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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10월호

서울의 ‘삘딩’ 혹은 ‘삘딍’을 찾아서 서울의 현대를 찾아서: 명패에 깃든 시간의 흔적

서울 시내를 산책하다 보면 한눈에 보기에도 예스러운 표기법으로 쓰인 명패를 발견할 수 있다. ‘삘딍’ ‘빌딍’ ‘삘딩’이라는 고색창연한 단어는 그 이름을 가진 빌딩의 탄생 시기를 말해 주는 중요한 단서이기도 하다.

반갑습니다. 저는 ‘삘딍’입니다.

서울 시내 빌딩들을 살펴보면, 이름이 새겨진 저 마다의 명패를 달고 있는 모습이 발견된다. 정부24 누리집에 들어가면 무료로 열람이 가능한 건축물대장이 빌딩의 주민등록등본이라면 명패는 빌딩의 실물 명함이라고 할 수 있겠다. 빌딩의 생년월일을 담은 머릿돌(본지 2021년 8월호 연재분 참조)과 함께 해당 빌딩에 대한 이해를 돕는 훌륭한 실마리다. 하지만 머릿돌이 그렇듯이 모든 빌딩에 명패가 부착되지는 않았다. 법으로 강제된 사항이 아닐뿐더러 건축물대장을 봐도 건물명 정보가 텅 빈 경우도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오래된 빌딩이 예스러운 명패를 달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때면 반갑기 그지없다.
지어진 지 반세기 이상 된 오래된 빌딩의 명패는 그 자체만으로 도시의 깊이를 더해 주기도 한다. 바로 빌딩의 예스러운 표기법 덕분이다. 현행 외래어 표기법에 근거한 영어 단어 ‘Building’의 한글 표기는 당연히 ‘빌딩’ 한 가지이며, 요즘 사람 중에서 이를 무시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처음부터 빌딩은 ‘빌딩’이 아니었다. 8·15 광복 이전까지 이 땅에서 ‘Building’의 외래어 표기법 중 가장 많이 사용된 형태는 ‘삘딍’이었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서 확인한 결과 1945년 이전까지 《조선일보》 《동아일보》 기사에 등장한 ‘Building’의 표기 건수를 조사해 보면 ‘삘딍’ 671건, ‘삘딩’ 370건, ‘빌딍’ 93건, 그리고 ‘빌딩’이 84건으로 파악된다. 지금은 정착된 ‘빌딩’ 표기가 당시엔 가장 소수였다. 광복 이후에는 ‘빌딩’이 점차 세를 확장해 나가지만, 일제강점기 내내 사용된 표기법은 1970년대 후반까지 신문지상에 심심찮게 등장 한다. 이러한 관성은 2차원 활자에 쓰이기를 넘어, 3차원인 도시의 명패에 새겨져 오늘날에 이르렀다. 2020년대의 서울 하늘 아래에서 여전히 빛을 쐬고 있는 ‘삘딍’ ‘빌딍’ ‘삘딩’의 사례는 다음과 같다.

빌딩을 다양한 이름으로 부른 사실의 흔적

사진➊은 필동1가에 위치한 동화빌딩(1969년 준공)의 명패이다. 광복 이전 가장 많이 쓰인 ‘Building’의 표기법 ‘삘딍’이 사용됐다. 1960년대에 지어진 빌딩답게 빌딩의 이름 부분은 한자로 처리한 점이 눈에 띈다. 요즘의 빌딩 명패들이 금속 혹은 플라스틱 현판 위에 컴퓨터로 디자인·인쇄된 것과 다르게 사람이 직접 손으로 새긴 듯한 질감에서 시간의 깊이를 느낄 수 있다.
사진➋는 명동 한복판에 위치한 조훈빌딩(1969년 준공)의 명패로, ‘빌딍’ 표기가 사용 됐다. 국문·영문 표기와 함께 빌딩 고유의 로고 C.H가 그려진 점이 특징이다. 신경 써서 로고를 새겨 넣은 정성이 지금까지 유지되는 것인지, 조훈빌딩은 준공 후 반세기를 넘긴 지금도 수만 개의 타일을 두르고 옛 모습 그대로 명동의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➌은 태평로 대로변 고층 오피스 빌딩의 효시인 해남빌딩(1962년 본관 준공, 1966년 신관 준공)의 명패이다. 《매일경제》의 1968년 11월 25일 보도에서 ‘치솟는 안하무인’이라 표현할 정도로 해남빌딩은 준공 직후부터 많은 기업을 유치해 큰 임대 수입을 자랑했으며, 서울 도심에 집중되는 자본의 표상으로 기능했다. ‘海南 삘딩’이라 새겨진 명패는 사진➊의 동화빌딩 명패와 제법 유사해 보인다는 점에서 준공 당시의 것으로 추정된다.
찾으면 찾을수록 명패는 더 많이 발견할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지난 수년 사이에 적지 않은 수가 사라졌다. 특히 서울 도심 한복판인 중구 일대에서는 2010년대 이후 본격화된 재건축·재개발 물결에 휩쓸려 많은 수의 ‘삘딍’과 그 명패가 자취를 감췄다. 대표 사례로 남대문로 5가에 있던 상가주택 중앙빌딩(1959년 준공)을 들 수 있다.(사진➍) ‘中央삘딍’이 적힌 명패가 참으로 인상적인 빌딩이었지만 2017년 중순 철거돼 그 자리에는 복합 오피스 빌딩인 그랜드센트럴 (2020년 준공)이 들어섰다.
1950~1970년대에 지어진 빌딩 대부분은 세간에 알려진 경우를 제외하면 남겨야 할 유산으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문화재로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만큼 이 무렵에 세워진 빌딩에 대해서는 보존은 고사하고 자세한 기록조차 남기기 어렵다. 우리가 빌딩을 다양하게 부른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명패 또한 그 가치를 알아보는 건축주 혹은 사업자의 선의에 의해서만 남겨지는 상황이다. 서울의 도시 공간을 가득 채우던 이름 없는 주역인 오래된 ‘삘딍’이 서울의 역사에서 지워지지 않게 더 많은 명패가 기록되고 보존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글·사진
김영준 도쿄대학 공학계연구과 도시공학전공 박사과정, 인스타그램 @서울의현대를찾아서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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