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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1월호

펭귄어패럴 컬렉션 「노동의 철학1 : 일자박기 연습시간」 퍼포먼스 모든 상식에 의심을!

2019년 펭귄어패럴 컬렉션 「노동의 철학1 : 일자박기 연습시간」은 신소우주를 중심으로 모인 총 6명이 각자 자신의 노동 속에서 매일 해나가고 있는 일상을 기록하고, 나눈 대화를 모은 작업이다. 이 작업은 구로공단 대우 어패럴의 미싱사였던 강명자, 권영자가 1980년대 즈음 읽었던 <노동의 철학>(광민사 엮음, 1980)이라는 책을 공통의 텍스트로 정하여 서로의 연결지점, 고민의 방향 등을 잇고 있다. 펭귄어패럴의 작업실을 전시공간으로 꾸몄고, 퍼포먼스는 작업실과 시장의 공간을 활용하여 1시간에 걸쳐 진행되었다. 책-전시-퍼포먼스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서로 참고서 역할을 한다.
퍼포먼스는 신림중앙시장 2층 나-10호에 위치한 펭귄어패럴의 작업공간과 일자박기 작업으로 만들어진 천으로 구획된 일시적인 공간에서 이루어졌다. 방식은 간단했다. 제1장부터 제4장까지 각자의 기록을 녹음한 목소리가 나온다. 이때 6명의 사람들은 작업의 기록을 담은 책 <일자박기 연습시간>을 읽고, 난로에 익힌 귤을 사이좋게 나눠 먹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누군가 일어나 펭귄어패럴 작업실로 이동하여 미싱 작업을 하기도 한다. 관객들은 공간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6명의 퍼포머들을 듣고, 본다.

제1장, ‘기사의 움직임으로 항해하기’는 안수연의 이야기를 담았다. “잘 몰라도 엄연히 존재하는 명상과 은유의 세계를 상상하며 작업을 한다”는 그녀는 제주도 곶자왈, 브루클린 식물원에서의 사진 작업 과정을 기록했다. 기존의 규칙과 경험에 얽매이지 않고, 고민해나가는 작가의 작업을 담아냈다.
2장, ‘하고 있어요’는 민경은의 작업으로 전국을 돌아다니며 바쁘게 문화예술기획자로 살아가는 모습을 기록했다. 신소우주와의 대화록을 통해 문화기획자로 산다는 것에 대한 고민, 결국 ‘사람’에 대한 여러 생각을 읽어낼 수 있다.
제3장, ‘Know How’는 시각예술작가인 송지은이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인해 재활치료를 시작해야만 했던 남편(이기언)과의 일상을 간결한 문장으로 기록한 작업이다. 휠체어에 앉아 공연을 조용히 지켜보던 남편은 송지은의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주변의 도움을 받아 한 걸음씩 일자박기로 구획된 공간을 걷는다. 존재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지 불편한 상태가 존재의 의미를 하락시키는 것은 아니라는 송지은의 목소리는 강직하고도 따듯했다.

제4장, ‘모든 상식에 의심을’은 강명자와 권영자가 1980년대 노동조합활동을 하던 당시에 읽었던 <노동의 철학>을 다시 읽고 지나온 삶과 현재의 고민을 나눈 대화이다. 왜 우리가 스스로를 ‘勤勞者’(근로자)가 아니라 ‘勞動者’(노동자)로 명명해야 하는지 충분한 대답이 되어준다. 주어진 일을 하는 것에서 나아가 능동적으로 자신을 움직이고 생각하는 힘이 노동자라는 이름 속에 있다.

녹음된 목소리는 대화 혹은 독백, 노동의 철학에 대한 낭독 등 다양한 형식으로 구성되었다. 목소리는 관객들의 상황에 따라 선택적인 집중을 이끌어내기도 하고, 어떤 말들은 이해되지 못한 채 사라지기도 했다. 퍼포먼스는 제1장부터 제4장까지 각기 다른 방식과 주제로 구성되지만, 노동 안에 삶, 삶 안에 노동을 확장된 방식으로 읽어낼 수 있게 한다. 특히 제4장, ‘모든 상식에 의심을’은 이 시대에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1985년 자신을 ‘노동자’라고 이름 붙이는 것은 빨갱이라고 불릴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34년이 지난 지금 ‘노동자’는 1985년보다 더 나은 세상에 살고 있는 걸까?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노동을 더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는 시대에 가장 적게 생각하며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2019년의 펭귄어패럴은 2018년 <펭귄어패럴, 그 여름 한 철의 이야기, 강명자 X 신소우주> 전시 작업에 이어서 철저하게 과정의 성실함을 쌓았다. 이 작업은 시대에서 상실된 ‘일’의 가치를 따스한 온도로 되짚어주고 있다. 인간의 삶은 생활의 기본이 되는 가사노동, 생계를 위한 임금노동, 관계를 위한 감정노동을 비롯해 셀 수 없는 움직임으로 가득 차 있다. 세상의 속도와 상관없이 각자의 시간으로 누적된 노력은 고(故) 권정생 선생의 말처럼 “꽃씨가 흙을 뚫고 어둠을 뚫듯“ 세상에 나올 것이다. 우리 모두의 노동을 응원하며, 마지막 문장은 힘찬 구호로 마무리한다. 모든 상식에 의심을!

글·사진 제공 박상미_예술에 대한 막연한 호감으로 ‘서울프린지네트워크’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2018 거리예술마켓 작업, 2019 신나는 예술여행 정산 담당, 서울프린지페스티벌 프로그래머, 자동차부자재몰 콘텐츠 블로그 알바 등 경계 없는 노동을 해나가고 있다.
papermoonfl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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