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 메뉴로 바로가기 본문으로 바로가기
서울문화재단

문화+서울 seoul foundation for arts and culture

검색 창

서울시 동대문구 청계천로 517

Tel 02-3290-7000

Fax 02-6008-7347

문화+서울

  • 지난호 보기
  • 검색창 열기
  • 메뉴 열기

COLUMN

1월호

최은진의 새 앨범 <헌법재판소>만요의 전설이 돌아왔다
“프랑스에 에디트 피아프가 있고 미국에 엘라 피츠제럴드가 있다면 한국엔 최은진이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고마워요, 소울메이트>로 유명한 조진국 작가가 한 말이다. 최은진이 누구이기에 샹송의 전설 에디트 피아프와 재즈의 전설 엘라 피츠제럴드에 견준 걸까?

<헌법재판소> 서적과 음반.

1. <헌법재판소> 서적과 음반.

조진국 작가가 이 말을 했던 2010년, 최은진은 음반 한 장을 발표했다. 만요 음반 <풍각쟁이 은진>이다. 만요는 1930~1940년대 일제강점기에 널리 불린 노래다. <오빠는 풍각쟁이>, <빈대떡 신사> 등에서 알 수 있듯이 풍자와 해학이 담긴 노랫말을 특징으로 한다. 하나의 장르로 대접받거나 음악사적으로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최근 들어 당시 민중의 소소한 일상을 엿볼 수 있는 자산으로 재평가되고 있다. 최은진은 <오빠는 풍각쟁이>, <다방의 푸른 꿈> 등 만요 13곡을 불러 음반에 실었다.
음반을 들어보고 깜짝 놀랐다. 21세기에 나온 음반이 맞나 의심했다. 그 시대 음반을 복원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최대한 당시 분위기를 되살렸기 때문이다. 홍대 앞에서 활동한 듀오 ‘하찌와 티제이(TJ)’로 잘 알려진 일본 음악인 하찌가 프로듀서를 맡아 만요 특유의 느낌을 잘 살려낸 데다, 최은진의 목소리는 타임머신 그 자체였다. 이어폰을 꼽는 순간 1930년대로 날아간 것만 같았다. 매력도 있고 의미도 있는 음반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계속 듣게 되진 않았다. 매일 먹는 주식이 아니라 가끔 먹으면 좋은 별미 같은 음악이었다고 할까. <풍각쟁이 은진>은 그렇게 조금씩 잊혔다.

해체된 옛 노래, 파격을 담다

8년이 흘렀다. 가물가물했던 이름이 얼마 전 성큼 다가왔다. 최은진? 맞다! 풍각쟁이 은진! 그가 8년 만에 새 앨범 <헌법재판 소>를 낸 것이다. 처음에는 음반인지도 몰랐다. 내 책상 위에 놓여 있던 건 288쪽짜리 두툼한 책이었다. 책 표지를 펼치고 나서야 안쪽에 CD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번에도 1930년대 노래들이었다. 책에는 수록곡 10곡에 대한 해설과 당시 시대상을 전하는 글이 실려 있었다. 근사한 사료집이자 흥미로운 읽을거리였다.
음반을 들어보고 깜짝 놀랐다. 첫 번째 트랙으로 실은 인트로 격인 연주곡 <은진철도 고고고>부터 신선한 충격이었다. 옛날 분위기의 사운드를 예상했던 나의 뒤통수를 후려갈기기라도 하듯 세련된 컴퓨터 사운드가 흘렀다. 알고 보니 <풍각쟁이 은진>에 실었던 노래 <고향>의 도입부를 응용해 만든 곡이었다. 앨범 전체를 프로듀싱한 젊은 전자음악가 김현빈과 293(이구삼)의 솜씨였다. 둘은 옛 노래들을 해체하고 재구성해 색다른 분위기로 재탄생시켰다. 이들이 주조한 트렌디한 사운드 위로 최은진이 예스럽게 부른 노래는 기묘한 오라를 뿜어냈다. 사이키델릭 음악처럼 몽환적이다가도(<청춘 블루스>, <무너진 사랑탑>) 때론 애절하고(<아주까리 수첩>, <아마다미아>), 때론 들썩들썩 흥을 돋웠다(<그리운 그대>, <고향 파트 2>).

은진철도 고고고!

앨범에는 창작곡도 3곡 있다. 그중 하나가 앨범 제목이 된 <헌법재판소>다. 왜 헌법재판소일까? 최은진에게 인터뷰를 청하면서 궁금증이 살짝 풀렸다. 그는 서울 안국동에서 만나자고 했다. 안국동이면, 헌법재판소가 있는 곳이다. 그렇다면…? 약속 장소인 ‘아리랑’은 최은진이 2004년 문을 연 선술집 문화공간이다. 최은진은 <풍각쟁이 은진>을 내기도 훨씬 전인 2003년 나운규 탄생 100돌 기념 음반 <아리랑 소리꾼 최은진의 다시 찾은 아리 랑>을 발표했다. 연극배우를 하던 그가 어쩌다 아리랑연합회가 연 아리랑축제에 엮이면서 아리랑에 푹 빠졌기 때문이다. “음반을 내긴 했는데, 이걸 누가 듣겠어요? 혼자서라도 불러야겠다 싶어 여기 문을 열었죠.”
1930년대 만요와 인연을 맺게 된 것도 아리랑 덕이다. “아리랑을 공부하다 근대가요를 알게 됐는데, 너무 매력적인 거예요. 1930년대는 신식과 구식이 어우러진 묘한 시대였고, 우리 전통 민요와 일본 엔카, 미국 스윙재즈 등이 뒤섞여 독특한 매력을 풍긴 게 당시 만요였거든요.” 그는 아리랑에서 만요도 곧잘 불렀다. 이를 듣고 반한 음반 제작자와 손잡으면서 <풍각쟁이 은진>이 나온 것이다. <헌법재판소>도 아리랑 단골손님인 출판사 수류산방 사람들 덕에 나올 수 있었다. 최은진이 후속 음반을 내길 원했던 그들은 처음으로 음반을 기획·제작했다. 1930년대 노래를 부르되 이번엔 현대적으로 재해석해보자는 방향을 잡은 것도 그들이었다.
왜 ‘헌법재판소’냐고 물었다. 최은진은 아리랑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사로 쓴 노래라고 했다. “여기 온 손님들이 그렇게들 많이 울어요. 일찍 시집갔다가 두세 살 애를 두고 나온 엄마, 힘들게 연애하는 커플…. 그러면 함께 울기도 하고, 노래와 만담으로 웃겨드리기도 하고. 여긴 해우소예요. 요 앞 헌법재판소에서도 못하는 걸 여기서 풀어주는거죠.” 그제야 궁금증이 완전히 해소됐다. 아리랑은 치유와 해소의 장소인 듯했다.
사연을 듣고 나니 노래들이 더 매력적으로 들렸다. 듣고 또 들어도 질리는 법이 없었다. 지난 12월 1일 홍대 앞 더스텀프에서 열린 앨범 발매 기념 쇼케이스 <은진철도 고고고+대열차강도>에 가보고 신세계를 만났다. 노래와 연극을 결합한 음악극 형태의 무대는 신선하고 파격적이었다. 마지막에 <고향 파트 2>를 부르는 순간 백댄서들과 관객들이 한데 어우러져 기차놀이를 했다. 세대, 국경, 문화를 초월해 우주로 향하는 기차에서 내리고 싶지 않았다. 지금도 이어폰을 꼽으면 기차를 다시 탄 것만 같다. 은진철도 고고고~!

앨범 발매 기념 쇼케이스 <은진철도 고고고+대열차강도>

2, 3. 앨범 발매 기념 쇼케이스 <은진철도 고고고+대열차강도>.

글 서정민 한겨레 기자
사진 제공 수류산방
위로 가기

문화+서울

서울시 동대문구 청계천로 517
Tel 02-3290-7000
Fax 02-6008-73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