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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10월호

홍원찬 감독의 <오피스>밥벌이, 그 생존의 공포
숨 막히는 회사를 때려치우고 자기계발을 이룬 사람들에 대한 성공담, 유유자적한 생활을 그린 책과 방송이 인기를 끌고 있다. 그들의 이야기는 달아나고 싶은 모두의 욕망을 부추긴다. 부럽다. 그럼에도 당장 나의 밥벌이를 뒤로하고 다른 삶을 향해 걸어가는 용기를 내는 일은 쉽지 않다. 한국 노동자의 노동 시간은 연간 2,090시간으로 세계에서 멕시코 다음으로 가장 길다. 주 12시간 이상 초과근무를 금지하는 법을 적용해도, 진짜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 같은 열악한 근로 환경에도 도발을 꿈꿀 수 없는 이유는, 많은 실업자와 구직자들 사이에서 직장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처절한 생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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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막히는 일상에 대한 두려움

임금피크제와 해고를 통해 젊은이에게 일자리를 주자는 정책과 저임금의 젊은 노동자를 고용하고 싶어 하는 경영진의 욕심 사이에서, 겨우 잡은 직장 내에서도 숨소리 한 번 제대로 내지 못하는 것이 노동자들의 현실이다. 여기에 젊은이들은 인턴제도를 통해 겨우 기회를 잡고 정규직이 되기 위해 다시 한 번 치열한 경쟁을 치러야 한다. 대학은 학문의 장이 아니라, 취직을 위한 학원이 되었다. 이러한 현실은 그 자체로 오롯한 공포다. 영화 <오피스>는이런 숨 막히는 현실에서 소재를 빌려온다. 정규직이 되고 싶은 인턴과 승진 기회를 놓치고 퇴물이 되어 권고사직의 공포를 겪는 중년 사원의 이야기가 큰 축이다. 직장이 밥줄이라는 점에서 두 사람은 다른 듯 유사한 연결고리를 가진다.
영화는 꽉 막혀 숨소리조차 쉽게 낼 수 없는 사무실 속 사원들의 모습을 비교적 현재에 충실히 잘 구현해낸다. 그리고 어쩌면 가장 약자일 수 있는 인물이 가장 잔혹한 복수의 장면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약간의 카타르시스를 준다. 그럼에도 <오피스>가 주목하는 것은 공포영화의 장르적 관습이 아니라, 직장인의 일상 속에 담긴 두려움이다. 인턴사원 미례(고아성)가 지하철, 버스, 엘리베이터라는 밀폐된 공간 속을 달리고 또 달리는 영화의 도입부는 일상적인 직장인의 아침을 담는다. 그리고 크게 잘못하지 않았지만 버릇처럼 “죄송합니다”를 되뇌는 그녀의 모습은 잘못없는 사과에 익숙한 우리의 모습과 닮았다.
게으른 것도 아니고, 꾀를 피우는 것도 아닌데, 결국 그녀는 누구의 마음도 쉽게 얻지 못한다. 조직이라는 곳에 뒤섞이지 못할까봐 고심하고, 온갖 궂은일은 다 하는데도 인턴이라는 이유로 팀에서는 소속감을 느낄 수 없고, 늘 열외로 밀린다. 달리고 또 달려도 제 시간에 도착하기 어려운 곳이 사무실이라는 상징적인 도입부와 함께, <오피스>는 착실한 김병국 과장(배성우)이 일가족을 살해하고 사라져버린 사건을 배치한다. 김병국 과장은 사건 직후 회사로 복귀하지만, 그가 회사를 떠나는 모습은 CCTV 화면 어디에도 없다. 사무실 직원들은 그가 ‘오피스’에 숨어서 그들 곁을 부유하고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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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길

<오피스>는 회사라는 공간에서 쌓인 인간관계를 비교적 세밀하고 현실적으로 그려낸다. 학교와 동네에서 사귄 친구들과 달리, 늘 경쟁의 중심에 서 있는 회사에서의 인간관계는 깊이는 얕게, 이해관계는 넓게 얽혀 있다. 그런 현실적인 관계 설정 때문에 <오피스> 속 인물들은 우리가 쉽게 사무실에서 만나는 동료의 모습과 닮았다. 누구도 악인은 아니지만, 모두가 악인일 수 있는 관계 속에서 뒷담화와 경쟁, 그리고 생존의 이야기는 암묵적인 왕따를 만들어내고 누군가를 서서히 죽인다.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일 수도 있는 그들 사이를 오가는 죄의식과 무책임, 그리고 거기서 오는 불안과 공포는 충분히 공감 가능한 일상을 품는다. 하지만 사무실에서 오갈 수 있는 여러 가지 소재 중에서, 경쟁과 승진, 비정규직 사원과 정규직 사원, 직장상사와 부하직원 사이의 이해관계 등 아주 많은 것을 고루 다루려다 보니 이야기가 하나로 집중되지 못하는 점은 다소 아쉽다.
쉽게 함부로 대하는 약자들이 내 뒤통수를 내리칠 수도 있다는 각성이 꼭 필요하다는 점에서 <오피스>는 확실한 메시지 하나를 묵직하게 툭 던져낸다. 오늘도 사무실에서 누군가를 괴롭히고 비난하며 뒷담화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사람 귀한 줄 알고 역시 사람 무서운 줄 알아야 한다는 교훈을 사무치게 새겨주는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나면 <오피스>를 권하고 싶은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오피스>의 관람을 추천 혹은 지목받을 사람이 자신이라고 느껴진다면 부디 반성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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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최재훈 영화감독이 만들어낸 영상 언어를 지면 위에 또박또박 풀어내는 일이 가장 행복한 영화평론가. 현재 서울문화재단에서 근무하며 각종 매체에 영화평론과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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