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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호

박수근·김환기, 기다리고 그리다 전시 <박수근: 봄을 기다리는 나목>과 <김환기, 그·리·다·D·R·A·W >

박수근과 김환기는 한국인이 사랑하는 작가다. 둘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한국의 근현대사를 겪었다. 같은 시대에도 예술의 방향은 달랐다. 그들의 삶을 따라가며 두 사람 작품의 진면목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박수근 ‘고목과 여인’(캔버스에 유채, 45×38cm, 1960년대 전반, 리움미술관 소장)

겨울부터 봄까지 미술관에서 수군대는 그림들 <박수근: 봄을 기다리는 나목> | 11. 11~2022. 3. 1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한국인이 사랑하는 화가라지만 ‘가난했지만 이웃을 사랑한 화가’ 정도로만 박수근을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열리는 <박수근: 봄을 기다리는 나목>은 미술관 개관 후 처음 선보이는 박수근 개인전으로, 양구군립 박수근미술관과 유족 연구자 소장자의 협조로 열린 대규모 회고전이기도 하다. 유화·수채화·드로잉·삽화 등 모두 163점이 전시돼 역대 최다인 데다 이 중 ‘노인들의 대화’ ‘소녀’ 등 유화 7점과 삽화 12점은 국내에 처음 선보인다.
박수근의 초기작과 수집품이 포함된 전시 1부는 주체적이고 개방적인 그의 면면을 보여준다. 그는 부친의 사업 실패로 보통학교 졸업 후 독학으로 화가의 길을 걸었다. 12살 무렵 책에서 본 밀레의 ‘만종’에 감동한 박수근은 직접 밀레 화집을 만들었다. 빈센트 반 고흐, 파블로 피카소의 화집도 수집했다. ‘철쭉’ ‘겨울 풍경’ 등 초기작을 보면 인상주의 화풍을 시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펜화·판화·프로타주 등 다양한 작업을 하면서도 그를 대변하는 단순성, 흑백 대비와 같은 회화 양식을 다듬어갔다.
전성기는 1953년부터 1963년까지다. 박수근이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서 살던 10년간이다. 1950년 평양에서 결혼한 박수근은 6·25전쟁이 터지자 남하했고, 2년 뒤인 1952년에야 가족을 다시 만나게 된다. 그는 미군 PX에서 초상화가로 일하며 돈을 모아 1953년 창신동 집을 마련한다. 때마침 같은 해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집’으로 특선을 수상하며 그는 점차 이름을 알린다. 이 기간을 아우르는 전시 2부와 3부에서는 그의 대표작을 감상할 수 있다. ‘길가에서’ ‘나무와 두 여인’ 등은 전람회 출품작이라 판매용 그림에 비해 구도가 매우 안정적이고 크다.
이 무렵 한국에 체류하던 외국인들도 박수근에게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미국 개인전을 준비하던 중 급작스럽게 건강이 악화돼 1965년 타계한다. 4부에 전시된 후기작을 찬찬히 살펴보면 회백색뿐 아니라 1950년대 중반부터 여러 겹 사이에 파스텔톤을 사용했음을 볼 수 있다. 짧은 생이지만 작품에 열성을 다했던 박수근이기에 비로소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라 칭해진다는 걸 깨닫는다.

<김환기, 그·리·다·D·R·A·W> 전시 전경

뉴욕에서 김환기가 본 하늘 <김환기, 그·리·다·D·R·A·W> | 9. 28~12. 31 | 환기미술관

김환기는 세계시장에서 한국을 견인하는 화가다. 이 명성은 그의 끊임없는 도전으로부터 나왔다. 김환기의 생애를 편의상 구분하면 넷으로 나누어진다. 일본 유학 시절(1931~1937), 서울대?홍익대 교수 시절(1938~1951, 1959~1963), 파리 시절(1956~1959), 뉴욕 시절 (1963~1974)이다.
환기미술관에서 열린 <김환기, 그·리·다·D·R·A·W> 전시는 그가 가장 오랜 기간 해외 체류했던 뉴욕 시절을 다룬다. 그가 작고하기까지 만든 유화·드로잉·오브제 등 총 170점의 작품이 전시됐다. 1959년부터 홍익대 미술대 학장을 맡은 그는 현실적인 직위에 만족하지 않고 1963년 ‘제7회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참가한 뒤 세계 화단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자 뉴욕으로 향했다.
현재 미술 시장에서 열광하는 김환기의 전면 점화全面點畵는 이때 탄생한다. 전시장 1층 중앙에는 작품 ‘13-IV-73 #311’이 놓여 있다. 가로 101cm 세로 150cm인 작품이지만, 공간감이 가득하다. “내가 그리는 선, 하늘 끝에 더 갔을까. 내가 찍는 점, 저 총총히 빛나는 별만큼이나 했을까.” 김환기의 일기 구절을 전시장 벽면에 새기고, 그림 선에 맞춰 도색한 덕택일 테다. 그 옆에 놓인 드로잉은 그가 점과 선을 사용해 수많은 조형 실험을 거쳤음을 보여준다.
점은 무엇인가. 김환기는 생전 일기에 “아무 생각 없이 그린다. 생각한다면 친구들, 그것도 죽어버린 친구들, 또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는 친구들 생각뿐”이라고 했다. 주변인을 살뜰히 챙기던 김환기가 10년 넘게 뉴욕에서 고독의 시간을 거치며 나온 결과가 점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전시장에 놓인 ‘Air and Sound I, 2-X-73 #321’ ‘16-IX-73 #318’ 등의 완결성에 감탄하다가도 먹먹해진다. 그의 마지막 작품이자 미완성작 ‘07-VII-741’에 남은 연필선을 보면 더더욱 말이다.
감정의 고조를 돕는 음악도 이번 전시의 특징 중 하나다. 1~3층 전시 공간에는 조용욱 작가의 음향이 퍼지는데, 음의 전개에 따라 같은 작품 앞에서 시시각각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미술관은 추후 도록에 음향 QR코드를 첨부할 예정이다.

김태언 《동아일보》 기자 | 사진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환기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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