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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호

<평화의 소녀상> 출품된 <표현의 부자유, 그 후> 전시 중단 사건예술은 검열과 탄압 앞에 더 강해진다
소녀상 전시는 사흘 만에 강제 폐쇄됐다. 이는 ‘소녀는 사흘 만에 끌려 나왔다’는 문장 이상으로 처절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피해를 상징하는 조각 작품 <평화의 소녀상> 이야기다. 지난 8월 1일 아이치현 나고야시 아이치현문화예술센터에서 개막한 ‘아이치트리엔날레 2019’는 전시 속 전시 형식으로 특별전 <표현의 부자유, 그 후>를 함께 열었고 <평화의 소녀상>은 출품작 중 하나였다. 전시 개막 사흘 만인 8월 3일, <평화의 소녀상>을 비롯한 <표현의 부자유, 그 후> 전시가 전격 중단됐다. 정치적 검열에 의한 예술 탄압이라며 참여 작가는 물론 세계 미술계가 즉각 반발했다.

<표현의 부자유, 그후> 특별전에 출품된 <평화의 소녀상>. (김운성 작가 제공)

아이치트리엔날레 측은 지난 8월 3일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과 오무라 히데아키 아이치현 지사의 일방적인 통보로 <표현의 부자유, 그 후> 전시가 오늘 오후 6시를 기점으로 중단됐다”고 밝혔다. 극우·보수 세력의 협박으로 인한 전시 사무국의 심각한 고충도 이유로 곁들였다. 전시 중단 이전부터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냉랭했다. 우리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판결에 대해 일본이 8월 2일부로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 국가)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했던 것. 경제적 보복을 감행한 데 이어, 바로 다음날 예술적 탄압까지 전개하는 형국이 펼쳐졌다.
역사 문제를 정치적, 경제적으로 악용하고 예술에까지 영향을 미치려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명제다. <표현의 부자유, 그 후> 전시는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그간 외압과 제재로 제대로 전시되지 못했던 작품들을 한자리에 모아 선보인 자리였다. <평화의 소녀상>은 앞서 2012년 도쿄도립미술관에서 20cm 크기의 모형 소녀상으로 전시될 예정이었으나 ‘정치적 표현물’이라는 이유로 철거된 바 있다. 사진작가 안세홍의 <겹겹> 연작의 경우 2012년 도쿄 니콘살롱에서 <겹겹-중국에 남겨진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라는 제목의 사진전으로 선보일 예정이었으나 개막 직전에 ‘전시 거부’를 통보받았다. 이들 한국 작가 외에도 일본 천황을 정면으로 비판한 일본 작가 등이 <표현의 부자유, 그 후>에 포함됐다. 전시가 개막하던 날, 의외로 일반 관객의 호응은 따뜻했다. 소녀상을 어루만지고 소녀상 옆에 앉는 관람객도 상당수였다. 어쩌면 그런 환대가 일본 정부의 눈에 거슬렸을 수 있다. 개막 바로 다음날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기자회견을 열어 “(전시에 대한) 정부 보조금 교부 관련 사실 관계를 조사해 적절히 대응하겠다”고 압박했다.
아이치트리엔날레는 정부와 지자체의 예산지원이 끊기면 운영 자체가 위태로운 것이 사실이다. 여기다 해외 홍보까지 위축됐다. 일본국제교류기금은 아이치트리엔날레 홍보를 위해 수개월 전부터 해외 언론 초청 행사를 추진했으나 이것 역시 개막 다음날 전격 중단됐다. 전시 중단 조치로 전시장에는 흰색 가벽이 설치됐다. 작품 이미지와 전시 검열에 대한 논란을 의식한 듯 사진 촬영과 SNS 게재를 금지하는 경고 문구도 붙었다.

검열과 탄압에 미술계 반발 역풍

아이치트리엔날레 본전시에 초청된 박찬경, 임민욱 등의 한국 작가는 물론 <표현의 부자유, 그 후> 전시와 무관한 본전시 참여 작가들도 ‘전시 거부’ 의사를 전하고 성명을 발표했다. ‘표현의 자유’를 억압당한 예술가들의 반발이다. 임민욱 작가는 “한일 갈등 때문에 예술이 정치적 도구로 이용되는 것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검열에 대항하는 ‘표현의 자유 문제’에 작가로서 침묵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찬경 작가는 “한일 정치 갈등 이전에 ‘표현의 자유’를 주제로 한 전시를 중단시켰다는 사실 자체가 더 큰 문제”라고 지적하며 “검열과 검열에 관련된 사회적 협박에 굴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평화의 소녀상>을 만든 김운성 작가는 “일방적으로 전시 중단 통보를 받은 상황”이라며 “전시 큐레이터를 비롯한 실행위원들이 전시 중단의 중지를 요청하는 가처분신청 등 법적 대응을 준비 중이다”라고 말했다. 이는 비단 한국의 견해만은 아니었다. 사카구치 쇼지로 히토쓰바시대 법학 교수는 “일본 사회가 편협해져 타인의 가치관을 인정하지 않게 됐다”며 “정치와 문화는 분리해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나미 고지 와세다대 명예교수는 “소녀상 등의 설치가 불쾌하다는 이유로 전시를 그만두게 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에 반하고, 비판이 강하다는 이유로 주최 측이 전시를 중단하는 것도 용납할 수 없다”며 “혼란을 이유로 중단하는 것은 반대파의 의도대로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시 중단 이후 광주비엔날레는 성명을 발표해 유감을 표하고 “일본의 집권여당을 포함한 주류 정치권이 전방위적으로 압력을 행사했을 뿐만 아니라 행정기관이 일방적으로 전시 중단을 통보함으로써 예술가의 표현의 자유를 저지하고 검열한 폭력적인 사안”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국제박물관협의회(ICOM) 산하 위원회로 세계 주요 미술관 관장과 기획자들이 위원으로 참여한 국제근현대미술관위원회(CIMAM)는 “이번 전시 중단 결정은 그 자체로서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이라며 “정치적 협박과 위협으로 인해 전시가 중단됐다는 사실을 강력히 비판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SNS상에서는 빈 의자 옆에 앉아 있는 행동을 통해 전시 중단에 반발하는 게시물이 이어졌다. 국내에서는 관련 심포지엄이 열렸다.

검열 앞에 더욱 강력해지는 예술 공론장

검열은 검열이 자행되는 그 순간에도 절대 검열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여러 곳에서 소리 없는 압박을 가하기에 검열은 잔인하다. 그럼에도 예술은 검열의 압박이 강해질수록 날카로운 비명소리로 세상을 깨운다. 예술은 겉보기에 유약하나 무척이나 강력하다.
깨달을 때다. 비엔날레와 트리엔날레 등의 행사는 동시대 미술의 흐름을 보여주는 전시의 차원을 넘어 제도권에서 다루기 힘든 정치적·사회적 이슈를 다양한 시각예술 담론으로 펼쳐내는 갈등의 장(場)이다. 박제된 과거의 예술과 달리 현대예술은 실천적 가치를 함축한다. 어쩌면 예술에 대한 탄압은 예술의 정치적 힘을 두려워한 결과일지 모른다. <평화의 소녀상>을 가렸더니 오히려 그것을 기리는 움직임은 더 거세졌고, 그 자체가 예술 공론장의 상징이 됐다. 일본은, 제 발등을 찍었다.

글 조상인_서울경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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