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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호

책 《빌레뜨》와 《비타와 버지니아》여성이 글을 쓰기 위해 필요했던 것…
덜 알려진 브론테와 울프의 이야기
샬럿 브론테(1816~1855)와 버지니아 울프(1882~1941) 사이에는 70년 남짓의 시간 간격이 있지만, 이후 글 쓰는 여성들의 원형이 된 작가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글 쓰는 여성들이 자신들 내면의 창작 욕구를 인정하고, 일깨우고, 발휘하고, 세상에 내보이기까지의 전 과정에서 샬럿 브론테와 버지니아 울프는 영향을 드리운다. 최근 출간된 두 권의 책 《빌레뜨》 그리고 《비타와 버지니아》는 두 여성 작가의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샬럿 브론테의 실제 경험 바탕으로 한 마지막 소설 《빌레뜨》(1·2) | 샬럿 브론테 지음, 조애리 옮김 | 창비

《빌레뜨》는 《제인 에어》로 널리 알려져 있는 샬럿 브론테의 마지막 작품이다. 20대 초반 여성인 루시 스노우가 라바스꾸르라는 낯선 나라의 ‘빌레뜨’라는 도시의 여자기숙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겪는 일을 그린다. 여성의 자유와 자기결정권을 억압하던 시대에 낯선 타국에서 삶을 개척하는 주인공을 통해 당대 독신 여성의 현실과 삶, 열망과 고뇌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빌레뜨》가 특히 흥미로운 것은 루시 스노우가 단순히 억압적인 상황에 분노하기만 하는 것이 아닌, 시대에 순응하고자 하는 욕망에도 시달리는 복합적인 인물이라는 점이다. 여성의 영역은 당연히 가정으로 여겨지던 빅토리아 시대, 독신 여성이 집을 떠나 취업한다는 것은 시대에 맞서야만 하는 일이었다. 이런 가운데 루시 스노우는 경제적·정신적 독립을 간절히 꿈꾸면서도, 반대로 그 독립을 두려워하는 분열된 심리를 보이는 인물이다. 젊은 독신 여성을 ‘잉여 인간’으로 취급하는 당시 시대 상황에 좌절과 고독을 느끼면서도, 한 남자의 아내로 안주하며 사랑받으며 살고 싶다는 열망에 내적 갈등을 보인다.
소설은 실제 2년여간 브뤼셀의 기숙학교에서 수학하며 교사로 일한 샬럿 브론테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하녀나 잡부로 일한 하층계급과 달리, 당시 중간계급 여성이 택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직업은 가정교사나 교사뿐이었다. 가족들이 함께 사는 하워스에 학교를 차리고 싶어 한 샬럿 브론테는 프랑스어를 배우기 위해 벨기에 브뤼셀로 유학을 떠나고, 콘스탄틴 에제 교수와 클레르 에제 부인이 운영하는 기숙학교에서 2년 동안 수학하며 영어 교사로 생활했다. 《빌레뜨》에는 당시 샬럿 브론테의 체험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버지니아 울프의 알려지지 않은 연인 ‘비타’ 《비타와 버지니아》 | 세라 그리스트우드 지음, 심혜경 옮김 | 뮤진트리

버지니아 울프의 연인은 그의 곁을 30년간 지킨 남편 레너드 울프로 알려져 있다. 레너드 울프는 아내를 돕기 위해 공무원을 그만두고 직접 출판사를 차려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을 출판하며 그녀가 작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헌신적으로 도왔다.
그러나 울프에게는 1921년부터 울프가 세상을 떠나는 1941년까지 20년 가까이 사랑과 우정을 나눠온 여성 연인, 비타 색빌-웨스트가 있었다. 울프는 죽기 몇 달 전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남편 레너드와 바네사 언니를 제외하고, 내가 진정으로 사랑한 유일한 사람은 비타였다”고 쓰고 있다. 《비타와 버지니아》는 전기 작가이자 영국 왕실의 역사 전문가인 저자 세라 그리스트우드가 잘 알려지지 않은 두 여성의 우정과 사랑의 교류가 남긴 흔적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다.
울프에 비해 비타는 한국 사람들에게는(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낯선 이름이지만, 영국에서는 한 해 20만 명의 방문객이 찾는 ‘시싱허스트’라는 정원을 만든 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다. 영국의 유서 깊은 켄트 귀족 가문의 후손이자 여러 권의 베스트셀러 책을 쓴 작가이기도 했다. 1922년 울프의 형부인 클라이브 벨의 주선으로 만나게 된 둘은 첫눈에 반한다. 울프는 마음을 사로잡는 비타의 존재 앞에서 “수줍고 여학생이 된 듯한 기분”을 느낀다. 비타 역시 “온통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고 고백한다.
이후 비타와 울프는 오랜 세월 동안 서로의 글을 읽고 편지로 의견을 나누며 문학적인, 그러면서도 매우 자극적인 영향을 주고받는다. 울프는 비타를 만난 지 5년 뒤에 비타를 모델로 한 소설 《올랜도》를 쓴다. 책은 시대를 앞서 살았던 두 여성이 주고받은 사랑과 우정에 관한 이야기를 풍부한 사진 자료를 바탕으로 되살려낸다.
《빌레뜨》와 《비타와 버지니아》는 각각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해 어떤 열망이 필요했는지 보여준다. 가정에 얽매이지 않고도 독립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 자신의 작가적 재능을 인정해 주는 사랑과 우정의 대상. 그것은 오늘날 우리가 만나는 그들의 위대한 작품을 탄생시킨 동력이다.

글 한소범_《한국일보》 기자 사진 제공 창비, 뮤진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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