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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1월호

플루티스트 최나경 리사이틀플루트에서 현과 타악, 성악을 느끼다
2020년 겨울, 수치상 코로나19로부터 가장 안전한 곳은 대구였다.
12월 5일 0시 기준 서울의 확진자가 253명인 데 비해 대구는 3명에 불과했다.
연초에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대구는 소중한 교훈을 잊지 않았다.
성숙한 시민의식이 밑받침돼 각종 공연도 취소되지 않고 열릴 수 있었다.

2020년 12월 5일 대구에서 열린 플루티스트 최나경 리사이틀

2020년 12월 5일 대구콘서트하우스 그랜드홀. 검은색 바탕에 꽃무늬가 있는 드레스 차림의 최나경이 피아니스트 박진우와 함께 등장했다. 첫 곡인 슈만의 <세 개의 로망스 Op.94> 1곡에서 플루트 선율이 위로하듯 울렸다. 원곡인 오보에 작품이 중앙으로 음이 집중됐다면 플루트 연주는 양옆으로 퍼지는 느낌이었다. 오보에보다 더 부드럽고 따스하게 살며시 내려앉았다. 2곡은 다소 빠른 템포로 간지럽다는 듯 쭉쭉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이었다. 3곡은 비밀스러운 분위기를 띠고 여운을 남긴 채 일몰의 풍경처럼 점차 스러져 갔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최나경이 마이크 없이 얘기해도 소리가 잘 들렸다. 오랜만의 대면 연주라 특별하다며 박수 소리만 들어도 눈물이 난다고 했다. 반응 없이 싸늘한 온라인 연주회를 경험해 본 연주자들이 객석의 박수에 가슴 뭉클해하는 건 최나경도 마찬가지였다. 1년 내내 취소될까 봐 걱정하던 공연이 무사히 열려 다행이란 소감과 함께 이번 공연 주제가 ‘벨 칸토’라며 ‘노래하는 악기’로서의 플루트를 알리고 싶다고 했다.
안톤 베른하르트 퓌르슈테나우의 <일루전: 벨리니 오페라 ‘노르마’의 아다지오와 변주>는 까다로운 기교로 인해 플루티스트에게 괴로운(?) 곡이라고 소개했는데 최나경은 그 어려움을 즐기는 듯했다. 피아노 위에 소프라노 음성처럼 플루트가 얹히고 깨끗한 선율로 고도의 기교를 펼치기 시작했다. 긴장감을 더해가며 노르마 각 장면의 패러프레이즈가 나오고, 최나경의 특기인 무궁동적인 고도의 기교가 펼쳐졌다. 가끔씩은 바이올린 더블스톱으로 음을 내는 듯한 부분도 있었다. 수많은 음표를 좇아 최나경의 손가락과 입술과 폐가 부지런히 움직였다.
플루티스트인 파올로 타발리오네가 편곡한 <베르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중 환상곡>은 비올레타의 가련함이 생각나게 하는 가냘픈 곡조였다. 처연한 비올레타의 운명도 떠올랐고, <축배의 노래>에서는 플루트가 소프라노로 빙의한 듯했다. <지난날이여 안녕>에서는 박진우와 호흡이 잘 맞았다. 음악적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 반주가 최나경의 플루트를 더 돋보이게 했다. 순환 호흡의 묘기를 부리는 부분에서 최나경의 플루트는 멜로디악기라기보다 리듬악기 같은 결이 느껴졌다. 종횡무진하는 최나경의 플루트는 현악기와 타악기, 관악기, 그리고 성악까지 장르별 악기의 특성을 모두 보여줬다.

안개 같은 소리로 감정을 건드리는 플루트

2부의 시작은 포레의 <소나타 1번>이었다. 바이올린 소나타를 플루트로 편곡한 곡이다. 최나경은 연주할 때마다 2016년 세상을 떠난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가 떠오른다고 했다. 박진우도 포레 소나타를 처음 맞춰본 연주자가 권혁주여서 두 연주자에게 공통분모였다. 최나경의 연주는 한마디로 ‘현이 되고 싶은 관’이었다. 포레의 꽃잎 같은 멜로디가 중력을 잃은 채 바람을 타고 날아올랐고 따스한 톤으로 점프하듯 흩날렸다. 플루트는 화사하고 따스한 크레용화를 그렸다. 연주할 때마다 권혁주가 생각난다는 2악장에서 플루트는 조용히 망자의 이름을 불러보듯 연주했다. 감정에 북받친 듯 2악장을 마치자 최나경의 눈가에는 그렁그렁한 눈물이 맺혀 조명에 반사돼 반짝였다.
3악장에서는 분위기를 전환해 재잘재잘대는 부분도 나오고 다시 섬세하고 예민하게 감회에 젖는 부분도 지나갔다. 4악장은 포레 곡 특유의 고귀함을 느낄 수 있는 악구들이었다. 피아노는 별처럼 쏟아져 흩뿌려졌고, 플루트는 안개 같았다. 마지막 부분의 눈부신 처리도 돋보였다.
마지막 곡은 보네의 <비제 오페라 ‘카르멘’ 중 환상곡>이었다. 보면대가 거추장스러운 듯 멀리 치운 최나경이 연주를 시작했다. 고난도의 기교와 카르멘의 팜 파탈적 특성이 합쳐져 최나경과 가장 잘 어울리는 곡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하바네라 부분은 메조소프라노가 노래하듯 성악적이었고, 아찔한 기교를 듣고 있자니 플루트의 내부가 부풀어오르는 듯한 환상이 느껴졌다.
첫 번째 앙코르는 엔니오 모리코네의 <시네마 천국> 모음곡이었다. 2020년 세상을 떠난 거장을 기리는 선율이 가슴 뭉클했다. 정적 속에서 독백하는 듯한 피아노 연주 부분이 정결하게 울렸다.
두 번째이자 마지막 앙코르는 비틀스의 <I Will>이었다. 폴 매카트니가 첫 부인 린다에게 사랑을 고백한 작품으로 “언제까지나 당신을 영원히 사랑하겠다”는 가사 내용이 좋아 꼭 연주하고 싶었다고 했다. 최나경의 플루트는 장식음을 많이 넣느라 분주했다. 1시간 40분 동안 청중이 푹 빠질 수 있도록 연주하는 플루티스트는 흔치 않다. 관악기 플루트가 현과 타악, 성악의 특성에 팔을 뻗치고, 살아가며 느끼는 희로애락과 휴머니즘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공연마다 새로움을 들려주는 ‘최나경’은 ‘플루트’ 하면 떠오를 것 같은 이름이다.

글 류태형_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제공 대구콘서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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