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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호

전시 <윤형근 전>과 <박이소 : 기록과 기억>시대의 얼굴이 된 예술가들
어느 분야나 그렇듯 당대를 대표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기준을 만들고 역사가 되어왔다. 한국미술계도 그런 당대의 인물들을 중심으로 역사가 만들어졌다. 새로운 시대의 문을 열고 구축한 작가들, 특히 그중 눈에 띄는 두 작가의 전시회가 동시에 열리고 있다. 한국 단색화의 거목으로 불리는 윤형근, 그리고 한국 현대미술의 전설이 된 박이소다. 각기 2007년, 2004년 세상을 떠난 이들의 회고전은 이들의 예술세계가 어떻게 한 시대를 만들고 후대에 영향을 미쳤는지 확인할 수 있는 자리다.
관련된 이미지1 윤형근, <청다색>, 마포에 유채, 220.5×100cm, 1977,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단색화, 시대의 빛을 품다<윤형근 전> 8. 4~12. 16,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윤형근을 설명하려면 김환기를 빼놓을 수 없다.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김환기와 윤형근의 첫 만남은 서울대 미대 입시에서 시험감독과 응시 학생으로 이루어졌다. 그렇게 인연이 시작된 김환기는 이후 그가 흠모하는 스승이 되었고, 장인이 되어 가족의 연을 맺었다.
고학으로 학교를 다녔고 생계 때문에 바빴던 윤형근이 본격적으로 예술에 전념하게 된 때는 그의 나이 마흔이 넘어서였다. 원래 그의 그림은 김환기의 영향으로 색감이 화사하고 고왔다. 하지만 1973년 일명 ‘숙명사건’은 그의 일상과 예술세계를 뒤흔들었다. 숙명여고 미술교사로 재직하던 당시 그는 최고 권력자인 중앙정보부장이 연루된 부정입학 비리를 폭로해 ‘반공법 위반’이라는 죄목으로 고초를 겪었다. 이듬해 장인까지 세상을 떠났다. 학교를 그만두게 되고 당국의 감시를 받아 사회생활에 제약이 따랐다. 그러한 시련은 그를 본격적인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 이때부터 그의 작품에서는 밝은 색채가 사라지고 전형적인 ‘검은’ 작품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전시회는 작가의 인생 여정을 따라 4부로 짜여 있다. 1부는 숙명사건 전까지의 초기 드로잉과 작품들로 구성됐다. 주로 밝은 색채의 추상화다. 상당수가 처음 공개되는 것들이다. 2부에서는 숙명사건 이후 10여 년간의 작품들을 선보인다. 전시장에는 <청다색>이라는 제목의 작품들이 여럿인데 작가는 이 시기 작품을 ‘천지문’(天地門)이라고 일컫는다. 하늘의 색 블루, 땅의 빛깔 엄버(umber). 이 둘을 섞어 나오는 검은 빛에 가까운 물감을 큰 붓에 찍어 면포에 내려 그었다. 구도는 문(門)이다. 매우 단순하고 간결해 보이지만 마치 다른 차원으로 이끄는 문이 열린 것 같은 강렬한 끌림을 주는 작품들이다. <다색>은 1980년 광주항쟁 소식을 접하고 울분을 참지 못해 그린 연작이다. 쓰러지는 인간군상을 연상시키는 이 작품이 일반 관객들에게 공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심연’이라고 명명된 3부는 1980년대 후반 이후 제작된 작품으로 구성된다. 색깔도 순수한 검정에 더욱 가까워지고 건조해진다. 4부는 윤형근의 세계관을 들여다보는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24년간 그가 머물렀던 서교동 생활공간과 작업실을 그대로 옮겨왔다. 목가구와 토기, 도자기 등 조선의 공예품과 추사 김정희의 글씨, 김환기의 그림, 최종태의 조각 등이 함께 있다. 또 일기와 노트, 김환기가 그에게 남긴 엽서 등도 공개돼 그의 주변을 이해하는 한편 예술관도 살펴볼 수 있다.

관련된 이미지

2 박이소, <이그조틱-마이노리티-오리엔탈>이 전시된 전시장 전경. 컬러 사진과 에나멜페인트, 각 76×61cm, 1990,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경계의 미술’을 열다<박이소 : 기록과 기억> 7. 26~12. 16,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김달진 미술연구소가 2010년 창립 10주년을 기념해 미술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다음과 같은 문항이 있었다. ‘2000년 이후 작고한 작가 중 한국미술 발전에 가장 크게 공헌한 사람은?’ 1위가 백남준이었고 2위가 박이소였다.
박영택 미술평론가는 <경향신문>에 쓴 칼럼에서 각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를 언급하며 “1990년대의 대표적인 작가는 단연 개념주의적인미술작업을 선보이면서 전통과 현대의 경계를 질문해왔던 박이소”라고 밝혔다. 박이소는 뉴욕과 한국에서 활동하면서 양쪽의 미술 담론과 작품을 소개하는 가교 역할을 했다. 또 민중미술과 모더니즘으로 양분돼 있던 국내 미술계에서 ‘경계의 미술’이라는 개념을 선도하며 한국 현대미술을 풍성하게 만들었다.
이번 전시는 2014년 작가의 유족이 대량 기증한 아카이브와 대표작들을 중심으로 구성되는 회고전이다. 눈에 띄는 것은 1984년부터 2004년까지 약 20년간 써온 작가 노트로, 이는 작가에 대한 시각적 연대기다. 전시장 구성도 작품세계의 변화 과정과 아이디어가 실제 작품으로 형상화되는 과정을 볼 수 있도록 했다. 전시장 중심에 작가 노트가 놓여 있고 드로잉을 포함한 아카이브가 이를 둘러싼다. 전체를 밖에서 둘러 감싸는 것은 <이그조틱-마이노리티-오리엔탈> 등 실제 작품 50여 점이다. 패션 잡지에 나오는 인물 사진에 서툰 궁서체 한글로 ‘이그조틱’ 등의 글자를 써 넣은 이 작품은 뉴욕에서 소수자로 살던 시절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 종이에 커피와 콜라, 간장으로 별을 그린 <쓰리 스타 쇼> 역시 정체성에 대한 성찰의 결과물이다. 2001년 작 <블랙홀>은 예술이나 창작이라는 행위가 기존 질서를 교란시키는 무질서와 혼돈, 블랙홀과 다르지 않다는 의미를 담았다.
작가는 생전에 200여 개의 재즈 테이프를 직접 제작·편집할 정도로 재즈 마니아였다. 빌리 조엘의 <어니스티>를 <정직성>이라는 제목으로 번안해 부른 육성 녹음도 들을 수 있다. 임대근 학예연구관은 “정직성은 ‘어떻게 무엇을 그릴 것인가’에서 ‘왜 그리는가’라는 질문으로 초점을 바꾼 자신에게 던지는 답이자 그의 삶의 태도와 맞물린 키워드”라고 설명했다.

글 박경은 경향신문 기자
사진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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