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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12월호

서울로7017 위에서행정의 욕망을 응시하다
조금 거칠게 표현하면, 남산은 서울의 섬이다. 섬이 섬인 이유는 오지이기 때문인데, 남산은 서울시민에게 ‘마음의 오지’다.(이문재 시인의 표현을 빌렸다.) 그래서 서울사람들은 좀체 가지 않는다. 남산은 등산하는 산이 아니라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는 산이다. 그 케이블카를 타는 것은 왠지 서울시민답지 않은 행동인 것 같아 우리를 지나치게 하고 남산순환도로의 왕돈가스가 우리를 멈추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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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7017에는 다양한 수목이 트리팟 형태로 심겨 있다.

남산을 섬으로 만든 범인은 순환도로다. 올림픽대로와 강변북로가 한강 둔치를 시민들로부터 단절시켰듯, 순환도로는 남산을 시민들로부터 격리시켰다. 덕분에 남산은 근대의 시간에 머물러 있다. 일제강점기 통감부와 신사 터를 비롯해, 예장 자락의 중앙정보부 터, 독재정부 시절 만든 과학관과 식물원을 개조한 시설 등 권위주의 시대를 기억하는 지배의 공간들이 남아 있다.

사라져버린 ‘길’, ‘전망대’, ‘쉼표’

서울로7017은 내게 ‘남산섬’으로 갈 수 있는 연륙교 구실을 한다. 중림동 사무실에서 서울로7017을 통해 반대편으로 건너가서 힐튼호텔 쪽으로 꺾어 올라가면 ‘남산섬’에 걸어서 갈 수 있다. 이 방향으로 오르면 백범광장이 나온다. 서울의 서쪽 풍경을 조망할 수 있는 언덕인데 저문 도시의 풍경을 볼 수 있어 석양이 일품이다.(물론 서울로7017 위에서 바라보는 석양도 충분히 훌륭하다.)
광화문광장이 ‘세상에서 가장 큰 중앙분리대’(승효상 건축가의위에서표현)라면 서울로7017은 ‘세상에서 가장 긴 육교’라 할 수 있다. 도로와 광장, 다시 철길과 창고와 도로로 분리되었던 서울역 동쪽과 서쪽을 잇는 육교다. 차가 다녔던 고가도로를 육교로 바꾼 서울로7017의 본질을 풀어서 말하자면 ‘길’, ‘전망대’, ‘쉼표’, 이 세 가지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서울로7017은 길이다. 길은 걷기 편해야 한다. 걷기 편하려면 거침이 없어야 한다. 그런데 서울로7017에는 거침이 많다. 정말 많다. 서울로7017은 전망대다. 고층 건물의 중턱을 볼 수 있는 독특한 전망대다. 그런데 이 전망대의 풍경을 감상하고 있는 건 나무들이다. 서울로7017은 쉼표다. 바쁜 도시인들이 잠시 쉬어가는 곳이다. 걷다가 쉬려면 앉아야 한다. 그런데 앉을 곳에서는 죄다 물건을 판다. 쉬려면 돈을 내라는 것이다. 트리팟 모퉁이에 앉는 방법도 있지만 보행에 방해가 될 듯해 앉기가 조심스럽다.
서울로7017엔 행사가 많다. 목련마당 목련무대에는 늘 몽골텐트가 설치되어 있고 다양한 행사를 진행한다. 장미마당 장미무대는 늘 무대가 활짝 열려 있어 공연이 없는 것이 더 이상해 보인다. 행사를 하면 거하게들 해서 서울로7017 전체를 행사로 수놓기 일쑤다. 서울광장의 행사 과잉은 그대로 서울로7017로 이어진다.
서울로7017에 시설이 많아지고 행사가 잦아지면서 ‘길’, ‘전망대’, ‘쉼표’라는 본질은 약해졌다. ‘길’, ‘전망대’, ‘쉼표’라는 본질이 약해지는 것은 서울로7017에 대해 서울시가 이것 이상을 욕망하기 때문이다. 회사가 근처여서 종종 서울로7017에 산책을 가는데, 서울시는 이곳을 거대한 미디어 플랫폼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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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위에서 내려다본 서울로7017.

2 목련다방.

‘TMD’의 공간

요즘 많이 쓰는 인터넷 약어 중에 ‘TMI’라는 말이 있다. ‘투 머치 인포메이션’의 줄임말이다. 너무 많은 정보가 오히려 해가 된다는 의미다. 행정의 이런 욕망에는 ‘TMD’를 붙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투 머치 디자이어’, 너무 많은 욕망이 행정을 그르치게 한다는 의미로 말이다. 서울로7017은 한마디로 ‘TMD’의 공간이다. 너무나 많은 것을 하려고 해서, 뭘 하려는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 경지로 이끈다.
목련마당 목련무대는 이런 행정의 욕망이 꽃피는 곳이다. 이곳에서 가장 빈번하게 열리는 전시 중 하나가 염천교 수제화 장인들의 신발 전시다. 몽골텐트를 쳐놓고 다양한 방식으로 수제화 전시를 하는데 이제 이곳은 으레 이런 행사를 하는 곳으로 자리가 잡힌 듯하다.(좁은 서울로7017에서 목련마당이 그나마 넓은 곳이기는 하다.) 하지만 행사장 크기만큼 서울로7017의 공간을시민들은 잃은 셈이다.
서울로7017에는 보행을 방해하는 것들이 즐비하다. 일단 트리팟이 과도하게 많고 크다. 화분에 담겨 있으니 수목이 모여서 숲을 이루지 못하고 마치 함께 있지만 외로운 도시인처럼 쓸쓸하게 서 있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설계자의 의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내센터나 카페로 이용되는 다양한 원형 실린더 공간이 너무 크게 설계되어 있다. 보행할 때는 에둘러서 갈 수 있지만 시야를 심하게 가린다. 서울로 안내소, 서울로 가게, 목련다방, 수국식빵, 서울로 전시관, 장미마당, 장미빙수, 도토리풀빵 등 시설이 너무나 많다.
공간적으로 보행을 방해하는 것과 함께 따져보아야 할 문제가 시간적으로 보행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행사를 하면 준비하는 시간과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한데 이 시간 동안 시민들은 불편을 감내해야 한다. 문제는 이런 행사가 너무 빈번하다는 점이다. 행사 준비와 정리로 늘 분주하다. 잊지 말자, 서울로7017의 핵심은 보행이다. 행사는 덤이다. 지금 서울로7017의 모습은 너무 많은 학원에 보내서 학교 공부는 뒷전인 아이 같다.
서울로7017은 보행이 목적이라면 만리동광장은 ‘멈춤’이 목적인 공간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공간은 ‘멈춤’이 없다. 만리동광장은 ‘높이의 사각지대’다. 고가 위를 걸었던 사람들은 고가 밑의 그늘에서 쉬지 않는다. 만약 만리동광장의 위치를 고가 높이에 맞춰 높였다면 어땠을까? 많은 상상의 여지가 생긴다. 그 공간에서 멈추어 석양을 감상하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을까.

글 고재열 시사IN 기자
사진 권정미, 조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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