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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4월호

서울 기상관측소 빼앗긴 들에도 오던 봄, 그 봄을 알리던 곳
서울의 벚꽃 소식은 서울 기상관측소의 앞마당에서 시작된다. 1932년 경성측후소라는 이름으로 처음 문을 연 이곳은, 8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같은 자리, 같은 모습으로 서울의 사계(四季) 소식을 가장 먼저 들려준다.

벚꽃이 내린다. 내 눈앞이 분홍으로 물들어간다. 아련한 아름다운 풍경이 맘을 적신다.

밴드 ‘소란’의 <벚꽃이 내린다>라는 노래의 가사다. 이 노래를 들으면, 벚꽃이 내려 눈앞이 온통 분홍으로 가득 찬 풍경이 떠오른다. 봄이 왔음을, 또한 봄이 끝나가고 있음을 알려주는 벚꽃은 봄을 기다리는 우리에게 설렘 가득한 두근거림이자, 유난히도 힘겨웠던 이 겨울읽기의 끝을 알리는 찬란한 희망일지도 모르겠다.
올해의 벚꽃을 기대하며 소개하는 곳은 바로 경성측후소, 즉 현재의 서울 기상관측소다. 송월동 1번지, 강북삼성병원 옆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만나는 언덕에 있다. 이 서울 기상관측소는 서울의 사계가 시작되는 곳이다. 벚꽃의 개화 시기는 이곳 앞마당에 있는 표준목인 벚나무에 세 송이의 꽃이 피는 그때이며, 그 옆 단풍나무에 단풍이 드는 그때가 서울의 단풍 시기이다. 월암근린공원과 인접한 이곳의 앞마당에는 벚나무, 단풍나무를 비롯한 계절을 알려주는 다양한 수종의 나무가 심어져 있어, 마치 도심 속 비밀정원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이 나무들의 뒤편에는 오랜 시간의 힘을 간직한 하얀 건축물이 하나 자리 잡고 있는데, 이 건물이 바로 1932년 건축된 경성측후소, 현재의 서울 기상관측소다.

서울 건축 읽기 관련 이미지1 1939년 신축된 것으로 추정되는 기상분실(分室)과 멀리 보이는 노장(露場).

모더니즘과 양식주의의 경계에서

경성의 저 하늘에 바람이 불어오고 구름에 비가 싸여 온다. 래일은 맑고 치웁다! 그날 그날의 창공과 긔압과 더부러 날을 보내는 경성측후소는 20년이나 오랜 락원동의 살림사리에서 지난 1일부터 인왕산 기슥 해발 87미돌의 송월동 마루턱이에 약1천평 긔지에다가 내화벽돌과 철근 콩크리트르 겸용하야 평가85평의 ‘모던’ 청서를 지어 이사를 하얐다 총공비는 3만 5,000원이다.
_ 1932년 11월 10일 동아일보 기사 중에서

우리나라에서 근대적 기상 관측이 시작된 것은 1883년 인천해관에서 하루 5번 기상 관측을 하면서부터였다. 이후 일본에 의해 1904년 부산, 목포, 인천, 용암포, 원산 등에 관측소가 설치되었고, 1907년 대한제국에서 농상공부 소관 측후소 관제를 공포함에 따라 경성, 평양, 대구 등에도 측후소가 설치되었다. 1913년 경성측후소는 교동 대빈궁(大嬪宮) 자리로 이전하였다가 1932년 현재의 위치인 종로구 송월동 1번지로 신청사를 건축하고 이전하였다. 지금은 하얀색으로 페인트칠했지만, 지어질 당시에는 철근 콘크리트 구조에 외벽은 벽돌로 쌓아 만들었다. 흰색으로 칠한 것이 언제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붉은 벽돌로 지었던 건물을 오랜 시간 쓰는 과정에서 페인트칠한 것으로 예상된다. 붉은 벽돌의 청사 역시 그곳의 푸른 잔디와 붉은 꽃, 하얀 꽃들과 어울릴 듯하지만, 지금의 흰색 청사가 익숙해서인지 색색의 꽃들과 나무들 뒤에서 하얀 도화지 같은 역할을 하는 지금의 상태가 매력적으로 보인다.
1930년대 초반의 관공서 청사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성격들을 이 건물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모더니즘을 지향하지만 여전히 양식주의에서 완전히 발을 빼진 못한 모습. 시대는 모더니즘을 향해 달려가지만, 관공서로서의 위엄을 포기하기엔 뭔가 마땅치 않은 것 같아 이전 시대의 흔적들을 건물 곳곳에 남겼다. 이 건물은 양식주의 건축의 중심을 강조한 현관부나 대칭적인 입면 대신, 측후소로 오르는 계단과의 기능적 연계를 고려하여 대각선 방향으로 사분원 모양의 둥근 현관을 만들었으며, 전체적인 형태 역시 중앙의 2층 관측대를 중심으로 실들이 배치되는 모습으로 만들어졌다. 외관상으로는 장식을 지양하고 장식 없는 아치형의 창호를 반복하여 당시 유행하던 모더니즘의 특징인 단순하면서도 기능적인 디자인을 구현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건물 벽체의 상부에 장식적인 돌림띠(코니스)를 돌렸고, 벽체를 자세히 보면 가로 줄무늬들로 벽체를 세 부분으로 나누고 있어 이전 시대 유행했던 양식주의 건축의 흔적 역시 발견할 수 있다. 경성측후소 건물과 이어지는 경사지붕의 2층 건물 역시 1939년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모더니즘 양식의 건물이며, 측후소 서남 측에는 역시 당시에 만들어진 노장(露場)이 위치하고 있다.

서울 건축 읽기 관련 이미지2 서울 기상관측소와 그 앞의 벚나무.
3 옥상 관측소 계단.

같은 모습, 같은 역할로 우리 곁에 남은 건축

경성측후소가 이곳에 자리 잡은 게 1932년의 일이었으니, 무려 85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우리나라에서 흔치 않은, 옛 건물이 원형에 가까운 상태로, 그 용도 그대로 사용되고 있는 예이다. 최근 근대 문화유산들에 대한 관심으로 많은 건축물들이 멸실 대신 보존의 대상이 되어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나고 있다. 이는 분명 긍정적인 현상이나, 근대 문화유산들이 대부분 박물관이나 미술관, 혹은 카페 등으로만 사용되는 것은 다소 염려스럽다. 근대기의 새로운 기능을 담기 위해 탄생했던 공간들이 지금은 그 기능을 잃어버린 채 그 시대의 기억을 담는 장소로만 활용된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고, 동시에 유사한 문화 공간들의 반복적인 생산으로 다소 지루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이 공간이 계속하여 원래의 용도인 기상 관측소로 사용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기상을 관측하는 근대적 기능의 시설이었던 이 장소가 85년간 앞마당의 표준목들과 관측 기구들과 함께 이어져왔듯, 앞으로도 또 오랜 시간 이어지면 좋겠다. 그리하여 앞으로도 오랫동안 이곳에서 벚꽃이 내리는 풍경을 감상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길 바란다.

글·사진 제공 이연경_ 연세대학교 학부대학 학사지도교수.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건축 역사 이론 전공으로 석·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서울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도시들이 겪은 근대화와 식민화의 과정을 사람들의 일상생활과 도시 환경, 그리고 건축의 측면에서 바라보는 데 관심을 가지고 연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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