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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호

소리꾼 이희문 “현재진행형의 가장 힙한 음악을 한다”
소리꾼 이희문은 어느 날 갑자기 대중 앞에 나타났다. 그것도 매우 강렬한 모습으로 등장해 한 번 본 사람은 잊을 수 없게 존재를 각인시켰다. 자신을 ‘경기민요 소리꾼’으로 표현하는 이희문은 국악이라는 단어를 못마땅해 한다. 국악(國樂)은 곧 나라의 음악이라는 의미. 국악이 21세기인 오늘날까지 국악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의아하다는 것이다. 또 민요가 만들어질 당시에는 가장 힙한 음악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그는 그렇기 때문에 지금 가장 힙한 음악에 도전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통음악계의 괴짜로 불리며 새로운 우리 음악의 역사를 열어가고 있는 이희문을 만났다.

그가 코앞까지 다가왔지만 미처 알아보지 못했다. TV에서 보았던, 펑크스타일의 과장된 헤어나 하얗게 칠한 얼굴 분장, 아찔한 하이힐 등 강렬한 외모를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아담한 체구에 단정한 헤어스타일, 하얀 운동화. 목소리는 나지막했고, 말수도 적었다. 무대와 일상의 모습이 이토록 간극이 큰 인터뷰이는 드물다. 무대를 위해 분장을 하면, 접신을 하듯 새로운 사람이 된다는 설명을 듣고서야 퍼즐이 맞춰졌다.
새해가 시작된다. 지난 한 해 무척 바쁘게 보냈다고 들었다.
많이 바빴다. 공연이 많았다. 지난해 만들었던 ‘이희문프로젝트 날’ 공연을 했고, 베를린 공연을 다녀왔고, 지난 연말 새로운 민요 콘서트 <오방신과>를 시작했다. 음반을 녹음하고 재킷 사진을 찍고, 음반 발매를 기념해 쇼케이스 공연을 열었다. 피아니스트와 또 다른 프로젝트인 ‘에고 프로젝트’도 했다.
정말 많은 활동을 했다. 지난해 특별히 의미 있었던 활동을 꼽는다면.
나를 세상에 많이 알려지게 한 ‘씽씽밴드’라는 팀이 2018년 해체됐다. 해체 후 후유증이 컸다. 뭘 해야 할지 고민하던 와중에 씽씽밴드에서 내 역할은 무엇이었나 생각하다가 보컬 활동의 의미를 이야기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겪는 고민이라든가 상황이라든가 그런 걸 솔직하게 노래하는 사람이니까 그걸 만들자는 생각에 ‘이희문프로젝트 날’을 만들었다. 보이스가 중심이 되고 그 보이스를 좀 더 날것처럼, 날이 서 있는 작품을 만들어야겠다는 마음에 멜로디 악기를 배제하고 리듬악기만으로 공연을 만들었다. 어쩌면 무모할 수 있었는데 다 떠나서 내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와 부딪치자는 생각으로 실험을 시작했다.
이희문프로젝트 날의 이름으로 지금까지 몇 번의 공연을 펼쳤나.
음악으로 어디든 갈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초연 이후 클럽 공연을 했다. 홍대 클럽에서 한 달에 한 번 공연했고, 합정동 제비다방 등 요즘 핫한 장소에서 공연했다. 또 베를린에서 모듈러 신스(각기 다른 기능을 가진 모듈로 구성된 아날로그 신시사이저) 뮤지션들이 공연하는 아쿠드라는 클럽에서도 초청이 와 공연을 하고 돌아왔다. 100년이 넘은 건물을 리모델링해 복합문화공간으로 사용하는 곳이었는데 모듈러 신스의 성지라고 불리는 곳이라 무척 의미 있었다.

1 <이희문프로젝트 날(陧)> 공연 모습.

베를린 현지인들의 반응은 어땠나.
보컬, 서양 리듬악기인 드럼, 한국 리듬악기인 장구, 그리고 모듈러 신스로 이루어진 공연이었다. 보컬의 보이스가 주축이 되어 이끌어갔는데 아무래도 들어보지 못한 한국 전통 창법이라든가 이색적인 리듬 같은 것들 때문에 신기하고 재미있어했다.
국악계의 이단아로 통한다. ‘이게 국악인가?’ 하는 의문도 불러일으킨다. 이 같은 파격의 이유는 무엇일까?
자연스러운 거라고 생각한다. 대중이 전통이라고 말하는 개념과 내가 전통이라고 생각하는 단어의 개념이 다르다. 나는 전통이 항상 ing, 즉 현재진행형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가 전통이라고 부르는 것은 100년 전 만들어질 당시에는 아마도 가장 유행한 것이었을 거다. 그때 당시 힙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올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 전통이라고 해서 옛것만 그대로 답습한다면 과연 그게 옳을까? 동시대성을 가지면서 지금 가장 힙한 것이야말로 100년 후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남을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대중예술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좋으면 따라오고 싫으면 말면 된다. 나는 실패가 중요한 사람도 아니다. 앞으로 100년 후에 전통이 될 것을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국악이라는 단어에 대해서도 반감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다.
나는 경기민요를 하는 사람이지 국악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왜 국악이라고 뭉뚱그려서 이야기하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일본의 민족문화말살정책 때문이 아닐까 싶다. 국악이라는 단어는 종량제 쓰레기봉투와 같다. 고유의 이름을 가진 물건들이 종량제 쓰레기봉투에 들어가면 쓰레기라는 하나의 이름이 된다. 국악이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부담감도 있다. 이걸 꼭 지켜야 할 것 같은 부담이 들어서 편하지 않다. 그래서 나는 국악이란 단어 대신 전통음악이라고 얘기하고 경기민요를 한다고 밝힌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꾸 판소리하는 사람이라고 얘기한다.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문화는 관심에서 출발한다. 민요의 가사는 100년 동안 소멸되지 않고 살아남았다. 그만큼 텍스트의 힘이 있다는 의미다. 관심을 가지고 들어보면 좋아진다. 나도 10년 넘게 경기민요를 하지만 작년에 부른 <청춘가>의 느낌이 다르고 어제 부른 느낌이 다르다.
전통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조용조용하던 목소리에 점차 힘이 실렸다. 전통이라고 옛날부터 내려오던 민요만 부르는 것이 다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그는, 자신이 최신 음악을 하는 것이야말로 100년 후 전통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악계의 이단아, 이게 무슨 전통음악이냐 등의 지적들에도 의연함을 유지하며, 자신이 옳다고 믿는 길을 계속 걸어가는 모습에서 뚝심이 느껴졌다.

2 <한국남자> 공연 모습.
3 <깊은舍廊사랑> 3부작 공연 모습.

크게 영향을 준 스승은 누가 있나?
어머님이 소리를 하는 집안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유년시절엔 대중가요, 팝송을 좋아하고 클럽도 다니고 했다. 그러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과 민요가 섞일 순 없을까 생각했다. 민요하는 사람은 왜 웨이브를 하면 안 되나? 원래라는 건 없는 것 같다. 스승인 이춘희 명창께서 “전통을 고수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너처럼 다양한 시도를 하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그래야 발전하고 조화를 이룬다”라고 격려해주셨다. 안무가 안은미 선생님이 정신적인 멘토가 되어주셨다. 그분을 만나면서 경계가 없어졌다. 또 송혜진 전 국악방송 사장님, 음악 작업을 함께한 음악동인 ‘고물’ 이태원 감독님 등의 영향을 받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분은 금전적으로 지원해주신 어머니다.
유명한 소리꾼인 고주랑 경기소리예술원 원장이 어머니다. 전폭적으로 지지해주셨을 듯하다.
사실 어머니는 내가 소리하는 걸 처음에는 반대하셨다. 그러다가 스승님이 시키라고 해서 허락하셨다. 남자가 소리해서 어떻게 사느냐고 하셨다. 소리를 하기 전에는 뮤직비디오 연출을 했는데 다시 국악과에 들어가 공부를 하고 20대 후반의 늦은 나이에 국악의 길로 접어들었다.
지난해 KBS1 <도올아인 오방간다>에 도올 김용옥 선생, 배우 유아인 씨와 함께 출연해 강렬한 모습을 보이며 대중에게 크게 알려졌다.
사실 방송은 나와 맞지 않는데 <도올아인 오방간다>는 유아인 씨가 재능도 있고 방송국이 내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도록 재량을 줘서 출연했다. 만일 방송국이 시키는 틀 안에서 하는 거였다면 아마 거절했을 것이다.
방송에서 파격적인 외모가 대중에게 충격을 주었다. 강렬한 패션은 어떤 의도였나.
나는 공연을 할 때 옷을 한 벌만 가져간 적이 한 번도 없다. 뭘 입을지 모르니까 다 가져간다. 무대 컨디션을 보고 상황에 맞는 의상, 가발, 화장 등을 결정한다. 비주얼을 만드는 건 또 다른 인격을 만드는 것이다. 정장을 입을 때와 캐주얼한 옷을 입을 때 마음가짐이 달라지는 걸 느낀다. 센 의상을 입으면 말투나 행동, 눈빛이 다 달라진다. <도올아인 오방간다>에서는 두 사람이 워낙 세니까 이희문이라는 개인이 아니라 오방신이라는 신의 캐릭터를 만들어서 나갔다. 두 사람과 나란히 하려면 사람으로는 안 되겠구나 싶었다. (웃음) 오방신 캐릭터를 위해 화려하고 원색적이고 반짝이는 것들을 이용해 나름대로 꾸며봤다.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강렬한 분장은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그만의 방식이었던 셈이다. 개인 이희문이 아니라 자신이 창조해내는 새로운 캐릭터로 완벽하게 변신하기 위한 티켓이 바로 분장이었다. 얼굴에 하얀 칠을 하고, 화려한 의상을 입고, 하이힐을 신고 무대에서 뛰다 보면 개인 이희문은 사라진다.
<도올아인 오방간다>는 유아인 씨가 추천했다고 들었다. 평소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나.
전혀 없었다. 듣기로 유아인 씨가 씽씽밴드를 알고 있어서 담당 PD에게 추천했다고 한다. 씽씽밴드의 공연을 보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칭찬을 하며 홍보대사를 자처했다고 들었다. 프로그램 이야기가 오갈 당시에는 씽씽밴드가 해체되었기에 제안을 고사했는데, 재차 뭔가를 만들어보자고 제안해 함께하게 됐다.
프로그램을 함께한 후 무척 친해졌을 듯하다.
친해졌다기보다 서로를 존경하게 되었다. 유아인 씨를 보면 편하게 살아도 되는데 왜 저렇게까지 고민하지 싶다. 세상을 바꾸고 싶어 하는 색다른 연예인이다. 어쩌면 연예인이라기보다 아티스트 같다. 유아인 씨는 나를 ‘리스펙트’한다고 말해준다. 서로의 어떤 부분을 존중해준다.
파격적인 활동을 통해 도달하고 싶은 지점은 무엇일까?
완생이 되고 싶다. 어렸을 때 환경적인 요인으로 형성된 성격, 성향, 가치관 이런 것들이 평생을 간다. 그때 형성된 것을 평생을 들여서 고쳐나가는 게 인생 같다. 물론 살면서 고치지 못하는 것이 있다. 내 성격 중에서 미생 같은 부분이 있다. 늘 고쳐야겠다고 생각한다. 작업을 하면서 계속 치유하고 고쳐나가서 완생이 되고 싶다. 안은미 선생님을 보면 참 대단한 분이라는 걸 느끼는데, 굉장히 멀티풀하시다. 한 번에 여러 생각을 하신다. 나는 한 번에 한 가지 생각밖에 못한다. 또 나는 말주변이 없다. 말로 천 냥 빚을 갚는 넉살이 없다. 마음은 있으나 말로 표현을 잘 못한다. 칭찬을 잘 못하고 살갑지 않다.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쉽지 않다.

새해가 시작되는데, 새해 계획은 어떻게 세웠나.
우선은 지금 하고 있는 여러 가지 프로젝트들을 제대로 된 레퍼토리로 만들고 싶다. 안은미 선생님을 보면서 제대로 된 작품으로 레퍼토리를 만들어두면 계속 공연할 수 있다는 걸 배웠다. 지금도 레퍼토리 부자라는 얘기를 듣지만 지금까지 만든 레퍼토리를 계속 운영하면서 새로운 실험들을 추가하고 싶다.
새롭게 도전을 꿈꾸는 것이 있다면?
기존에 안 해봤던 게 사실 연기다. 나는 민요를 하는데 민요는 문학 장르로 따지면 시다. 이에 비해 판소리는 소설이다. 민요를 하면서 틀에 박힌 연기가 아니라 나다운 연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혼자 하는 1인 뮤지컬 같은 걸 해보고 싶다. 단시일에 할 수는 없겠지만 올해부터 차근차근 준비해볼까 한다. 연출이라든가 작가들과 같이 작업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다 보면 답이 나오지 않을까.
영화에 대한 꿈을 밝히기도 했다.
궁극적으로는 영화를 꼭 한 번 만들고 싶다. 영화라는 콘텐츠 자체가 가장 파급력이 있다. 내가 하고 있는 소리에 관한 이야기를 스크린에 담아보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우연히 영화감독 친구가 생겼다. 그 친구가 최근 영화감독이 돼 첫 영화를 발표하고 좋은 반응을 얻었다. 내가 그 친구의 영화에서 엔딩 곡을 불러주었다. 그 친구와 같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더 나누고 싶다.
평범하지 않은 삶이 힘들지는 않나.
그런 생각을 했던 시기도 있지만 지금은 한 가지를 얻었기에 한 가지를 잃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절대로 다른 사람이 가진 걸 시기, 질투하지 않는다. 처음 소리판에 들어왔을 때 함께 민요를 하던 동갑내기 남자 소리꾼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키도 크고 잘생기고 소리도 타고났다. <춘향전>을 한다면 그 친구는 이도령 감이고 나는 방자 감인데, 내가 이도령을 하겠다고 나서면 안 된다. 나는 방자를 하면서 신스틸러가 되면 된다. 자신을 잘 파악하면 빨리 성공할 수 있다.
글 김효원_스포츠서울 기자
사진 손홍주
사진 제공 이희문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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