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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12월호

서울특별시 수도박물관‘근대 수도’의 시간과 공간
붉은 단풍잎과 노란 은행잎이 사라지기 전, 가을의 끝자락에 소개하고 싶은 곳이 있다. 바로 뚝섬에 있는 서울특별시 수도박물관이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중 하나로 붉은 벽돌 건물과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이 있는 이곳은 가을과 겨울 사이, 고즈넉한 산책을 즐기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일 것이다.

근대적 수도의 등장

서울에 본격적으로 상수도 시설이 설치되고 상수도 공급이 시작된 것은 1906년 이후였다. 1903년 일본인들이 소규모로 설치해 사용한 사설 상수도가 남산 일대에 있었지만, 국가적인 차원에서 상수도 시설을 마련하고 서울시민을 대상으로 상수도를 부설한 것은 1906년 이후의 일이다. 1903년 서울에 전기를 부설했던 콜브란과 보스트위크가 대한제국으로부터 수도 부설권을 획득했으나 1905년 영국인 토목기술자인 휴 포스터 바햄(Hugh Garrat Foster Barham)이 설립한 대한수도회사(Korea Water Works Co.)에 부설권을 양도했고, 콜브란과 보스트위크는 1906년부터 시작된 공사의 도급을 맡았다. 현재 수도박물관 본관으로 사용되는 붉은 벽돌 건물인 송수펌프실과 침전지, 완속여과지, 정수지를 비롯하여 대현산 배수지를 완공해 1908년 상수도 시설이 준공됐다. 일본의 경우 에도시대부터 상수도 시설이 발달했다. 한데 19세기 말 서구의 기술, 특히 영국의 기술이 동아시아에 도입되어 만들어진 근대적 상수도의 특징은 무엇일까? 가장 큰 특징은 ‘정수’ 과정을 거쳐 ‘철관’을 통해 배수한다는 점이다. 이는 콜레라 등의 전염병을 막기 위해 수질 관리가 중요했던 근대도시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특히 서울의 상수도는 펌프를 이용하여 한강수를 퍼 올렸으니 높은 계곡의 물을 수도관을 통해 끌어내려 배수하던 이전의 상수도와는 분명 큰 차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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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도박물관 본관으로 사용 중인 송수펌프실, 완속여과지, 야외의 배수관들이 주변의 나무들과 어우러져 있다.

2 1907년 완공된 송수펌프실. 독립문을 닮은 석재 아치 입구와 주변의 아치창들, 모서리의 벽돌과 돌이 엮여 있는 처리가 인상적이다.

3 출입구인 아치문 위에 있는 난간은 그 형태가 영국영사관의 난관과 거의 유사하다. 건물의 박공 부분에는 ‘Seoul Waterworks 1907’이라고 쓰인 현판이 붙어 있다.

110년 된 수도 시설의 면면

현재 수도박물관으로 사용되는 붉은 벽돌 건물은 1907년 건축한 송수펌프실이다. 한강수를 취수하여 침전-여과-정수의 과정을 거쳐 깨끗해진 물을 대현산 배수지까지 동력을 사용하여 퍼 올리는 펌프가 있었던 공간이다. 펌프와 송수관들만 놓여 있는 기능적인 공간이라 공장이나 창고처럼 장방형 평면에 간단한 지붕 구조만 있는 건물이다. 한데 한국 최초의 상수도라는 상징성을 의식해서인지 입구에는 독립문처럼 생긴 아치형 포치가 돌출되어 있고, 그 문 위로는 영국공사관과 같은 모양의 난간이 설치되어 있다. 그 위에는 ‘Seoul Waterworks 1907’이라고 쓰인 돌판이 부착되어 이 공간의 역사적, 상징적 성격을 잘 드러낸다. 화려하진 않지만 충분히 상수도의 ‘신전’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이와 유사하게 거의 같은 시기인 1907~1909년에 만들어진 타이베이 상수도의 송수펌프실은 고전적인 열주랑이 전면에 늘어선 서양 고전주의 건축 양식을 취하고 있다. 이곳 역시 현재 수도의 역사를 보여주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건축물 자체가 아름다워 신혼부부들의 웨딩촬영 장소로 사랑받고 있다. 당시 수도 시설과 그 시설의 펌프실이 가지고 있던 위상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또 하나 주목할 공간은 완속여과지이다. 완속여과법이란 상수도 부설 초기에 사용했던 방식으로, 혼화제나 약품 등을 사용하지 않고 자갈, 모래 등을 천천히 투과시켜 물을 여과하는 방법이다.
이곳은 1990년까지 사용되었는데 무려 82년의 시간 동안 그 기능을 다했다.
측면에 동그란 원형창이 있고, 전면에는 아치문이 있는 돌출된 구조물과 큰 아치철문이 달린 입구가 연속적으로 나열해 있다. 1908년 완공된,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이다. 내부로 들어가면 완만한 아치로 연속된 기둥들이 마치 고대 로마의 유적을 보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완속여과지를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로 덮은 이유는 겨울에 물이 얼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는 더 이상 완속여과법을 사용하지 않지만 초창기 수도의 정수 기법을 잘 보여주는 공간이다. 여과지 앞부분 마당에는 1907년 이후 사용된 다양한 종류의 송수관, 배수관 및 사이폰 등이 전시돼 있다.
서울특별시 수도박물관 외에도 옛 상수도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곳이 있다. 미국대사관저 내에는 대한수도회사 시절, 즉 대한제국기에 설치된 듯한 영국제 철제 수도 덮개가 남아 있으며 회현동을 비롯한 서울 곳곳에는 일제강점기에 설치된 양수기 덮개, 맨홀 등이 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용하고 있는 이 공공 시설물들은 관심을 가지고 보지 않으면 결코 보이지 않을 위치에서 묵묵히 제 역할을 감당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오래된 시간의 흔적들이 부디 소리 없이 사라지지 않길 바라며, 이제는 우리의 일상이 되어버려 전혀 특별하지 않지만 한때 ‘근대’의 상징과도 같았던 수도의 시간과 공간들을 서울특별시 수도박물관을 거닐며 기억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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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1908년 준공된 완속여과지의 내부. 완만한 아치를 띠는 콘크리트 구조물이 인상적이다.

5 회현동에 남아 있는 일제강점기 京水(경성수도)의 양수기 덮개.

6 영국의 J. Blakeborough & Sons 사에서 제조한 KWW(Korea Water Works) 사의 수도 덮개.

글·사진 이연경 연세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건축역사이론 전공으로 석·박사를 취득했다. 한성부 내의 일본인 거류지에 대한 박사논문으로 제6회 심원건축학술상을 수상하였으며 인천대 지역인문정보융합연구소에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한성부의 ‘작은 일본’ 진고개 혹은 本町>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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