않는다. 손짓도 하지 않는다. 산짐승처럼 배설물이나 발자국 같은 흔적을 남기지도 않는다. 비슷한 바늘잎 나무들 사이에 숨어 있는 구상나무를 찾아 숲속으로 들어가는 일은 구상나무와 숨바꼭질하는 기분마저 느끼게 했다. 구상나무를 힘겹게 찾았지만 생각보다 아픈 녀석이 많았다. 깊은 산속 구상나무 군락 가운데 10m 넘는 구상나무 거목들이 하얗게 말라 쓰러진 모습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본다. 나무가 가만히 서 있다고 아프지 않은 것이 아니다. 쓰러진 나무만 아픈 나무가 아니다. 겉보기에 건강한 구상나무도 곧 다가올 죽음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어쩌면 나무는 이토록 병이 들기 전에 자신 만의 움직임으로 세상에 신호를 보냈을 것이다. 새와 산짐승·벌레는 그 신호에 답했을지도 모른다. 언어가 다른 인간끼리는 음성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손짓과 발짓·몸짓으로 의사소통할 수 있고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그렇기에 춤은 만국 공통 언어라는 말까지 있다. 그래서인지 인종·종교·언어가 달라도 춤을 보고 있으면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존재임을 느끼는 순간이 많다. 심지어 인간과 동물 간에도 간단한 보디랭귀지가 통하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는 나무와 음성 언어는커녕 움직임을 통한 의사소통도 할 수가 없다. 상식적으로 나무와 인간은 당연히 소통할 수 없지만 이런 맥락에서 보면 나무와 인간이 아무런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의아하기도 하다.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나무는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는 생각. 하늘은 언제나 파란색이라는 생각. 여름에는 비가 오고 겨울에는 눈이 내린다는 생각. 미세먼지가 하늘을 뒤덮었을 때 푸른 하늘의 소중함을 깨달았듯 당연한 것은 그 소중함을 간과하기가 쉽다. 이미 당연하지 않게 됐을 때는 너무 늦다. 나무는 당연히 아무런 몸짓도 할 수 없는 움직이지 못하는 존재로만 생각했다. 나무의 몸짓과 움직임을 이해하는 데에 우리가 얼마나 무심했는지 깨닫는다. 기후변화로 뿌리를 드러낸 채 죽은 구상나무는 대부분 수형이 뒤틀려 있다. 마치 죽기 전에 온몸을 비틀고 가지를 구부러트리면서 죽음을 받아들이는 춤을 춘 것만 같다. 나무도 누울 수 있고, 움직일 수 있구나, 춤을 출 수 있구나! 깨달을 때는 어쩌면 지구상 마지막 구상나무가 사라져 버린 뒤일지도 모른다. 하루빨리 구상나무가 추는 슬픈 죽음의 춤이 멈추길 바란다.

박진성 환경활동가. 주중에는 판교 IT 노동자로 일하고, 주말에는 환경활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평생직장은 자연이라는 믿음으로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뒤늦게 공부하고 있다. | 그림 김중석 일러스트레이터. 그림책 작가, 전시기획자, 벽화 아티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그림책 《나오니까 좋다》 《그리니까 좋다》 《잘 그리지도 못하면서》를 쓰고 그렸다.

※본 원고는 지면 관계상 편집되었습니다. 원문은 웹진 [춤:in]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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