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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호

책 《마스 룸》과 《니클의 소년들》세상에 참 평화 없어라
코로나19의 유행으로 닫힌 공간에서 고립돼 보내는 시간이 늘었다. 이번에 소개할 두 소설은 훨씬 더 열악한 공간에 갇혀 자유를 잃은 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한 곳은 교도소, 한 곳은 교도소와 다를 바 없는 청소년 감화원이다. 차라리 혼자 있는 게 낫겠다 싶을 정도로 타인이 지옥이 되는 세상이기도 하다. 소설은 현실과 과거를 오가며 사회 전반에 깔린 성차별, 인종차별을 들춰낸다. 잔혹하고 무자비한 현실에서도 자신의 존엄을 지키고 구원을 얻으려는 주인공들을 경외하게 된다.

불평등이 낳은 불쾌한 현실 《마스 룸》 | 레이첼 쿠시너 지음 | 강아름 옮김 | 문학동네

소설 《마스 룸》에선 대규모 여성 교도소 ‘스탠빌’을 배경으로 수많은 수감자의 삶이 펼쳐진다. 주인공인 20대 미혼모 로미는 자신을 쫓아다니는 스토커의 머리를 공구로 내려쳐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재판에 넘겨진다. 그러나 재판에선 몇 달 동안의 스토킹과 그가 받았던 위협은 정상 참작되지 않는다. 로미는 끝내 종신형을 선고받고 스탠빌 교도소로 호송된다. 소설은 냉혹한 현실을 보여주며 사법 시스템의 한계, 인간의 죄와 벌에 관해 질문한다.
개성 있는 캐릭터로 많은 사랑을 받은 넷플릭스 드라마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처럼 수감자들의 기구한 사연이 이어진다. 남편을 청부 살해하고 그 청부 살인업자까지 죽이려던 모델, 중국인 유학생을 폭행해 사망에 이르게 한 미성년 수감자, 상습 사기로 종신형을 받은 흑인 성전환자, 자신의 아이를 학대한 엄마 등 갖가지 인간 군상이 모여 이야기를 쏟아낸다.
소설은 교도소에서 보내는 일상과 바깥에서 보낸 과거를 오가며 진행된다. 스트립댄서이던 로미는 교도소 밖에서도 ‘마스 룸’이라는 클럽 안에 갇혀 있었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마스 룸’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저급하고 가장 엉망인 스트립클럽”, 법이 없는 야만의 공간으로 묘사된다.
로미와 수감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미국의 불평등이 낳은 불쾌한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유년 시절부터 일상적인 폭력에 노출된 이들은 이미 삶에 큰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상태다. 저자인 레이첼 쿠시너는 범죄와 처벌에 관심을 갖고 직접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교도소 10여 곳을 둘러본 경험을 바탕으로 이 작품을 썼다. 소설 속 ‘스탠빌’ 교도소는 세계 최대 규모의 여성 교도소 차우칠라를 모델로 했다. 저자는 대규모 수용소가 인간을 교정하기보다는 오히려 인간다움을 앗아가고 삶을 파괴하는 현실을 고발한다. 쿠시너의 세 번째 소설인 《마스 룸》은 2018년 시사주간지 《타임》 ‘올해의 소설’에 선정됐으며, 2018 맨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은폐된 폭력과 차별 그리고 구원 《니클의 소년들》 |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 | 김승욱 옮김 | 은행나무

“그 녀석들은 죽어서도 골칫덩이였다.”
콜슨 화이트헤드의 서늘한 첫 문장은 미국 플로리다주의 미스터리한 청소년 감화원 ‘니클 아카데미’로 우리를 데려간다. 학교 쓰레기장이었던 곳에서 뼈에 금이 가고 산탄이 박힌 유해가 무더기로 발견되면서 폐교 부지를 상업지구로 개발하려던 계획은 물거품이 된다. 유해들, 오래전 이 학교에 다닌 니클의 소년들은 그동안 꺼내지 못했던 끔찍한 과거를 하나둘 증언하기 시작한다.
흑인 노예 소녀의 탈출기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는 2017년 퓰리처상과 2016년 전미도서상을 수상한 콜슨 화이트헤드의 소설이다. 《니클의 소년들》 역시 “인간의 인내심과 존엄성, 그리고 구원에 대한 강렬한 이야기”라는 평을 받으며 2020년 퓰리처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니클 아카데미에 얽힌 끔찍한 이야기는 실제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일어난 도지어 학교 사건에서 영감을 받았다. 1900년 개교한 이 감화원에선 수십 년 동안 소년들을 대상으로 육체적·성적 학대가 이어졌지만, 학교의 은폐로 시체가 발견되기 전까지 아무도 진실을 알지 못했다.
명문대 입학을 앞두고 있던 주인공 엘우드는 억울하게 범죄에 휘말리며 니클 아카데미로 오게 된다. 제복을 입은 선생님은 오자마자 그에게 경고한다. “여기서는 행실에 따라 너희를 네 단계로 나눈다. 유충부터 시작해서 탐험가, 개척자를 거쳐 마침내 에이스에 이르는 것이다. 올바른 행동으로 점수를 얻으면 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갈 수 있다.”
니클의 관리인들은 아이들이 잘못할 때마다 건물 뒤편의 작업장으로 끌고 갔다. 거대한 산업용 환풍기가 돌아가 아이들의 비명과 채찍 소리를 감췄다. 인간의 사악함과 이를 고발하고 니클 아카데미를 무너뜨리려는 엘우드의 순수한 영혼이 대비된다.
1960년대가 배경인 엘우드의 어린 시절은 흑인 인권운동의 흐름과 맞닿아 있다. 엘우드는 마틴 루서 킹의 연설 음반을 들으면서, 시사지 《라이프》에 실린 시위대의 모습을 보면서 인권운동을 꿈꿔왔다. 감화원에 갇혀서도 엘우드는 마틴 루서 킹의 말을 끊임없이 되풀이한다. “우리를 감옥에 가둬도 우리는 여전히 당신들을 사랑할 겁니다. 우리는 고통을 견디는 능력으로 당신들을 지치게 해서 언젠가 자유를 얻어낼 겁니다.”

글 백수진_《조선일보》 기자
사진 제공 문학동네,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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