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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4월호

봄을 노래한 클래식 명곡 눈부시게 아름다운 봄날에
올해도 어김없이 봄은 왔다. 길고 힘겨운 겨울이 물러간 자리에 찬란한 햇빛과 함께 찾아온 봄은 누구에게나 기쁨을 가져다준다. 그러니 섬세한 감수성의 음악가들에게 봄은 얼마나 설레는 계절이겠는가. 잘 알려진 클래식 명곡 가운데 봄을 노래한 음악작품이 꽤 많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최은규의 음악 정원으로 관련 이미지

비발디가 들려주는 봄

이탈리아의 작곡가 비발디가 쓴 유명한 바이올린 협주곡 <사계> 중 <봄>은 “봄이 왔다!”라는 시와 선율로 시작한다. 비발디의 <봄>은 기악곡으로서는 드물게도 시와 관련된 작품일 뿐 아니라 시구 하나하나가 구체적인 선율에 그대로 대응되는 독특한 곡이다. 더구나 이 곡에는 ‘봄’이라는 계절이 담고 있는 역설과 모순이 시와 음악을 통해 그대로 드러나 있어 더욱 흥미롭다.
비발디의 <봄> 악보에 적혀 있는 시를 누가 썼는지는 확실치 않다. 시의 작품성이나 베니스의 방언이 사용됐다는 점 등의 정황으로 보아 작곡가 비발디 자신이 썼을 가능성이 높아 보이기는 한다. 어떤 이는 이 시가 작품성이 떨어지는 시라고 혹평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시만큼 변덕스러운 봄의 이중성과 유머를 잘 드러낸 시도 드물다. “봄이 왔다!”라는 구절에 해당하는 <봄>의 협주곡 도입부는 매우 화창하며, 곧이어 3대의 바이올린으로 표현된 새소리는 실제 새소리와 너무나 유사하여 감탄을 자아낸다. 그러나 경쾌한 새들의 합창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천둥 번개가 치고 바람이 불어오면서 봄이 변덕을 부린다. 바로 그때 조금 전까지만 해도 경쾌한 새소리를 연주하던 현악 오케스트라가 격렬한 합주로 천둥과 번개를 흉내 낸다.
무엇보다도 재미있는 부분은 2악장의 개 짖는 소리가 아닐까 싶다. 비발디는 봄이 ‘춘곤증’의 계절임을 일깨워주며 독주 바이올리니스트에게는 졸린 듯 나른한 선율을 안겨주는 대신, 비올리스트에게는 낮잠을 즐기는 주인을 깨우려는 강아지의 울음소리를 흉내 내라는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 2악장에서 비올리스트가 주기적으로 연주하는 ‘멍멍’ 리듬은 봄날 오후의 낮잠을 떨쳐버리고도 남을 만큼 재미있다.

봄날 시냇가의 산책

봄날의 자연을 묘사한 작품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 2악장에서도 우리는 봄날의 시냇물 소리와 새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음악가로서는 치명적인 청력 이상 때문에 새 울음소리조차 또렷하게 들을 수 없었던 비운의 작곡가 베토벤. 그러나 그는 교향곡 제6번 <전원>의 2악장에서 그 어떤 작곡가보다도 새소리와 시냇물 소리를 생생하게 표현해냈다. 이 곡은 베토벤이 즐겨 산책하곤 했던 빈 근교의 하일리겐슈타트의 시냇물 소리를 닮은 잔잔하고 아름다운 물결로 시작한다. 첼로를 비롯한 저음역의 현악기들이 잔잔한 물결의 파동을 소리 내는 가운데 제1바이올린이 봄날의 시냇가를 산책하는 편안한 기분을 서정적인 선율로 노래한다.
아마도 그 시냇가의 끝에 당도했을 때 베토벤은 새들의 노랫소리를 어렴풋이 들었던 모양이다. 이 악장 말미에는 나이팅게일과 메추라기, 뻐꾸기 등이 하모니를 이루며 노래하는 음악이 들려오는데, 그 소리는 마치 자연 그대로의 소리처럼 약간 어긋나면서도 묘한 조화를 이룬다. 나이팅게일의 유려한 노랫소리를 플루트가 연주하는 가운데 오보에가 메추라기 소리를 내고 클라리넷이 성급하게 ‘뻐꾹’하면서 새들의 합창에 끼어든다. 그런데 소리가 너무나 구체적이어서 이 곡을 들으며 봄날 시냇가를 산책한다면 어떤 소리가 자연의 소리이고 어떤 소리가 음악소리인지 구분이 안 될지도 모른다.

봄은 사랑의 계절

봄은 사랑을 시작하기에 좋은 계절이다. 수많은 시인과 음악가들이 봄이라는 계절을 사랑과 관련지었던 것도 우연은 아닌 듯하다. 독일의 서정시인 하인리히 하이네도 “아름다운 5월에 꽃들이 피어나고 사랑도 피어오른다”는 시를 지어 봄과 사랑을 노래했고, 하이네의 시는 19세기 독일 낭만주의 음악의 대가 로베르트 슈만의 연가곡 <시인의 사랑>을 탄생시켰다.
하이네의 시 중 16편의 시에 곡을 붙인 슈만의 <시인의 사랑>은 봄날에 사랑을 시작한 젊은이가 실연의 상처에 아파하다가 이를 극복하면서 성장해가는 일종의 ‘성장 소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주인공은 이 연가곡 말미에서 가슴 아픈 실연의 고통과 사랑의 마음을 커다란 관 속에 넣고 강물 속에 묻어버리니 말이다. 그러나 이 연가곡 중 가장 아름다운 부분은 역시 봄과 함께 사랑이 피어오르는 첫 곡이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에”(Im wundersch¨onen Monat Mai)라고 시작하는 하이네의 시구는 이 문장의 느낌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슈만의 선율 덕분에 더욱 빛을 발한다. 전치사는 강세가 약한 약박으로 처리하고 중요한 단어는 긴 음표로 강조하는 슈만의 선율은 그 자체로 시가 되어 우리 가슴에 꽂힌다. 아마도 이 가곡을 작곡할 당시 슈만은 오래도록 염원했던 여인과의 결혼에 성공했기에 이토록 행복으로 가득한 선율을 쓸 수 있었으리라.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였던 클라라 비크와 작곡가 슈만의 열정적인 사랑은 클라라의 아버지 프리드리히 비크의 반대로 좌절될 뻔했지만, 법정 투쟁까지 불사하여 클라라와의 사랑을 이룬 슈만은 가슴속을 가득 채운 사랑의 기쁨을 놀라울 만큼 아름다운 봄의 선율에 담아냈다.
이처럼 봄은 음악가들에게 있어 창조의 계절이며 사랑의 계절이었다. 또한 봄은 우리에게도 창조의 계절이며 사랑의 계절이 될 수 있다. 꽃피는 4월의 화창한 날, 봄을 노래한 클래식 명곡의 아름다운 선율과 함께라면 우리의 봄도 창조적인 열정과 사랑의 기쁨으로 가득 차지 않을까.

글 최은규_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및 동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 부수석 및 기획홍보팀장을 역임했다. 월간 객석, 연합뉴스 등 여러 매체에서 음악평론가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예술의전당, 부천필 등에서 클래식 음악을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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