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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1월호

양준일과 로드리게즈 돌아온 슈가맨
“양준일이 화제라고? 아니, 갑자기 왜?” 믿을 수 없었다. 거의 30년 전에 잠깐 활동하고 사라진 가수가 SNS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니. 그것도 40대 이상 중년층이 아니라 20~30대 젊은 층 사이에서. 아무리 뉴트로(뉴+레트로)가 유행이라지만, 별게 다 트렌드가 되는 세상이로군. 지난해 일이었다.

시대를 앞서간 음악인

양준일의 유튜브 영상을 찾아봤다. 1991년께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는 많이 튀는 가수였다. 당시 한국에선 드물던 뉴잭스윙 스타일의 음악에다 마이클 잭슨을 연상시키는 춤사위를 선보였다. 아니, 마이클 잭슨과는 또 달랐다. 그의 몸짓에선 정교하게 짠 안무 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느낌대로 자유롭게 추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게 멋졌다. 춤으로 대화를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모습을 감췄고, 내 기억에서도 잊혀갔다.
영상에 달린 댓글들을 봤다. “지디(지드래곤) 아닌가요?” “1991년에 태어난 내가 1991년에 데뷔한 가수한테 빠질 줄이야.” “이 모습 이대로 딱 한 번만 보고 싶다.” 양준일의 근황을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았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서 영어학원을 한다느니, 미국으로 돌아갔다느니, ‘카더라’ 설만 무성했다.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자 언론에서 제법 그를 찾아다닌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마침내 그가 나타났다. 지난 12월 6일 JTBC 예능 프로그램 <투유 프로젝트-슈가맨 3>에서였다. 외꺼풀이 매력적이었던 눈에 짙은 쌍꺼풀이 생긴 것 말고는 치렁치렁한 머리 스타일이며 분위기가 28년 전 그대로였다. 히트곡 <리베카>와 <가나다라마바사>를 라이브로 부르면서 춤을 추는데, 그때 그 느낌이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그는 여전히 몸짓으로 대화하는 타고난 춤꾼이었다. 이런 끼를 가지면서 가수는 왜 그만두었던 걸까? 그동안 어디서 뭐 하고 있었던 걸까?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양준일의 얘기는 충격적이었다. 그의 음악과 춤, 스타일에 호불호가 갈렸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토록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건 미처 몰랐다. “쟤는 왜 이렇게 영어를 많이 써?” “머리가 왜 이렇게 길어?” “남자가 귀걸이는 왜 했어?” “난 네가 너무 싫어.”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공연을 할 때 날아오는 돌을 피하며 노래해야 했다는 얘기는 믿기 힘들 정도로 황당했다.
가수를 그만둔 사연은 더 기막혔다. 미국 국적의 양준일이 한국에 머물며 가수 활동을 하려면 6개월마다 비자 연장 허가를 받아야 했다. 언젠가 허가를 받으러 갔더니 연장 여부를 결정하는 담당관이 바뀌어 있었다. 새 담당관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난 너 같은 사람이 한국에 있는 게 너무 싫어.” 그러고는 허가를 해주지 않았단다. 양준일이 예정된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데, 불법 체류를 단속하는 공무원이 찾아왔다. “당신은 이 공연을 할 수 없습니다.” 양준일은 공연도 하지 못한 채 미국으로 내쫓겼다.

1 <리베카> 활동 당시 음악방송에 출연한 양준일의 모습. Again 가요톱10 유튜브 화면 갈무리.
2 최근 <투유 프로젝트-슈가맨 3>에 출연한 양준일의 모습. JTBC 유튜브 화면 갈무리.

그의 삶이 더 이상 요동치지 않기를

<투유 프로젝트-슈가맨>이라는 프로그램의 제목은 2012년 개봉했던 영화 <서칭 포 슈가맨>에서 유래했다. 1970년대 초 미국에서 단 두 장의 앨범을 남기고 사라진 무명가수 로드리게즈의 사연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지구 반대편인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그의 노래는 국민 히트곡이다. 어쩌다 전파된 앨범은 그를 ‘슈가맨’이라는 슈퍼스타로 만들었다. 하지만 남아공 사람들은 ‘슈가맨’이 어디서 뭘 하는지 알지 못한다. 죽었다고 아는 이들도 많다. 영화 제작진은 단서를 조합해 ‘슈가맨’을 찾아 나선다. 어렵게 찾아낸 노래의 주인공 로드리게즈는 평범한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고 있었다. 자초지종을 듣고 놀란 로드리게즈는 남아공으로 날아간다. 그곳 사람들의 엄청난 환대와 뜨거운 환호 속에 공연을 한다. 그러고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노동자의 삶을 살아간다.
<투유 프로젝트-슈가맨 3> 제작진이 양준일을 찾아냈을 때, 그는 한국의 지구 반대편인 미국 플로리다에서 식당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아내와 어린 아이를 둔 가장으로서 하루하루 벌어 생계를 꾸려야 했다. 제작진이 그에게 방송 출연을 제안했지만, 그는 흔쾌히 수락할 수 없었다. 방송 촬영을 하러 일을 잠시 쉬고 한국에 다녀오면 그나마 있던 일자리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다행히 식당 사장이 사정을 봐준 덕에 한국에 와서 거의 30년 만에 <리베카>를 라이브로 부를 수 있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많은 이들이 그의 사연에 안타까워하며 크게 감동했다. 방송을 마친 뒤 그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다.
로드리게즈와 양준일. 시대가 품지 못한 두 천재 아티스트. 뒤늦게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묵묵히 삶을 이어가는 모습까지, 두 ‘슈가맨’은 꽤나 닮았다. 이 글을 쓰는 오늘, 양준일이 플로리다의 식당을 그만두고 한국에 와서 팬미팅을 열 예정이라는 기사가 떴다. 뒤늦게 꿈을 이루는 건 기쁜 일이지만, 이 일로 그의 삶이 더는 요동치지 않았으면 한다. <서칭 포 슈가맨> 마지막 장면에서 로드리게즈는 걷고 또 걷는다. 양준일도 그처럼 걷고 또 걸었으면 좋겠다.

글 서정민_한겨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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