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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호

전시 <미술관에 書: 한국 근현대 서예전>과 <박영숙: 그림자의 눈물> 미술관에 가지 않아도, 혼자 가도 좋은
지난 2월 말부터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전국 미술관과 갤러리가 휴관하면서 문화예술계의 암흑기가 계속됐다. 하지만 힘들 때 대중의 마음을 위로하는 게 문화예술의 힘이기도 하다. 국립현대미술관과 아라리오갤러리는 각각 온라인 전시와 프라이빗 전시 관람을 코로나19 시대 대안으로 제시해 주목받고 있다.

※ 이번 호에 실린 공연·행사 등의 일정은 코로나19확산 방지를 위해 변경 또는 취소될 수 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개관 51년 만에 여는 첫 서예 전시 <미술관에 書: 한국 근현대 서예전>과 관련, 배원정 학예연구사의 해설로 촬영한 동영상을 유튜브(www.youtube.com/MMCAKorea)에 공개해 조회수 4만 2,000(4월 13일 기준)을 넘겼다. 아라리오갤러리는 코로나19 감염 위험을 줄이기 위해 페미니스트 사진작가 박영숙 개인전을 1인 혹은 1팀 관람으로 제한해 눈길을 끌었다.

전시 <미술관에 書: 한국 근현대 서예전>

한눈에 보는 한국 근현대 서예의 역사 <미술관에 書: 한국 근현대 서예전> |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잠정 휴관 중. 전시 관람은 유튜브 채널에서 가능

덕수궁관에 작품 300여 점을 펼친 국립현대미술관 서예 전시에서는 사람만 한 대붓이 시선을 붙잡는다. 구한말 영친왕(1897~1970)의 스승이었던 해강 김규진(1864~1933)이 <금강산 구룡폭>을 그리고, 미륵불이라는 글씨를 쓸 때 사용한 붓이다. 본인 키보다 큰 붓으로 퍼포먼스를 펼쳤을 정도로 대가의 역량이 컸음을 짐작할 수 있다.
지금은 위축됐지만 서예가의 위상은 1980년대만 해도 대단했다. 소암 현중화(1907~1997)는 1988년 서울올림픽 때 한복을 입고 성화 봉송을 했을 정도로 사회적 존경을 받았다. 이번 전시장에는 그가 술에 취해 서귀포 음식점 국일관 벽에 쓴 <취시선(醉是僊·취하면 신선이 된다)>이 걸려 있다. 재기 발랄하고 현대적 감각이 깃든 작품으로 서예를 넘어 추상화 같다. 글자 속에 한 마리 학이 춤을 추는 듯 가늘고 긴 것 같으면서도 그 강인한 힘이 마치 전통 무예 택견을 보는 듯하다.
소암을 비롯해 한국 근현대 서예가 1세대 12명의 작품은 이번 전시의 중심이다. 일제강점기와 광복 등 격동기에도 한 획을 그으면서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확립한 인물들이다.
소전 손재형(1903~1981)은 일제강점기에 쓰인 용어 서도(書道) 대신 서예(書藝)를 주창해 널리 쓰이게 했다. 한글과 한문 서예에 두루 능했고, 다양한 조형 실험을 통해 독창적인 ‘소전체’를 탄생시킨다. 특히 추사의 걸작 <세한도(歲寒圖)>를 소장했던 후지쓰카 지카시(1879~1948) 경성제국대학 교수를 찾아가 여러 번 부탁한 끝에 마침내 작품을 인도받아 귀국한 일화로도 유명하다. 이번 전시장에는 1956년 충무공 이순신(1545~1598)의 명량대첩을 기리고자 전남 진도군 고군면 나루터 벽파진에 세운 비석에 소전이 쓴 <이충무공 벽파진 전첩비(李忠武公 碧波津 戰捷碑)> 탁본이 걸려 있다.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일중 김충현(1921~2006)은 한글고체와 한글흘림·전서·예서·해서·행서 등 6종 서체를 한 공간에 조화시켰다. 그의 동생인 여초 김응현(1927~2007)이 한글고체와 예서·행서를 혼서한 <세종어제훈민정음(世宗御製訓民正音)>도 전시장에 걸려 있다. 붓끝의 중심이 한가운데로 모여 선질의 밀도가 높고 마치 금석처럼 탄탄하게 느껴진다.
강암 송성용(1913~1999)은 일제의 강압에도 단발령과 창씨개명을 거부한 부친의 뜻을 이어 평생 상투를 틀고 한복을 입고 다녔다. 맑고 우직한 대나무 줄기가 뻗어 있는 그의 <석죽도(石竹圖)>에는 선비의 강인한 기상이 서려 있다.

<박영숙: 그림자의 눈물> 전시장 전경(위)과 <그림자의 눈물 16>(아래)

제주의 버려진 땅에서 발견한 여성의 생명력 <박영숙: 그림자의 눈물> |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서울 소격동 아라리오갤러리에 들어서면 음산한 숲속에 립스틱과 분첩, 인형 등이 놓여 있는 기묘한 풍경이 담긴 사진들과 만나게 된다. 박영숙 작가는 제주도 곶자왈에서 찍은 신작 <그림자의 눈물> 연작 18점을 “마녀들이 살았을 것 같은 흔적”이라고 표현했다. 곶자왈은 ‘가시덤불 숲’의 제주 방언으로 척박해서 버려진 땅이다.
2016년 이곳을 처음 찾은 작가는 “하멜(네덜란드 선원)의 배가 표류하다가 제주도로 온 것처럼 500년 전 유럽의 화염에서 빠져나온 여성이 제주도에 버려져 마녀답게 살아내는 상상을 시각화했다. 숲과 립스틱 등 오브제가 서로를 끌어안아 줘서 기가 막힌 감동을 전해 줬다. 상상보다 아름다워서 슬프더라”고 말했다.
짧은 머리카락을 보라색으로 염색한 그는 기괴한 숲에 자신의 이야기를 심었다. 결혼식 때 입은 웨딩드레스와 아버지로부터 선물받은 첫 카메라, 아들이 가지고 놀던 장난감, 부모님 사진과 편지 등을 놓고 사진을 찍었다. 지난 3년간 일요일이면 서울을 떠나 제주도로 가서 월요일 아침에 소품들을 놓는 ‘의식’을 치르고 작업을 했다.
“내 안의 마녀성을 치솟아 오르게 하는 것 같은 작품이다. 굉장한 지혜와 슬기로움, 창조, 생산성을 여성성이라고 생각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강한 여성을 상징하는 마녀의 흔적을 담았다. 의지 있는 행동을 실행하는 여성들을 감내하기 힘든 사회가 문제다.”
숲에 놓인 실과 바늘에서 척박한 땅을 일구는 억척스러운 모성이 보이기도 한다. 칙칙한 숲을 환하게 만드는 스카프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여성성으로 다가온다. 처음에는 ‘불협화음’처럼 느껴지는 오브제들이 작가의 설명을 듣자 상징성을 지니게 됐다.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프랑스 출신 조각가 루이즈 부르주아(1911~2010), 뉴욕에서 보모로 살면서 셀피(selfie)를 찍던 사진작가 비비언 마이어(1926~2009) 등 여성 예술가의 사진도 곶자왈에 등장한다. 페미니스트 작가로서 갖는 정체성의 반영이기도 하다. 그동안 도발적인 인물 사진 연작 <미친년 프로젝트> 등을 통해 여성의 몸과 자아에 대한 사회적 억압, 부조리, 성적 권력 구조에 문제를 제기해 왔다. 그런데 이번 신작에서는 사람 대신 소품을 등장시켰다.
2006년 한국 최초 사진 전문 갤러리인 트렁크갤러리를 개관해 2019년까지 운영한 작가는 “교통사고 후 왼쪽 마비가 와서 아직 어지럽지만 잘 적응 하고 있다. 이게 정상이라고 긍정하고 있는 내가 참 좋다”고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이번 전시는 6월 6일까지.

글 전지현_《매일경제》 기자
사진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아라리오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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