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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1월호

코로나 시대의 새해 풍경덜 절망하고, 더 공생할 수 있도록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우리 일상을 강제로 철거하고 재조합하고, 세상 풍경을 완전히 바꿔버렸다는 것은 새삼 지적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독자가 이 글을 읽는 시점은 2021년 1월.
2021년에 계신 미래의 시민 여러분, 혹시 그때에는 백신 접종이 시작됐나요? 우리 상황은 개선됐나요?
모든 것이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는 시동을 걸고 있나요? 도리어 묻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달력의 숫자가 2020에서 2021로 바뀌었다고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다만 우리의 공감 능력이 충분히 남아 절망에서 조금씩 멀어지길 바랄 뿐이다.
이 원고를 쓰고 있는 오늘은 2020년을 갈무리하는 방송사의 연말 시상식이 열리고 있다. 12월 초에 일찌감치 뮤직 어워드를 치러버린 Mnet의 <MAMA>(Mnet Asia Music Awards)에서는 은갈치 같은 전신 타이즈를 입은 여성이 무대 위에서 자꾸 사람에게 소독액을 분무하더니, SBS <연예대상>에서는 시상자와 수상자 사이에 길쭉한 전달봉을 만들어 트로피를 건네는 기괴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관객석에 앉은 연예인들은 특수 마스크를 쓰고 있는데, 행사 내내 마스크를 착용해도 시청자가 식별할 수 있게 해당 연예인의 하관을 프린트한 마스크다. 연예인들의 얼굴을 본뜬 인쇄 마스크 위의 가짜 입은 모두 환하게 웃고 있다. 인조 웃음을 띤 마스크를 하고, 트로피 전달봉으로 상을 수여하며 무대 위 마이크만은 하나를 나눠 쓰는 연말 시상식을 목도하게 될 거라고, 1년 전에는 상상이나 했을까.
2019년 연말에 2020년의 미디어 환경을 예측하는 칼럼을 썼다. 2019년에 성공한 영화를 짚어보고, 그에 따라 2020년에 개봉을 앞둔 작품을 정리하며 미래의 트렌드와 장르를 분석한 글이었다. 또한 넷플릭스와 유튜브가 이미 미디어 공룡으로 자리 잡았기에 향후 지상파방송과 극장가는 OTT 서비스, 유튜브를 상대로 힘든 싸움을 해나가야 할 것이라 예측했더랬다. 물론 코로나19와 싸우게 될 거라곤 생각도 못 하고 섣부르게 ‘이전의 미디어 환경’만을 분석해 쓴 글이었다. 그때 개봉 예정작으로 꼽았던 영화 중 대다수는 개봉을 아예 못 했거나 넷플릭스 공개를 선택해야만 했다. 극장가 성수기로 꼽히는 12월만 해도, 개봉 예정이었던 <승리호>(감독 조성희, 출연 송중기·김태리)가 넷플릭스행을 택했으며, <서복>(감독 이용주, 출연 공유·박보검)과 <인생은 아름다워>(감독 최국희, 출연 류승용·염정아) 등이 개봉을 1월로 미뤘다. 대표적인 대면 집합 실내 시설인 극장을 운영하는 기업들은 2020년 큰 손실을 봤고, 대형 멀티플렉스 3사 모두 일부 지점을 휴업하거나 향후 지점을 줄일 계획을 발표했다.
극장이 어려워진 대신 집에 홈시어터를 갖추는 사람들 덕분에 2020년에는 가전 시장에 대형 모니터와 빔프로젝터, 스피커의 판매량이 늘었고, 식기세척기나 공기청정기, 에어컨 등의 판매율도 상승했다. 특히 재택근무족이 개인용 컴퓨터를 구매하고, 카페를 다닐 수 없게 된 환경에 ‘홈카페’를 갖추는 사람들 덕분에 고가의 커피머신 판매율이 500% 이상 높아졌다고 한다. 밖으로 나갈 수 없는 환경이 되면서 ‘집’과 관련한 수요는 늘어난 것이다. 또한, 식당과 카페들은 문을 닫았지만, 배달업체는 성장했다.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순한 맛이 필요한 때

한쪽이 극심한 피해를 보면 그 반대급부는 급격히 흥한다. 이것은 어디에나 통하는 일이다. 산업뿐 아니라 사람도 마찬가지다. 코로나로 인해 실직하거나 무급으로 고용 유지를 이어가거나, 장사를 할 수 없음에도 높은 월세를 내느라 폐업을 선택하는 자영업자가 늘었지만, 부동산과 주식 가격은 높은 수치로 상승했다. 물론 오른 지역과 상품이 있고 아닌 것도 있겠지만, 주식을 안 하던 사람들까지 뛰어들 정도로 장이 호황이라는 것만큼은 사실이다. 기술집약적 산업은 성장하고 자산가는 더욱 재산을 늘렸지만, 반면 생계에 위협을 받고 생존을 확신할 수 없는 사람들도 증가했다. 시소의 한쪽이 더 높이 올라갈수록 그 반대쪽은 땅밑으로 고꾸라진다. 나는 경제전문가도 아니고, 이럴 때 어떤 규제와 법규, 지원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도 아니다. 다만, 재난 상황에서 공생하지 못하고 한쪽이 완전히 무너지는 사회구조가, 그로 인해 빈부격차는 벌어지고, 노동 소득보다 자본 소득이 훨씬 우대받는 세상이 과연 옳은지 의문을 갖게 된다.
2020년 흥했던 드라마와 예능의 공통점을 살펴보니 모두 ‘상류층의 욕망’을 자극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자기 욕망과 이익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는 주인공들을 보며 사람들은 열광했다. 그게 현실이고, 사회를 반영한 것이고, 그런 드라마는 자극적이고 재미있으니까 높은 시청률이 나온다. 유튜브는 어떠한가. ‘돈’이라면 뭐든지 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일부 스트리머들과 유튜버들을 보며 나는 인류애를 상실할 뻔했다. 유명 식당을 리뷰한다며 자극적인 루머를 퍼뜨리고, 해당 가게는 그로 인해 피해를 보고 문을 닫았음에도 뒤늦게 형식적인 사과를 했을 뿐이다. 그조차 하지 않는 사례는 부지기수다. 방송은 적어도 심의규정이 있어서 가짜뉴스 유포 시 정정 방송과 사과 방송을 해야 하지만 유튜브는 제재 대상이 되지 않는다. 출소한 성범죄자의 호송 과정을 영상으로 찍고 범죄자의 거주지 앞에서 2박 3일 라이브 방송을 하는 스트리머들은 영웅심리에 도취돼 자극적인 말과 행동을 일삼는다. 그렇게 해야 조회수를 올려 광고수익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틀 방송한 BJ의 통장에는 천만 원 단위의 수익이 들어온다(한 BJ가 수익을 기부하겠다며 이틀 만에 1,500만 원을 벌었다고 밝혔다).
절망의 시대에 우리는 불안하다. 미래에 안정적인 삶을 살기 위해선 자본이 있어야 하고, 국가나 회사가 나를 책임지지 않기에 자꾸 무리한 재테크에 눈을 돌리게 된다. 일단 내 상황이 좋아져야 하고, 돈을 벌어서 포식자가 돼야 하기에 자극적인 콘텐츠를 만들고, 그로 인해 누군가 피해를 보든 말든 내가 성공하면 그만이다. 사람들은 성공한 것에 대해서는 ‘성공 비법’만을 분석하지 ‘문제는 없었는지’ 살펴보지 않는다. 돈을 벌기 위해선 뭘 해도 괜찮고, 과정보다는 결과가 중요하다고 미디어를 통해 배우며 우리는 더욱 절박해진다. 오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하느라 동시대에 정말 가져야 할 것을 잃어가는 것이다. 내가 겪어보지 않은, 잘 모르는 타인의 삶을 상상해 보는 능력. 실패하고 상처받고 좌절한 사람들에 대한 배려 말이다. 2021년에는 무엇이 유행할지, 나도 모른다. 다만 말초신경의 자극보다는 공감 능력을 끌어올려 주는 그런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 영화가 많아졌으면 한다. 덜 절망하고 덜 걱정하며, 더 공생할 수 있도록.
글 김송희_《빅이슈코리아》 편집장,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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