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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호

책 <할배의 탄생>과 <공터에서> 냉소보다 이해가 필요한 지금 꺼내보는 책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 이후에도 여전히 그를 신뢰하고 아끼는 지지자들이 있다. 그들은 왜 박 전 대통령을 대상으로 이같은 믿음을 보이는 걸까. 그 심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책 2권을 소개한다.

공간, 공감 관련 이미지

3월 12일 서울 삼성동 일대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나온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하루 종일 혼란스러웠다. 태극기를 든 900 여 명의 지지자들은 ‘종북 좌파 척결한 우리 국민 대통령 박근혜’ 같은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누군가가 “박근혜”를 선창하면 다른 사람들이 “대통령”이라고 후창했다. 경찰은 사저 앞 골목길 350m에 걸쳐 좌우로 이중, 삼중의 인간 경계벽을 펼쳐 지지자들을 둘러쌌다. 10개 중대 1,000여 명이 투입됐다. 태극기를 흔들며 “박근혜”를 연호하던 지지자들은 박 전 대통령이 차 안에서 손을 흔들자 눈물을 터뜨렸다. 박 전 대통령이 집으로 들어간 후에도 지지자들은 계속 남아 “탄핵 무효!”를 외쳤다. 곳곳에서 탈진한 지지자들이 쓰러졌다.
헌재의 탄핵 인용에 연일 불복 시위를 벌이는, 박 전 대통령을 향한 지지자들의 무한 신뢰는 어디서 비롯된 걸까. “진짜 대통령은 박근혜” “탄핵은 기각”이란 믿음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오스트리아의 법학자 한스 켈젠의 “민주주의는 적을 가슴에 품고 가야 하는 제도”라는 말로 이들을 ‘꼰대 논외’로 취급해선 양분된 사회의 어떠한 해결책도 나오지 않는다. 이들 역시 7포 세대, 흙수저만큼이나 제 언어를 갖지 못한 서발턴이니까. 이들이 왜 종교와 같은 믿음을 정치에서 구했는지, 그 대상이 왜 박 전 대통령인지를 이해하려면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구술사 연구가 절실하다.

콘크리트 지지층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할배의 탄생> 최현숙 지음, 이매진

최현숙의 <할배의 탄생>은 70대 저학력, 저소득 노동자 심층 인터뷰를 통해 한국의 연령주의가 개인의 삶에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가를 관찰한 구술사 연구다. 저자가 만난 ‘할배’는 전북 부안 출신의 김용술(71), 강원 횡성 출신의 이영식(70·가명)이다. 이들의 진술은 왜 가난한 노년 남성이 불평등을 받아들이는지, 보수적 정치색을 띠게 됐는지를 보여준다.
두 사람의 삶은 군대, 여자, 돈으로 점철된다. 김용술은 “군대는 남자라면 가볼 만한 재미있는 곳”인데, “인권이나 들먹이는” 한편에서 “자살이 끊이지 않는 거”고, “꾀 못 내고 요령 피울 줄 모르고 탈영한 놈들은 병신”이라고 말한다. 이영식도 “요즘 애들이 너무 약해 군대에서 사고가 많다”고, “때리는 놈은 통솔하려면 어쩔 수 없다”고 폭력을 두둔한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군대 안 간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지지한다. 김씨는 “대한민국은 유병언이 같은 사이비 교주가 나라를 쥐고 흔드는 그런 구조”라며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지지했고, 이씨는 “박정희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먹고살게” 했다며 지난 대선 때 박근혜 후보를 찍었다.
둘 다 화려한 성매매 경험을 자랑하고, 평생 쉬지 않고 일했지만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공통점이 있다. 동거를 여러 번 한 김용술은 여자 때문에 밥벌이와 사는 곳을 자주 바꿨다. 성생활과 관계, 직업 변경과 주거 이주 사이의 상관성이 높은 건 가난한 사람들의 성생활 특징이다. 부유한 남성은 정상적인 가족과 직장, 주거지를 유지하며 결혼 바깥에서 성을 즐긴다. 이영식은 전국을 돌아다니며 관계하는 여자도 함께 바뀌었다. 이성애 결혼관계 안에서 아이를 출산하고 남성이 가족의 경제를 책임지는 방식을 정상으로 분류하는 ‘정상 성 규범’에 따르면, 두 할배는 늙고, 가난하고, 결혼을 안 하거나 깨져서 정상에서 밀려났다. 대화보다 훈계, 타협보다 명령이 가부장의 권위라고 여겼던 늙은 남성들은 자기를 효과적으로 드러내지 못한다.

한국은 유구한 갑질의 나라

<공터에서> 김훈 지음, 해냄출판사

김훈의 신작 소설 <공터에서>는 이 할배 세대와 이들의 아버지 세대가 겪은 한국 현대사를 통해 “시대가 개인에게 가하는 고통을 견딜 수 없어 도망 다니고, 시대를 부인하고, 결국 미치광이가 되어서 바깥을 떠도는 인간들의 모습”을 그린다.
주인공은 1910년 태어나 1979년 사망한 남자 마동수와 그의 아들 마차세. 한일병합의 치욕 속에서 태어난 마동수는 형을 따라 만주로 가 아나키스트들과 어울려 25년을 떠돌다 해방 후 서울로 돌아온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부산 피난처에서 병원 빨래꾼으로 일하다 이도순을 만나 살림을 차리고 마장세, 마차세 두 아들을 낳는다. 군부 독재, 베트남전쟁 등을 겪는 그는 끝내 가정에 정착하지 못하고 평생 방황하다 세상을 떠난다. 아비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방황했듯이 아들들도 5·18 광주민주화운동, 6·10 민주항쟁의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받는다.
그가 그린 한국 근현대사는 “유구한 갑질의 역사”다. “내부의 상처를 통해 재편성된 외부 풍경을 옮긴” 특유의 문체가 빚어낸 갑질의 역사가 소설 장면마다 흐른다. 이를테면 6·25전쟁 당시 서울에서 부산까지 50만 명이 줄 지어 한겨울에 피난을 가는 대목에서, 이 나라 고관대작들은 군용차와 관용차를 징발해서 군용트럭에 응접세트, 피아노를 싣고 먼지 날리며 피난민 사이를 질주한다.
소설은 절망의 현실에서 모성에 눈을 뜬 여성을 통해 희망의 빛을 찾는다. 사내들의 마음속 공터는 여성의 사랑으로 채워진다. 문학적으론 진부한 발상이다. 각종 사료를 밑천으로 그린 초반부가 탄탄한 서사를 자랑하는 데 반해 아들 세대의 이야기를 담은 중·후반부는 다소 힘이 빠진 전개로 흐른다.

글 이윤주_ 한국일보 문화부 기자
사진 제공 이매진, 해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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