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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호

샬롱거리예술축제를 가다‘생각하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축제
프랑스 부르고뉴 손에루아르(Bourgogne Sane-et-Loire)주에 위치한 작은 마을, 샬롱쉬르손(Chalon-sur-Sane)에서는 매년 7월 샬롱거리예술축제(CHALON DANS LA RUE)가 열린다. 1987년 시작된 프랑스의 대표적인 거리예술축제 중 하나로, 올해에는 7월 18일부터 22일까지 총 5일간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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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폴 발레리의 묘소가 있는 마랭 묘지

프랑스의 대표적인 거리예술축제 샬롱거리예술축제의 참관을 위해 샬롱쉬르손에 들어가기 전, 시간을 내 남프랑스의 항구도시 세트(Se’te)를 찾았다. 세트는 발타자 서커스센터(Centre des arts du cirque)가 위치한 몽펠리에(Montpellier)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발타자 서커스센터는 서울문화재단의 신진인력 양성 프로그램 ‘서커스 펌핑 업(Pumping up)’이 선발한 5명의 서커스 유망주들이 연수 중인 곳이다.
몽펠리에에서 남쪽으로 26km 떨어진 세트는 ‘선상 창 시합 축제’로도 유명하다. 아쉽게도 이 독특한 축제를 볼 수는 없었지만, 대신 물감을 풀어놓은 듯 푸른 파도가 일렁이는 지중해를 마주한 ‘마랭 묘지’(Cimetire Marin)에 다녀왔다. 이 해변 묘지에는 20세기 최고의 산문가로, 프랑스가 사랑한 폴 발레리(1871~1945)가 묻혀 있다. 묘지 중턱에 있는 폴 발레리의묘소에서는 지중해가 품에 쏙 안길 듯 가까워 보였다. 묘소를 덮고 있는 하얀색 석관은 강렬한 태양빛을 받아 뜨거웠지만, 간간이 불어오는 서늘한 바닷바람은 폴 발레리가 남긴 말을 떠올리게 했다.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머지않아 당신은 사는 대로 생각할 것입니다.” 거리예술축제의 본산인 샬롱거리예술축제에서 만난 사람들은 바로 그런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마을 전체가 하나의 공연장으로

올해 샬롱거리예술축제의 프로그램은 공식(IN) 24편, 자유(OFF) 141편 등 총 165편으로 구성됐다. 이외에도 공간이 허락된다면 축제 측에 등록하거나 별도로 신청하지 않아도 도시 골목골목에서 자신의 공연을 열 수 있다. 샬롱이라는 마을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공연장 역할을 하는 것이다. 평소에는 고즈넉했을 시골마을 전역이 크고 작은 공연들과 이를 즐기는 많은 사람들로 들썩였다.
유쾌한 공연도 많았지만 진지하면서도 무거운 분위기의 공연도 많았다. 서서, 앉아서, 나무 위에서, 또는 구조물 위에서 위험스럽게 공연을 지켜보는 사람들 모두 그냥 눈요기 정도로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공연에 흠뻑 빠져드는 듯했다.
그중 지금까지도 기억에 생생한 작품이 있다. 도축장을 재생공간으로 변모시킨 공연장 THEATRE CONTEMPORAIN에서 관람한 부르동(BOURDON) 극단의 <나의 영웅 오사마!> (OUSSAMA, CE HEROS)였다. 대부분 무료로 열리는 다른 공연들과 달리, 사전 예약을 통해 유료로 진행됐다. 간신히 표를 구해 긴 기다림 끝에 입장했지만 공연장은 이미 만석이었다. 기존 좌석의 앞과 옆에 배치된 보조방석에 겨우 앉을 수 있었다. 자리를 잡고 주위를 둘러보니 나이 지긋한 관객들이 꽤 눈에 띄었다. 냉방시설도 없는 공연장이었지만 관객들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무대를 주시했다.
공연은 어느 한 마을의 청년이 오사마 빈 라덴에 대한 연설을 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상황을 갈등과 대립의 구도 속에서 극적으로 표현했다. 프랑스인들이 현실에서 느끼는 테러에 대한 공포를 그린 내용이어서인지 공연 내내 무거운 분위기가 흘렀다. 한데 1시간 45분 동안 쉴 새 없이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프랑스 대사에도 불구하고, 공연이 끝날 때까지 조는 사람이 없었다. 실내 온도는 점점 높아져갔지만 부채질 한 번 하는 사람도 없었다. 정지화면처럼 미동 없이 곧은 자세로 공연에 몰입하는 관객들의 모습은 기예처럼 느껴졌다. 이들의 작품에 대한 애정은 상상을 넘어설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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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3 샬롱거리예술축제 현장

4 도축장을 개조해 만든 THEATRE CONTEMPORAIN

출연자, 관람객의 구분 없이

반면 샬롱 골목골목의 자유로운 분위기는 방탕이라고 표현해도 무방할 것 같다. 씻은 지 오래돼 보이는 여러 마리의 개들과 함께 웃통을 벗고 길거리에 널브러져 와인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워대는 자유로운 영혼들을 골목 어디에서나 발견할 수 있었다. 통행에 방해되기도 했지만 이들은 하나의 설치작품처럼 샬롱의 거리에 잘 녹아들었다. 출연자나 관람객의 구분 없이 샬롱의 사람들은 그야말로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전형인 듯 보였다.
보슬비가 내리던 오후, 한적한 주택가 도로에서 펼쳐진 댄스 공연 <거리의 남자>(L’HOMME DE LA RUE)의 안무가이자 주연을 맡은 토마 드메(Thomas Demay)도 그런 사람이었다. ‘즉흥적인 움직임이 춤으로 변하고, 그 춤이 모두를 하나 되게 하면서 삶의 즐거움을 공유’하는 내용의 <거리의 남자>에서 드메는 몸을 사리지 않는 댄서였다. 하지만 몇 시간 후 노천카페에서 와인을 마셔 붉어진 얼굴로 일행과 담소를 나누는 모습은 샬롱 골목 어디에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을 연상시켰다.
골목 곳곳에서 벌어지는 버스킹 형태의 공연(축제에 초청받지 않았으나 개별적으로 자유롭게 참가하는 단체의 공연)도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했다. 공연에 모여든 사람들은 주저하지 않고 가락에 맞춰 함께 춤을 췄다. 필자 역시 잠시 흥에 빠져 어설픈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즉흥적인 흥은 어깨를 들썩이게 만들었다. 샬롱의 출연자들은 그 누구보다 진지하면서도 열정적으로 공연했고, 공연이 끝나면 샬롱의 자연인으로 돌아가 자유로움을 만끽했다.
많은 이들이 낮부터 와인을 즐기는 데다 주변의 늘어선 와인병을 볼 때 음주량도 상당해 보였지만, 음주로 인한 꼴불견은 목격할 수 없었다. 공연을 보고 숙소로 돌아가는 밤늦은 시간에도 일부 왁자지껄한 모습이 있었을 뿐 멱살잡이나 고성방가, 노상방뇨 등은 찾아볼 수 없었다. 샬롱 외곽의 대규모 텐트촌은 음악과 함께 와인을 나눠 마시는 덥수룩한 사람들로 시끌벅적했음에도, 그 자체가 하나의 풍경처럼 평화로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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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9 샬롱거리예술축제의 공연 모습.

서울문화재단의 작은 결실

이번 축제에서 관람한 여러 작품 중 단연 관심을 끈 작품은 갈매(이 단체의 이름인 갈매는 연출자의 별명이기도 하다.)의 설치형 거리공연이었다. <여기는 아니지만 여기를 통하여>(C’EST PAS LA C’EST PAR LA)를 기획, 연출, 연기, 진행한 이주형은 서울문화재단과 인연이 깊다. 거리예술과는 전혀 관련이 없던 법학도 이주형은 2012년 서울문화재단이 주최한 하이서울페스티벌의 공식 초청작 제네릭 바페(Generik Vapeur)의 <비브악>(BIVOUAC) 공연에 우연히 시민퍼포머로 참여했다가 거리예술의 매력에 빠졌다. 그 후 그는 거리예술가로 새 출발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서울문화재단은 자신의 인생을 거리예술에 걸겠다는 이 젊은이를 ‘거리예술전문가 양성과정’, ‘한불상호교류의 해’ 등을 통해 지원했다.
이주형 연출은 이제 샬롱, 알레스, 아미앙 등 세계적인 거리예술축제에 초청받는 유명인사가 됐다. 이번 샬롱에서 선보인 작품은 2015년 서울에서의 시위 참여 경험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단순히 보여주는 형태가 아니라, 수십 명이 참여하는 독특한 형태의 참여형 거리공연이다. 2017년 서울문화재단의 ‘싹 브리핑’이란 프로그램으로 첫 선을 보인 후 초청이 줄을 잇고 있다. 서울시민들은 오는 10월에 개최되는 서울거리예술축제에서 만날 수 있다. 이주형 연출은 2012년 거리예술 작품의 시민퍼포머에서 6년 만에 촉망받는 거리예술가로 금의환향하는 셈이다. 재단의 노력과 지원이 의미 있는 결실을 맺는 역사적인 광경을 이번 샬롱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주형 연출이나 드메, 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수많은 예술가들이 때로는 공연자로, 때로는 관람객으로 거리, 골목, 노천카페에 자리하는 샬롱거리예술축제는 사람들이 모여 쌓은 탑과도 같다. 이곳저곳이 비어 있어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듯하지만 태풍에도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건조물이다. 노천카페나 주택이 모여 있는 길모퉁이가 자연스레 무대가 되고, 주민들은 공연자가 내미는 손을 잡고 함께 어울리면서 공연의 오브제로 스스로 녹아든다.
축제를 일탈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샬롱의 거리는 불안정한 것이 오히려 안정적으로 느껴지게 만드는 역설의 현장이었다. 그것은 폴 발레리가 말한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는’, 그래서 ‘살아가는 대로 생각하게 된’ 우리와는 너무나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것이고, 그런 사람들이 샬롱의 거리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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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갈매의 설치형 거리공연.

글·사진 제공 김홍남 서울문화재단 지역문화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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