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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호

인왕산 초소책방 더숲초소와 책방이 만나 주민에게 쉼터를 제공하다
종로구 창의문로에 있는 윤동주문학관에서 인왕산로를 따라 1km가량 고즈넉한 길을 걷다 보면 왼편에 책방이 나타난다. 책방의 이름은 초소책방 더숲. 경계와 감시를 위해 설치하는 ‘초소’와 책을 구매하고 읽을 수 있는 공간인 ‘책방’이 합해져 이름이 됐다. 평소라면 어울리지 않을 두 단어가 어떻게 만나게 됐을까?
1 책방이 선정한 책이 진열된 모습
1968년 1월 21일의 이야기다. 북한 124군부대 소속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서울에 침투했다. 이들은 경찰의 불심검문으로 정체가 드러나 도심에서 수류탄을 던지고, 기관단총을 난사했다. 군과 경찰이 현장으로 출동해 29명을 사살, 1명(김신조)을 생포했으며 1명은 북한으로 도주했다. 이 사건으로 버스를 타고 귀가하던 무고한 시민들이 사망하고, 종로경찰서장 총경 최규식이 순직하는 등 가슴 아픈 일이 잇따랐다.
초소책방은 1·21사태 이후 청와대 방호 목적으로 인왕산 자락에 설치한 경찰초소(인왕CP)를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 사례다. 주민이 마땅히 누려야 할 공간이 분단의 상흔으로 50여 년간 접근할 수 없도록 막혀 있었지만, 종로구 주관하에 책방의 형태로 주민에게 되돌아왔다. 기존 초소의 뼈대와 흔적을 남기며 역사적 사건을 기억하면서도 주민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고 이용할 수 있도록, 폐쇄돼 있던 공간을 2020년 11월 11일 개방했다.

산자락에 위치한 오아시스 같은 책방

책방은 2층 규모의 실내와 실외로 이루어졌다. 1층(194.73㎡)에서는 빵과 커피 그리고 책을 판매하며, 종로구민의 경우 신분증을 지참하면 음료 가격의 10%를 할인해 준다. 초소책방은 대형 서점처럼 많은 책을 진열하는 대신 책방이 직접 선정한 주제로 책을 모아 짜임새 있게 선보인다. 취재를 위해 방문한 12월 초에는 ‘기후위기’와 ‘코로나19’를 주제로 한 책이 진열돼 있었다.
초소책방을 운영하는 탁무권 대표는 시대가 관심을 가지고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사안에 초점을 맞춰 책방을 꾸릴 것이라 말했다. “현재 가장 중요한 화두는 기후위기라고 생각해요. 코로나19도 급한 사안이지만,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기후위기 아래 경제, 정치, 문화 등이 연결됩니다.”
산자락에 있는 책방답게 자연과 관련한 책이 많았다. 환경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은 읽어봤을 만한 고전 《월든》 《침묵의 봄》을 포함해 《그레타 툰베리의 금요일》 같은, 최근 활발히 활동하는 환경운동가의 저서가 표지를 보이며 책장에 놓여 있다. 더불어 코로나19를 다룬 신간과 기타 베스트셀러 등이 비치됐고, 좌석에서 여유를 느끼며 책을 읽을 수 있도록 공간이 갖춰졌다. 자리에 앉아 천천히 책을 읽다 보면 실내에 풍기는 커피 향이 주변을 감싸고 햇볕이 통유리를 지나 따뜻한 기운을 선사하는 순간을 느낄 수 있다.
계단을 따라 2층(119.4㎡)에 오르면 20명가량 앉을 수 있는 긴 테이블이 눈에 띈다. 나뭇결이 그대로 드러나 책방 주변의 풍광과 어울린다. 2층 역시 바깥이 보이는 유리로 둘러싸여 있어 자연의 정취가 실내에까지 흐르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야외 좌석 또한 1층과 2층으로 나뉜다. 이곳에서는 인왕산 절벽을 타고 흐르는 바람을 맞으며 서울 전경을 눈에 담을 수 있다. 주민들의 감상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의자와 탁자의 색을 갈색 혹은 검은색으로 통일했다. 특히 2층 야외 테라스 의자는 시야를 가리지 않도록 등받이를 없애는 등 조망을 위해 신경 썼다.
2 인왕산 초소책방 더숲 전경

책방이 주는 메시지가 주민들에게 가닿기를

전경을 감상한 후, 바깥으로 나가 책방을 한 바퀴 둘러보면 곳곳에서 초소의 흔적과 만나게 된다. 구석에 쇠로 만든 둥근 통이 녹이 슨 채로 남아 있는데, 보일러용 기름 탱크였다. 또한 초소 출입문과 외벽을 남겨 역사의 흔적을 기억하도록 했다. 출입문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다. “이 문은 기존 경찰초소 건물의 서측 외벽에 있었던 철제 출입문이다. 주변 외벽을 철거하고 시민 쉼터를 조성하면서 원래 위치에 있던 출입문을 존치하여 이 건물에 대한 기억의 장치로 활용하였다.”
초소책방이 ‘기억의 장치’로 작동해 ‘김신조 사건’으로 불리는 1·21사태에 대해 잘 모르던 주민들의 관심을 일깨우고, 혹은 알고 있더라도 아픈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돌이켜 생각하게 만든다. 오랜 기간 국가 통제하에 접근이 제한되던 공간을 초소책방 개점을 계기로 더 자유롭고 편하게 향유할 수 있을까. 책방을 방문해 산바람을 느끼며 즐거운 기억을 가지고 돌아가는 주민이 많아지길 바란다.
탁무권 대표는 조그맣더라도 주민 한명 한명에게 울림을 줄 수 있다면, 책뿐만 아니라 다양한 기획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할 생각이라 말한다. “초소책방이 서울의 명소가 될 거라고 사람들이 말해요. 그 기대에 알맞게 사회적 메시지를 주는 기획을 했으면 좋겠어요. 코로나19 때문에 당장은 여건이 마땅치 않지만, 새해에 돌아오는 봄부터는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싶어요. 강좌를 개설할 수도 있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장터를 열어 수익의 일부를 필요한 곳에 기부하는 등의 활동이 좋을 것 같아요.”
초소책방은 지역의 사회·문화적 가치를 담은 품격 높은 건축물로 인정받아 ‘2020년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국가건축정책위원장상을 받았으며, 초소책방을 조성한 종로구는 행정안전부와 인사혁신처가 공동 주관하는 ‘2020년 하반기 적극행정 경진대회’에서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글 장영수_객원 기자
사진 제공 인왕산 초소책방 더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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