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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호

푸치니 오페라 <라 보엠>보헤미안 예술가의 꿈과 사랑
지난 6월 13일~15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수지오페라단의 푸치니 오페라 <라 보엠>이 공연됐다. 이번 공연에는 조지아 출신의 스타 소프라노 니노 마차이제가 미미 역으로 출연해 화제를 모았으며, 남자 주인공 로돌포 역으로 잔루카 테라노바가 무대에 올라 엄청난 가창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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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차이제와 테라노바, 환상의 호흡

니노 마차이제는 2008년, 갑작스럽게 임신한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를 대신해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무대에 서며 이름을 알렸다. 그는 구노의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테너 롤란도 비야손의 상대역인 줄리엣 역으로 데뷔,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당시 공연 한 달을 앞두고 출연 제안을 받았는데, 줄리엣 역을 해본 경험은 없었지만 월드 스타가 될 기회를 놓치지 않고 짧은 시간 동안 맹렬히 준비했다. 2012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는 안나 네트렙코가 <라 보엠>의 미미를 맡았는데, 마차이제는 조연인 무제타 역으로 갈채를 받았다. 그는 이번 한국 공연에서는 주인공인 미미를 맡았다. 마차이제의 목소리는 예전보다 더 커진 데다 시원했다. 마리아 칼라스와 마리아 굴레기나를 연상시키는, 쇳소리가 섞인 듯한 금속성의 목소리로 무대를 장악했다.
더욱 놀라운 건 로돌포 역을 맡은 잔루카 테라노바의 엄청난 가창이었다. 1막부터 하이 C(높은 도)를 두 번이나 구사해야 하는 로돌포 역의 테라노바는 정확한 음정과 훌륭한 발성으로 고음을 빼어나게 구사했다. 특히 미미와 헤어지는 3막에서는 극이 진행되면서 목소리가 더욱 선명해지고 음이 높이 올라갈수록 성량도 더 커지면서 발군의 기량을 발휘, 미미 역의 마차이제와 함께 무대를 뜨겁게 달궜다. 무제타 역의 러시아 소프라노 카테리나 트레치코바는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는 코믹 연기로 청중들을 즐겁게 했다. 화가 마르첼로 역의 빈첸조 타오르미나, 철학자 콜리네 역의 안드레아 콘체티, 음악가 쇼나르 역의 마리안 포프 등은 모차르트나 로시니의 코믹 오페라에서 만끽할 수 있는 앙상블 오페라를 푸치니의 작품에서 즐길 수 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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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에도 유효한 레퍼토리

<라 보엠>은 앙리 뮈르제의 소설 <보헤미안의 생활 정경>을 푸치니가 오페라로 만든 작품이다. 하지만 푸치니보다 먼저 이 작품을 오페라로 쓰기 시작한 작곡가는 동료인 루제로 레온카발로였다. 어느 날 밀라노의 카페에서 레온카발로와 커피를 마시던 푸치니는 그가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요즘 내가 말이야, 앙리 뮈르제의 <보헤미안의 생활 정경>을 가지고 오페라를 쓰고 있는데 어떨 것 같아?” 푸치니는 겉으로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듯 묵묵하게 듣기만 했다. 상업적 감각이 남달리 빼어난 푸치니는 이 작품의 성공을 예감하고 헤어지자마자 오페라로 옮기기 시작했다. 결국 레오카발로보다 먼저 <라 보엠>을 완성해 발표해버렸다. 성공을 위해 친구를 버린 셈이다. 레온카발로는 땅을 치며 후회하고 노발대발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1896년 2월 토리노에서 초연한 푸치니의 <라 보엠>은 공연마다 성공을 거듭했으나, 1897년 5월 베네치아에서 초연한 레온카발로의 <라 보엠>은 초연에서만 성공을 거두었을 뿐 결국 푸치니의 <라 보엠>에 밀려 극장 레퍼토리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이후 레온카발로는 자신을 배신한 푸치니를 평생 보지 않았다. <라 보엠>은 전 세계인들이 사랑하는 오페라지만 푸치니가 친구를 배반하며 만든 작품이다.
푸치니는 시골마을 루카에서 예술가를 꿈꾸다 밀라노 콘서바토리에서 작곡을 공부했는데, 가난했던 시절의 모습을 <라 보엠>의 로돌포, 마르첼로, 쇼나르, 콜리네에게서 엿볼 수 있어 이 작품에 특히 애착을 보였다고 한다. 푸치니의 모습이 옥탑방에서 함께 사는 이 4명의 친구들에게 투영되었다고 할까? 푸치니는특히 시인, 화가, 철학자, 음악가 중 음악가인 쇼나르를 가장 현실적이고 생활력 있는 모습으로 그렸다. 크리스마스이브에도 친구들을 위해 먹을거리를 사가지고 오는, 유일하게 경제적 능력이 있는 인물이다.
원작의 배경은 1840년대 파리의 겨울이지만 지구촌 어느 곳으로 설정해도 상관없을 정도로 소재는 보편적이다. 어디에나 존재하는, 성공한 예술가를 꿈꾸는 가난하고 젊은 예술가 지망생들을 주인공으로 하기 때문이다. 뉴욕을 배경으로 한 록 뮤지컬 <렌트>도 <라 보엠>을 재해석한 작품이다. 우리나라에서도 1980년대 신촌 대학가로 배경을 바꾼, <서울 라보엠>이라는 제목의 소극장 오페라가 공연된 적이 있다.
레온카발로의 <라 보엠>이 실패하고 푸치니의 <라 보엠>이 성공을 거둔 이유는 미미의 죽음 때문이라는 평가도 있다. 그만큼 4막에서 미미가 세상을 떠날 때,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는 로돌포를 표현하는 방법도 다양하다. 루치아노 파바로티처럼 꺼이꺼이 울며 목소리 높여 미미를 부르는 테너도 있었고, 호세 카레라스처럼 속삭이듯 죽음을 애도하는 테너도 있었다. 이번 공연의 테너인 잔루카 테라노바는 안절부절 어찌할 바 모르는 로돌포를 연기해 청중의 눈가를 적셨다.

글 장일범 음악 평론가, MBC <TV예술무대>를 진행하고 있다.
그림 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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