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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호

연극 <왕위 주장자들>과 <보도지침> 역사는 돌고 돌아 무대에 오른다
수십 년이 지난 후 현재는 어떻게 기록되고 재생산될까. 맥 빠지는 이야기지만, 아마 수십 년 전이나 수십 년 후와 비슷하지 않을까. 여기 국정 농단과 정쟁으로 얼룩진 현실정치를 떠올리게 하는 연극 2편이 있다. 물론 어제오늘 이야기는 아니다.

공간, 공감 관련 이미지1 <왕위 주장자들>에서 호콘 역을 맡은 김주헌 배우.

154년을 관통하는 권력에의 욕망

<왕위 주장자들> 3. 31~4. 23,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왕위는 유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위를 주장하는 자들은 수없이 많다. 모두가 왕위를 향해 나아간다. 누군가는 끝없는 자신감을, 또 다른 누군가는 실낱같은 불안을 품고.
<왕위 주장자들>은 노르웨이의 유명 극작가 헨리크 입센이 1863년에 집필한 작품이다. 입센은 외국에서 셰익스피어 다음쯤으로 작품이 많이 공연되는 극작가다. 지금껏 국내에서는 입센 작품 25편 중 11편이 무대에 올랐지만 흥행에 성공한 건 <인형의 집>과 <유령> 정도다. 서울시극단이 올해 시즌 첫 공연이자 창단 20주년 기념작으로 선보이는 <왕위 주장자들> 역시 이번이 초연이다.
작품 속 ‘왕위 주장자’는 두 명이다. 호콘 왕(김주헌 분)과 스쿨레 백작(유성주 분)은 스베레 왕 서거 후 왕위를 놓고 격돌한다. 호콘 왕은 백작의 딸 마르그레테를 왕비로 맞지만 형식적인 동맹은 서둘러 맺어진 만큼 쉽게 깨진다. 호콘 왕은 자신의 장인인 스쿨레를 죽이겠다고 맹세하고, 스쿨레는 호콘 왕의 아들이자 자신의 외손자를 시해하라 명하면서 갈등은 최고조로 치닫는다.
13세기 노르웨이를 배경으로 했지만 현대 심리극과 비슷한 형태를 띤다. 스쿨레는 왕위를 탐하지만 깊은 자기불신과 불안을 지닌 인물이다. 추종자들 앞에서는 강인한 지도자의 모습을 유지하면서도 뒤돌아 욕망의 무게를 버거워하는 모습은 ‘권력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떠오르게 한다. 반면 호콘 왕은 자기 확신에 가득 차 스스로를 ‘신’에 견주고, 많은 국민들은 그의 자신 있는 모습에 ‘희망’을 갖는다.
사상 초유의 ‘장미 대선’을 앞두고 있는 지금, 관객들에게 이 연극은 무겁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연출을 맡은 김광보 서울시극단 예술감독은 “우연의 일치”라고 강조하면서도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 현 시대와 너무 잘 맞아떨어져 한 방 맞은 기분이었다”고 했다. 그는 “(작품은) 스스로를 ‘신’이라 여기는 인물이 과연 일반 민중의 바람을 이루어줄 수 있을지, 국민의 ‘희망’이 그들이 바라는 ‘희망’이 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던진다”고 설명했다.
참고로 입센은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고국 노르웨이를 떠났다. 이탈리아와 독일, 문화적으로 더 큰 무대에서 활동하기 위한 여정이었지만 어쩌면 그 또한 무언가에 실망하고 질려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공간, 공감 관련 이미지2 <보도지침>에 출연하는 봉태규, 고상호, 박유덕, 남윤호 배우(사진 오른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언론의 흑역사… 진실은 숨겨지고 편집됐다

<보도지침> 4. 21~6. 11, 대학로 티오엠 2관

이번에는 좀 더 가까운 과거다. 어쩌면 <왕위 주장자들>의 피비린내 나는 정쟁보다도 뿌리 깊고 어둡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보도지침>은 30년 전 언론계 흑역사로 남은 사건을 재구성했다. 제5공화국 시절 문화공보부 홍보정책실은 언론사에 보도 여부와 방향, 내용, 형식 등을 규정한 ‘보도지침’을 배포해 언론 통제에 나섰다. 1986년 한국일보 기자가 월간지에 ‘보도지침’의 실태를 폭로했지만 이 또한 ‘보도지침’에 의해 보도되지 않았다. 폭로자들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됐고 9년 후에야 대법원의 무죄 판결을 받았다.
<보도지침>은 지난해 수현재씨어터에서 초연되면서 관객과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110분 내내 한 편의 법정드라마를 연상시키는 빠른 전개와 ‘사이다’ 같은 촌철살인 대사들이 쉴 틈 없이 몰아친다. 단순히 사건을 재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주요 등장인물들을 ‘대학 연극부 동기’라는 허구적인 설정으로 묶어 서사적인 재미와 연극적 기발함을 더했다.
이번 공연에서는 배우 봉태규가 사회부 기자 ‘김주혁’ 역을 맡았다. 2009년 연극 <웃음의 대학> 이후 7년 만에 연극 무대에 복귀한다. 같은 역에 <라흐마니노프>의 김경수와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의 이형훈이 공동 캐스팅됐다. 이외에도 편집장 ‘김정배’ 역의 고상호, 박정원, 기세중과 변호사 ‘황승욱’ 역의 박정표, 박유덕 등 떠오르는 뮤지컬 신예와 실력파 배우들의 조화가 기대되는 작품이다.
지난해에는 아쉬움이 남았다. 앞서 <보도지침>은 젊은 여성을 비하하는 듯한 제작사 대표의 말실수로 인해 예정보다 일주일 앞당겨 폐막했기 때문이다. 이번 공연은 뮤지컬 <그날들>과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등을 선보인 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가 제작과 기획을 맡았다. 진보적인 연극을 올리는 관계자의 편협한 고정관념이 연극의 작품성을 가리는 일이 다시는 없길 바랄 뿐이다.

글 구유나_ 머니투데이 기자
사진 제공 세종문화회관, 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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