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 메뉴로 바로가기 본문으로 바로가기
서울문화재단

문화+서울 seoul foundation for arts and culture

검색 창

서울시 동대문구 청계천로 517

Tel 02-3290-7000

Fax 02-6008-7347

문화+서울

  • 지난호 보기
  • 검색창 열기
  • 메뉴 열기

COLUMN

1월호

사라진 사람, 사라진 것 같은 사람



<쓰다> 24호 포스터. (웹진 [비유] 제공)

죽음은 어떤 모습으로 찾아올까. 나는 내 최후의 모습이 궁금하진 않지만, 죽음이 실체를 가지고 찾아온다면 어떤 모습일까 하는 궁금증은 있다. 시꺼먼 옷을 두른 굳은 표정의 남자가 눈 밑마저 검게 칠하고 나를 찾아오는 건 별로다. 저승사자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저승사자는 낯설다. 이것을 최초로 그려낸 사람에겐 죽음이 어색하고 민망하고 두려운 것이 아니었을까. 저승사자를 떠올리면 나는 죽음 이후에 대해 아무것도 상상할 수가 없다. 죽음에 관한 상상력마저 차단하는 그것이 죽음의 상징이라니. 죽음이 나에게 소식을 전해온다면 되도록 친숙한 얼굴의 메신저를 보내주기를. 나의 귀여운 강아지 살구를 닮아도 좋겠고 “살구 킬로미터 떨어진 곳”까지 “자전거의 왼쪽과 오른쪽을 번갈아 달리면서” 동행하는 ‘로스빙’을 닮아도 좋겠다.

나는 현관에 등롱을 걸어 문간을 밝히고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는 중이었다.

아버지가 도착했을 때 어떠세요 아버지 마음에 드세요 하고 물었다. 아버지는 등롱이 아니었으면 못 찾았을 거라고 했다. 그러고는 더 말이 없었다.

나로서는 최선을 다한 것이었다.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집에서 작별하고 싶었다. 달리 올 사람도 없고 그러는 편이 아버지에게도 좋았다.

문밖에 개가 있기에 아버지의 개냐고 물었다. 아니다. 아무리 쫓아도 따라오더구나. 나는 현관에 나가 집에 들어올 것인지 물었다. 로스빙. 개는 자신의 이름이 로스빙이라는 것을 내게 알려주었다.
_유진목, <로스빙> 부분

로스빙(Loss-being)은 자기 이름처럼 이미 부재의 상징이며, 그런 부재의 실체화이다. 그것은 아버지를 따라온 것 같고, 어쩌면 죽어버린 아버지 자신 같고, 아버지의 죽음을 둘러싼 비밀이자 ‘나’에게 남아 있는 아버지에 대한 한 조각 애정 같다. 부재(‘아버지의 부재’)에 딸린 부재(‘로스빙’)가, 이 작품이 묘사하는 강력한 실체라는 점이 흥미롭다. ‘나’는 이 세상을 떠나 안식을 찾아가야 하는 ‘아버지’를 붙잡는 대신, 죽은 아버지를 따라온 ‘로스빙’이라는 강아지를 집에 잡아둔다. 그리고 그것과 함께하며, 그것에게 아버지에 관하여 묻고 또 묻는다.
로스빙 연작은 아버지의 죽음 이후, 떠난 사람으로서의 아버지의 삶을 돌아보려는 시도일 것이다. 그런 시도가 시라는 언어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로스빙은 살갑고 애처로운 강아지의 모습으로 나와 아버지의 죽음 곁을 지킨다. 강아지가 불러오는 온갖 따뜻한 이미지가 ‘나’의 삶이 전과 같지 않을 거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쓰다>24호 포스터. (웹진 [비유] 제공)

깊은 사랑은 언어 없이 오는 것이라 여겼으므로. 여자는 자신이 쓴 문장들을 숨겼고. 언어란 찢어지고 부서지는 그 무 엇 일 뿐 으 로…, 남자는 말을 하면서도 말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말을 멈추고 또 멈추었고. 자신들을 덮쳐오는 음악의, 그 말 없음,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말 없음…, 말할 수 없음…, (중략) 한 남자와 한 여자는 석양이 지는 쪽으로 달리고 달리고 있었다. 우리가 알고 있거나 알지 못하는 이야기의 결말 속으로 빠르게 숨어들듯이. 눈앞에서 스러지고 스러지는 것은 석양이 아니라는 듯이. 석양이 지는 쪽으로, 석양이 지는 쪽으로.
_이제니, <발화 연습 문장> 부분

죽음에 대한 시는 아니지만 <로스빙>을 읽고 <발화 연습 문장>을 떠올렸다. 두 편의 시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부재에 관하여 이야기한다고 생각한다. <발화 연습 문장> 속 연인은 말하지 않는다. ‘여자’는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도착해 있는 말들을 받아”쓰는데, 나는 그것을 이별을 예감하는 언어라고 느꼈다. 어떤 음악으로 “텅 빔/가득” 찬 연인의 차는 석양이 지는 쪽으로 속력을 낸다. 어쩌면 ‘부재로 가득 찬 공간’과 같은 관념은 말장난이 아니다. 사랑으로 충만한 순간에도 공허를 느끼고, 사라진 사람을 자기 마음속 깊은 곳에 끝내 되살려두는 것. 어떤 시인에게는 세상 모든 사물과 마음이 그런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 같다.

글 김잔디_ [비유] 편집자
위로 가기

문화+서울

서울시 동대문구 청계천로 517
Tel 02-3290-7000
Fax 02-6008-73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