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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7월호

SK서린빌딩정제된 담백함이 느껴지다
1960년대부터 지어지기 시작한 오피스 빌딩은 그 당시만 해도 높이에서 느껴지는 상징적인 인상이 강했다. 경제 성장과 더불어 1980년대에 오피스 빌딩의 숫자는 계속해서 늘어만 갔다. 지금은 설계가 표준화되어 비슷한 느낌의 오피스 빌딩들이 거리에 즐비하고, 유리 표면의 커튼월 때문에 서로가 서로의 얼굴을 반사하고 투영한다. 반짝이는 수많은 오피스 빌딩 속에서 SK서린빌딩은 정제된 담백함으로 소란스럽지 않게 종로 한복판을 지키고 있다.
관련이미지1 검은색 알루미늄 격자 멀리온을 일정한 형태로 피복하여 기하학적인 질서와 견고함, 입체감을 살렸다.

네모반듯한 사각형의 건물

SK서린빌딩은 종로구 서린동에 위치한 오피스 빌딩이다. 종로에는 각양각색의 수많은 빌딩들이 존재하고 가로수와 사람들로 인해 항상 복잡하다. SK서린빌딩은 160m 높이의 36층 건물로 눈에 잘 띌 듯하지만 주변 경관을 압도하기보다 차분하게 스며들어 있다. 화려한 간판을 내건 상점들이 즐비한 종로지만 SK서린빌딩에는 그 흔한 카페 간판조차 하나 없다. 지하 1층에 상가 아케이드가 있지만 그 존재를 파악하기 어렵다. 더구나 대기업 사옥이라는 특성 때문에 직원이나 협력업체가 아닌 이상 일반 사람들은 이 건물을 경험할 일이 별로 없다.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공간은 1층 로비와 2층의 금융기관 그리고 4층의 고객 접견실과 라운지, 나비갤러리, 카페 정도다. 나머지 공간은 순수한 사무 기능의 업무공간이며, 옥상에는 직원용 옥외 휴게공간이 있다. 20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사람들은 네모반듯하게 묵묵히 서 있는 이 빌딩을 무심코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SK서린빌딩은 1992년 9월에 착공하여, 1995년에 지하 7층, 지상 25층으로 건축 승인을 받았다가 36층으로 변경하여 1999년 11월에 완공됐다. SK서린빌딩이 들어서기 전 이 자리에는 스타다스트호텔이 있었다. 1960년대 젊은이들의 통기타 문화를 이끌었던 음악감상실 ‘세시봉’이 있던 건물이다. 이 주변으로는 ‘무교동 낙지’로 불리며 서울의 대표 맛집으로 인기를 끌었던 유정·대성·서린낙지가 있었다.
건물의 설계는 서울건축의 김종성 건축가가 맡았다. SK서린빌딩은 사각형의 외관을 하고 있으며, 기준층 평면은 51×33m로 황금비율에 가깝다. 4면의 외벽에서 모두 균등한 격자 패턴이 이어지도록 디자인하여 외벽 자체가 구조체인 것을 표현했다.
건물 자체는 조용히 도시 맥락 속에 녹아들어 존재감을 숨기면서도 디테일에 있어서는 과감하게 개성을 드러냈다. 1층은 건물 주변의 도시적 맥락을 고려해 개방적인 공간을 조성하기 위해 위에서 내려오던 격자형 입면을 없애고 기둥만 남겼다. 1층은 9m 간격으로 기둥만 남겨두었고 2층 바닥 밑의 철골보 깊이를 1.2m 키워서, 전체적으로 건물 외관이 날렵하게 보이도록 했다. 외부 입면은 알루미늄 격자 멀리언(mullion)1)을 일정한 형태로 피복하여 기하학적인 질서와 견고함, 입체감을 살렸다. 세로선은 간격을 기둥보다 더 가늘게 했고, 가로선의 간격은 보의 길이보다 더 넓게 해 외관상으로는 창 주위에 알루미늄 시트로 막힌 부분이 안쪽으로 움푹 들어가 보인다. SK서린빌딩의 창 면적은 일반적인 커튼월 건물보다 좁다. 하지만 건물을 전체적으로 바라보면 선명한 격자 패턴이 네모반듯한 입체감을 부각시키며 최신 건축에 뒤지지 않는 군더더기 없는 세련된 느낌을 준다.

1) 강판을 접어 가로나 세로로 대는 것.

건축의 공공성

SK서린빌딩은 종로를 마주하고 있는 전면과 청계천 쪽 후면에서 모두 출입이 가능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번화한 종로 쪽의 출입구를 사용하며, 자동차로 이동하는 사람들은 청계천 쪽의 출입구를 이용한다. 설계 당시 사람들의 통행을 고려하여 접근성을 높이고자 건물을 북쪽인 종로에 붙여 배치했다. 자연스레 남쪽에는 넓은 옥외광장이 형성됐고 녹지와 선큰가든(sunken garden)2)을 조성할 수 있었다. 이후 2005년에 완공된 청계천 복원 공사로 인하여 청계로가 활성화되면서 건물 후면에 배치한 옥외광장은 의도하지 않게 청계로와 자연스럽게 연계되었다. 결과적으로 건물의 주 출입구가 2개가 되어 사실 전면과 후면의 구분이 모호해졌다.
건축물의 섬세한 설계를 생각할 때 옥외광장의 조경 처리는 아쉬움이 남는다. 개성 없는 조경은 도로와 건물을 가로막는 차단벽이 되었다. 보행로보다 높이 화강암으로 단을 쌓은 화단은 시야를 차단해 답답함을 준다. 건물은 건물대로 옥외광장은 옥외광장대로 분리되어 공적·사적 영역의 경계로만 존재한다. 도시와 건물을 이어주는 적절한 소통 장치가 사라진 것이다. 미국 시그램 빌딩 앞의 광장처럼 보도와 같은 레벨로 연결된 시원한 공간을 조성했다면 어땠을까? 청계로와 건물의 옥외광장, 실내 로비가 하나로 연결되어 개방감을 확보했다면 다양한 행위들을 통해 건축의 공공성을 획득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단순히 비워둔다고 해서 공공성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의 행위가 일어날 수 있도록 상업시설과 연계해 매력적인 매개공간을 만들 필요가 있다. 공공에 내어준 소중한 공개공지가 말 그대로 ‘공지’로 남지 않도록 말이다.
오피스 빌딩은 상업건축과 달리 개성 있는 디자인을 표출하기 어렵다. SK서린빌딩은 화려하지 않지만 절제되고 정제된 디자인으로 오래도록 종로에 남을 것이다.

2) 지하나 지하로 통하는 공간에 꾸민 정원.
관련이미지

2 후면 출입구는 자동차로 이동하는 사람들이 이용하며, 4개의 모서리 기둥에는 ‘거북이발’이 그러져 있다.

3 1층은 개방성을 위해 격자형 입면을 없애고 기둥만 남겼다.

4 도시와 소통하지 못하는 남쪽 옥외광장.

글·사진 이훈길 (주)종합건축사사무소 천산건축 대표. 건축사이자 도시공학박사이다. 건축뿐만 아니라 건축 사진, 일러스트, 칼럼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도시를 걷다_사회적 약자를 위한 도시건축, 소통과 행복을 꿈꾸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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