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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1월호

다시 찾은 청파동청파동에서 추억과 그리움의 고향을 잃다
삶에서 숫자로 기억해야 할 많은 일들은 대개 다 잊은 것 같다. 늙음이 원인이기도 하지만 인생에 관대해진 까닭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올리면 기다렸다는 듯이 현실이 되는 과거들. 지금 쓰려는 일이 꼭 그렇다.

청파동 전경

청파동과의 첫 만남

열여덟 살의 말복과 처서 사이에 있었던 일이다. 강원도 양양의 성내리 11번지에서였다. 늘 잊고 지냈는데 ‘청파동’ 때문에 홀연히 되살아났다. 사실 그 일이 없었다면 미아리고개 앞에서 촌뜨기 노릇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청파동의 추억을 만든 것은 나지만 그곳에 가도록 한 건 교장선생님이었다. 볕이 따가운 초가을 한낮, 학생인데도 학교에 가지 못하고 집에 있었다. 근신인가 하는 벌을 받은 처지라 깊은 반성을 해야 했지만 나로선 반성은커녕 학교와 선생님들이 마냥 싫기만 해서 적어도 나에 대한 처벌은 백해무익한 편이었다.
오후였던가? 우리 집 너른 타작마당으로 평범한 우리들과 다른 하얀 얼굴의 뚱보 교장선생님이 들어오는 걸 봤다. 보는 순간 두렵고 싫었다. 그가 우리 집에 왔다는 건 내게 아주 나쁜 일이 생길 징조라고 생각돼 당황스러웠다. 존경의 기색 없는, 문제아의 인사를 받은 그는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침묵 속 응시와 나의 당황 사이에서 나는 죽음 같은 절망을 절감하고 있었다. 그가 만든 침묵이 요샛말로 ‘을’이며 ‘찌질이’인 내게 어떤 질곡일지 그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숙명여대에서 널 꼭 보내라고 연락이 왔다…….”
그가 한 말 중에 이 말만 귀에 들어왔는데 금방 이해하지 못했다. 교장선생님은 여전히 권위적이고 위선적으로만 보였다. 그는 나에게 소설을 쓰느냐, 그 학교에 소설을 보냈느냐 등등을 물었다. 그제야 한꺼번에 이해가 됐다.
“……가작으로 입선이 되었는데 심사위원들이 널 꼭 보내라고 했단다.”
이런 경로를 통해 청파동과 나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하루에 딱 한 번, 새벽 4시인가 5시에 떠나는 버스를 타고 해골 그림과 ‘달리면 죽는다’는 글자가 쓰인 표지판이 군데군데 세워진 진부령을 넘어 신설동 시외버스 정거장에 닿았다. 멀미로 토하고 또 토했으니 얼굴이 오죽했을까. 그래도 나는 하늘을 쳐다보며 소설가 김승옥과 영화배우 신성일이 있는 하늘 아래 왔다는 사실에 감격했고 나 자신에게 감동됐다. 마중을 나온 난생처음 보는 아버지의 먼 친척. 그를 따라 용산역 근처의 집으로 가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정해진 시간에 숙명여대가 있는 청파동으로 갔다. 언덕길과 2층처럼 보이는 정갈한 집들, 회색 담장들, 우아함과 정갈함 사이에 버짐 같은 판잣집도 보였다. 판잣집이 나를 안심시켰다. 서울에도 가난한 사람들이 있다는 게 시골뜨기에겐 되레 다정했다. 길가엔 4층이나 5층짜리 건물들이 있었지만 크게 위화감을 주진 않았다. 난생처음 만난 서울의 청파동은 설악산 대청봉을 바라보며 자란 나를, 적어도 문화적으로는 압도시키지 않았다.

낯선 청파동을 마주하다

그러나 이날 이후로 수십 년이 지난 후에 우연히 가게 된 청파동에서 나는 그만 압도당해서 한동안 정신이 어질거렸다. 4호선을 타고 신용산역에서 내려 쌍굴다리의 위치를 물어봐야 했다. 굴을 빠져나와 청파동으로 건너가는 복개된 도로에서 보행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올려다본 청파동은 놀라웠다. 내 기억에 남아 있는 정갈하고 아담하고 심지어 우아하기까지 했던 동네는 어디로 갔을까. 높은 빌딩, 자연스러움을 흉내 내려고 애쓴 간판이나 상점들. 여기가 거기가 맞나? 청파동인가? 숙명여대는 어디 숨었을까? 1965년에 보았던 동네. 그런 동네에서 풍기던 이웃이 느껴지는 삶. 다 지워지고 사라지고 쓰레기처럼 없어졌다. 세월이 쌓이지 않은 그곳은 새로운 세상이었다. 이를테면 돈이 만들어내는 최고, 최상의 욕망으로 상징되는 또 하나의 도시적 생활이 치솟아 있었다. 그런 건물들도 분명, 땅에 주춧돌을 박고서야 높이 솟았을 터이지만 내겐 허공에 둥둥 뜬 것처럼 느껴졌다.
그날 청파동 퓨전 일식 술집에서 저녁을 산 강릉 후배 소설가 조선희, 김별아와 자리에 앉아서도 내 마음은 청파동 거리에 내려앉지 못했다. 물론 찾기 쉽다는 길가의 음식점을 찾는 데도 한참이나 헤맸다. 내 마음이 고집스럽게 그 거리를 밀어냈던 게 분명했다. 청파동 그 거리에서 내가 본 건, 아니 냄새 맡은 건 하나의 흥분과 들뜸과 수치심과 우울과 좌절과 절망에 분노와 슬픔까지 뒤섞인 욕망들의 표상이었다. 자연을 정복한 것만큼 자연에 패배한 도시문명…. 그 빛과 그림자가 내게 말했다. 넌 추억과 그리움의 고향을 잃었다고.
미안하다, 청파동아. 그러나 어쩔 수 없다.

글 이경자 서울문화재단 이사장, 소설가
사진 김영호 서울문화재단 창작지원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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