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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호

책 《고독 깊은 곳》과 《일주일 만에 사랑할 순 없다》 상상력으로 빚은 현실 세계
코로나19 탓에 심란하기 그지없는 요즘이다. 오죽하면 “현실이 더 소설 같다”는 말이 나올까. 이럴 때 현실에서 한발 떨어져 SF(공상과학) 소설을 읽으면서 머리를 식혀보는 것은 어떨까. 번뜩이는 상상력이 돋보이는 SF소설집 2권을 골라봤다. 중국 작가 하오징팡의 《고독 깊은 곳》, 한국 작가 김동식의 《일주일 만에 사랑할 순 없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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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발한 상상력에 묵직한 주제 담아 《고독 깊은 곳》 | 하오징팡 지음, 강초아 옮김 | 글항아리

《고독 깊은 곳》은 중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SF작가 하오징팡이 2010~2016년 발표한 중·단편소설 10편을 묶은 소설집이다. 특히 SF소설의 최고상으로 꼽는 휴고상을 받은 중편소설 <접는 도시>가 실려 있다. ‘접는 도시’는 인구가 불어난 미래의 베이징을 가리킨다. 모두 3개의 공간으로 돼 있는데, 한 공간을 접어 큐브 모양으로 만든 뒤 지반을 뒤집으면 다른 공간이 나타난다. 한쪽이 활동하면 나머지 2곳의 공간에 사는 사람들은 수면 가스를 마시고 강제 취침한다. 제1공간은 24시간 활동하고 24시간 휴면하는 데 반해, 제2공간 사람들은 16시간, 제3공간 사람들은 8시간을 쓴다. 소설은 가장 가난한 제3공간에서 쓰레기 처리 일을 하는 라오다오가 딸의 유아원 등록비를 벌기 위해 제2공간과 제1공간을 넘나들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도시를 접어 사용한다는 발상도 놀랍지만, 시간까지 다르게 나누고 이를 받아들이면서 살아간다는 설정은 서늘하기까지 하다. 짐작하겠지만, 빈부 격차가 뚜렷한 3개의 공간은 사회 속 계급을 의미한다. 미래의 베이징을 묘사했지만, 읽다 보면 현실 세계를 은유(隱喩)함을 알 수 있다. 같은 도시를 공유해 사용하지만, 풍족하게 살아가는 제1·2공간에 비해 제3공간 사람들의 삶은 각박하기만 하다. 작가는 라오다오의 분투로 하층민의 내몰린 삶을 그린다. 그리고 라오다오와 그가 만난 제1·2공간 사람들 이야기를 통해 계급 사회에서 인간성이란 무엇인지 우리에게 묻는다.
복제인간을 통해 지식과 정보의 전수를 묘사한 <마지막 남은 용감한 사람>도 주목할 만하다. 체제를 전복할 정도로 많은 추종자를 거느린 스제이47이 당국의 추적을 피해 도망치다 창고지기인 파노32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복제인간을 책으로 빗대어 표현한 부분이 비슷한 소재를 다룬 여타 소설보다 참신하다. 파노의 후손인 파노34가 파노35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마지막 장면 묘사가 압권이다.
가상의 소설 속 세계가 현실보다 더 현실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 사회의 문제를 예리하게 포착해 상상력으로 빚은 공간 속에 펼쳐놓은 작가의 탁월한 역량 덕분일 것이다. 저자의 신작 단편집 《인간의 피안》도 최근 출간됐다. 전작을 읽어본 뒤, 한층 깊어진 작품을 만나보길 추천한다.

가벼운 이야기에 인간의 민낯 드러내 《일주일 만에 사랑할 순 없다》 | 김동식 지음 | 요다

김동식 작가의 《일주일 만에 사랑할 순 없다》는 가볍지만 작가 특유의 매력이 돋보이는 23편의 단편소설을 담았다.
인간의 탐욕을 까발리는 이야기가 우선 눈에 들어온다. 전자회사 회장 두석규가 4년 전으로 돌아갈 수 있는 고양이 조각상을 발견하고서 과거의 자신에게 돌아가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내용의 <4년 전으로>가 대표적이다. 60세 생일에 64세의 자신을 만난 그는 차례대로 56세, 52세로 거슬러 올라간다. 자신의 목숨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한 조언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수록 퇴색한다. 결국, 석규는 욕심 때문에 일을 그르친다.
돈의 사연을 측정해 돈으로 다시 돌려주는 <돈을 매입하는 기계>는 욕심 때문에 깨져버린 우정을 그린다. 이 기계를 발견한 용철과 민우는 점점 큰돈을 만지지만, 탐욕은 점점 커진다.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비참한 결과뿐이다.
하오징팡이 무게감 실린 ‘훅’을 날리는 작가라면 김동식은 ‘잽’을 날리는 작가다. 그러나 그 잽이 아주 매섭다. 몇 쪽 안되는 소설 속 반전이 독자의 뒤통수를 제대로 후려친다. 지구를 아름답게 만들어주겠다며 찾아온 외계인에게서 빛 기둥을 받고 좋아하는 지구인의 모습을 그린 작품 <행성 인테리어>가 그렇다. 빛 기둥의 정체를 알게 되면 독자들은 아마 무릎을 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비현실적인 이야기지만, 소설 대부분이 인간의 본성을 예리하게 드러낸다. 비현실적인 설정임을 알고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런 점에서 믿기지 않는 이야기를 믿게 만드는 저자는 그야말로 탁월한 이야기꾼이라 하겠다.
성수동 주물공장에서 일하던 김동식 작가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면서 유명해졌다. 2016년부터 이야기를 쏟아놓기 시작했는데, 이렇게 만든 기이한 이야기가 지금까지 무려 500여 편에 달한다.
이번 책은 그의 8번째 단편소설집이다. 소재 고갈 우려를 불식하듯, 이번 소설집에서도 저자는 폭발적인 상상력을 선보인다. 첫 번째 단편집 《회색인간》을 필두로 한 저자의 지난 소설집에서도 번뜩이는 상상력을 마주하길 권한다.

글 김기중_《서울신문》 기자
사진 제공 글항아리, 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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