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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12월호

1960년대의 공익 시위사치를 추방하라
요즘 주말이면 서울 도심 도로는 시위대 행렬로 거의 마비됩니다. 정치 관련 집회를 비롯해 여러 단체의 사람들이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시위가 끊이지 않고 열립니다. 시위의 역사는 조선시대 만인소(萬人疎)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유생들은 조정의 시책이 잘못됐다고 생각할 경우 1만 명 정도가 집단으로 상소(上疏)를 올렸다고 합니다. 1898년에는 독립협회가 제국주의 침략을 반대하고 민권 신장을 요구하며 만민공동회(萬民共同會) 시위를 열었습니다. 또 1980년대에는 민주화 시위가 확대됐고, 1990년대 이후에는 여러 이슈를 대중에게 전하기 위한 시민단체의 시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서울 시내에서 열린 ‘사치품 배격 캠페인’.

<사진> 서울 시내에서 열린 ‘사치품 배격 캠페인’.

사치품 배격을 위해 거리로 나선 학생들

대부분의 시위는 사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벌이지만 공익 관련 시위도 있습니다. 1960년 4·19혁명 이후 학생들 사이에서 벌어진 ‘신생활운동’도 공익 시위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운동에는 사치를 추방하고 바른 생활을 하자는 취지가 담겨 있습니다. 운동에 참여한 학생들은 서울 세종로에서 양담배를 소각하고, 관용차를 시청 앞에 유치시키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습니다. 이 운동은 그해 9월 정부가 불법행위로 규정하며 막을 내렸습니다. 이후 정치권에서 맑은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자가용을 타지 않고, 요정 출입을 하지 않겠다는 ‘청조(淸潮)운동’이 펼쳐졌습니다.
<사진>은 당시 서울 시내에서 ‘사치품 배격 캠페인’이 열린 모습입니다. 참가자들은 우스꽝스러운 가면을 쓰고 ‘사치품 배격으로 새살림 이룩하자’, ‘양담배 근절’ 등이 쓰인 피켓을 든 채 시위를 벌이고 있습니다. 요즘 이런 운동을 펼쳤다가는 국가 간 무역 마찰이 일어날 겁니다. 하지만 ‘새 살림을 이룩하자’는 문구는 지금도 마음에 와닿습니다.
사치품의 사전적 의미는 ‘분수에 지나치거나 생활의 필요 정도에 넘치는 물품’입니다. 1960년 내각회의에서 발표한 이듬해 예산편성방침에 “외래 사치품의 밀수를 적극 방지하며 국산품 애용을 장려하고, 외국자본의 투자에 주력해 생산 증가를 도모한다”고 쓰여 있습니다.
그해 7월 서울 세종로 한복판에서는 서울대 학생들이 다방과 거리에서 수거한 2,000갑의 양담배와 일본 가요곡 음반을 태우는 시위를 벌였습니다. 이들은 ‘잔소리 마라. 실천뿐이다’, ‘사체에는 사치품, 건강체에는 국산품’ 등이 쓰인 현수막을 들고 애국가를 합창하며 담배와 음반에 휘발유를 끼얹었다고 합니다.

위정자부터 솔선수범을

1961년 한 신문에 난 칼럼을 보면 당시의 분위기를 잘 알 수 있습니다. “도심 번화가의 쇼윈도를 장식한 각종 외래품은 국민에게 사치와 허영, 그리고 나태한 기풍을 조장해왔었다. 뿐만 아니라 입는 것 먹는 것 할 것 없이 외래품이 아니면 살 수 없다는 정도로 이 땅에는 식민지적인 망국적 사고방식이 팽배했다. 그러나 이러한 식민지적 진풍경은 5·16 군사혁명을 계기로 삽시간에 사라져버렸다. 기울어가는 국운을 바로잡고 자립경제 확립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궐기했던 군사혁명이 일어나자마자 거리에서 양담배가 자취를 감춰버렸다.”
또 다른 신문에는 위정자들의 솔선수범을 부추기는 칼럼도 실렸습니다. “대통령, 국무총리를 위시해 각 각료, 국·과장급이 우선 내핍생활을 시범해보라. 우리나라 국민은 지도자들의 태도에 좌우되는 일이 많은데 지도자들이 검소한 생활을 한다면 국민의 생활은 저절로 검소하게 될 것이다. 지도자들의 생활태도에 변함이 없고, 다만 사치품을 단속하기만 한다면 오히려 사치품의 암거래를 조장시킬 뿐이다. 지도자들이 사치품을 쓰지 않는다면 사치품이 시장에 범람해도 국민은 손을 대지 않을 것이다. 위정자들이 먼저 이 점에 착안하기를 바란다.”
어려운 시기에 국가 경제를 살리려는 국민과 언론의 노력이 느껴지지만 전 세계에서 생산된 거의 모든 물건을 쉽게 구해 쓸 수 있는 현재의 상황과 비교해보면 격세지감이 느껴집니다.

사진 고(故) 김천길 전 AP통신 기자. 1950년부터 38년 동안 서울지국 사진기자로 일하며 격동기 한국 근현대사를 생생하게 기록했다.
글 김구철 문화일보 문화부 기자. 대중문화팀장으로 영화를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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