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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2월호

김민수 작 은신

10분 희곡 릴레이 관련 이미지

* <10분 희곡 릴레이>는 젊은 작가 혹은 지망생들의 재기발랄한 10분 단막극입니다.
서울연극센터 웹진 연극人에 가시면 더 많은 작품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webzine.e-stc.or.kr)


등장인물 남1(60) | 1980년 당시 군인이었던 환자
              여1(20) | 가수 지망생
현재
장소 정신병원




남1은 의자에 앉아 있고 여1은 옆에 서 있다.
테이블 위에는 상자가 놓여 있다.



여1
안녕하세요. 아저씨. (사이) 상자를 왜 이렇게 놔두셨어요.
남1
어허.

여1 상자를 건드리지 못하고 물러선다.



여1
아저씨. 저 기억 안 나세요? 저번에 제가 노래도 불러드렸잖아요.

여1 상자를 열기 위해 다가서는데 남1 막으며



남1
어허 누구신데. 왜 이러실까.
여1
진짜 저 기억 안 나세요? 저번에 봉사 왔을 때는 아저씨 군대 얘기도 해주셨잖아요.

남1, 돌아서 앉는다. 상자를 품는다.



여1
아저씨 자꾸 움직이셔야 돼요. 밖에 아저씨들이랑 카드게임이라도 하세요. 이렇게 혼자 병실에 있으면 안 돼요.
남1
정신병자랑 안 놀아. 어디 네 노래나 불러봐라. 나한테 불러줬다며. 얼마나 대단하길래 여기까지 와서 노래하려고 하는지 들어나 보자.

여1, 쭈뼛거리며 노래를 부르지 못한다.



남1
(웃음) 판을 깔아주니까 못 하는구먼. 불러준 거 맞아? 가수 되려는 거 아니었나봐? 말만 많아가지고 정작 시키면 못해. 집에 가라. 귀찮게 하지 말고.
여1
집에 못 가요. (사이) 아저씨 운동하러 가요.

여1, 남1을 억지로 일으켜 세우려 한다.



남1
싫다고! 너는 왜 자꾸 이러는 거야.
여1
봉사하러 왔잖아요. 운동해야 다 낫는데요.
남1
딴 사람한테 가. 난 조만간 병원 나가.
여1
여기를 왜 왔는지도 모르는데 병원을 어떻게 나가요.
남1
네가 뭘 알아.
여1
기억 안 나죠?
남1
기억나. 내가 왜 병원을 못 나가.
여1
그럼 얘기해봐요. (웃음) 기억 안 나죠? 아저씨는 이렇게 시작했어요. “일천구백팔십년의 오월 나는 군인이었다.”

침묵
남1, 여1을 쳐다보고 기꺼이 말해주겠다는 듯.



남1
일천구백팔십년의 오월 나는 군인이었다. 말하자면 상관의 명령에 따라 죽을 수도 살 수도 있었다는 말이다, 나는.
여1
거짓말.
남1
아직 말도 안 했다.
여1
하면 안 된다고요.
남1
내가 뭣 하러 거짓말을 해. 나는 곤봉을 든 채 애를 쫓았다. 시위대 앞에 섰던 사람이 얘가 맞나 싶을 정도로 참으로 왜소했다. 그리고 그 애는 뜀박질도 하지 못해 나에게 금방 잡히고 말았다. (사이) 그 애는 서울로 올라가야 한다고 했다, 너처럼 말이다.

여자애를 한 번 쳐다보고 무대를 응시한다.



남1
그러고 나는.
여1
머리를 때렸죠?

남1, 여1을 쳐다본다.



여1
머리를 딱 때리고 나서는요?

여1, 머리를 때리는 시늉을 한다.



남1
그전에 하던 것처럼 발길질도 하고 침도 뱉었다.

여1, 발길질하고 침 뱉는 시늉을 한다.



여1
그러곤요?
남1
무전이 왔다.

여1, 무전을 받는 시늉을 한다.



남1
발포 명령이 떨어졌다. (사이) 명령을 받은 다른 전우들은 총을 쏘기 시작했다. 총 대신 칼로 사람의 배를 찌르는 이도 있었고 군홧발로 사람의 머리를 깨는 이도 있었다.

여1, 총 쏘는 시늉을 한다.



남1
그러고 나는.
여1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서 있었죠 멍하니. 옆에서는 총소리 비명이 들려오고 매캐한 냄새가 나니.
남1
총을 내려놓았다. 골목으로 애를 끌고 갔다. 그리고 한 대 쥐어박으며 어서 도망가라고 다시는 내 눈에 띄지 말라고 말했다. (사이) 근데 총소리가 들려왔다. (사이) 다 죽었다.

침묵



남1
난 거기서 어떻게 했어야 하는 거냐. 그 많은 희생을 치렀는데 변한 게 없다. 광주에는 이제 노래도 불리지 않는다.

여1, 상자를 열어보려 다가간다.



남1
뭐 하는 거야. (사이) 왜 남의 물건에 손을 대.

여1, 테이블에 놓여 있던 상자 뚜껑을 열어 총을 꺼내 든다.
여1, 총을 들고 침을 뱉는 시늉을 한다.



여1
야, 빨갱이년아.

군홧발로 얼굴을 짓이기는 시늉을 한다.



여1
서울 올라간다고? 가수가 꿈이야? 노래 한번 불러봐라. (사이)
왜 못 불러. 안 불러? 시작. 부르라고 이년아!

노랫소리 울려 퍼지고 곧이어 들려오는 총소리.



남1
뭐 하는 거야 지금.
여1
아저씨 따라 해요.
남1
미쳤구나. 정신병원 좀 다니더니 단단히 미쳤어. 노래나 불러.
여1
똑같네 아저씨.
남1
아 씨발.

여1, 남1에게 다가가고



여1
아저씨 기억나죠.
남1
뭐가. 노래나 부르라고.(뒷걸음질 친다.)
여1
기억 안 나요?
남1
뭐가.
여1
제가 노래를 어떻게 불러요.
남1
뭐라는 거야!
여1
노래도 못 부르게 목구멍에 대고 총을 쐈잖아요.
남1
….

남1, 넘어지고. 주위를 돌아보면서



남1
여기 아무도 없어요? 도와주세요. 사람 죽이려고 해요.
여1
아저씨.
남1
나 안 그랬어.
여1
아저씨.
남1
나한테 왜 그러는 건데, 나 안 그랬다고.
여1
나 아무 말 안 했어요.

남1, 고개를 숙이고



남1
날 죽여. 아니 내가 잘못했어. 알잖아.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것도 아니고.

여1, 총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총이 없다는 듯 손을 들고 남1에게 접근한다.



여1
아니 아저씨.

남1, 테이블에 놓인 총을 들고 여1을 향해 조준한다.



남1
손들어. 시발. 내가 안 그랬다고 했지. (사이) 손 안 들어? 쏜다? 손 들어.
여1
아저씨. 우리 해야 될 게 많잖아요.
남1
시발 손 들라고.
여1
아저씨 병원 못 나가겠다 또. 언제까지 그럴래.

남1, 여1을 향해 총을 쏜다.



남1
나 안 그랬어.

남1, 총을 다시 상자에 넣고 품는다.
암전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무대 처음과 같다.



여1
안녕하세요. 아저씨. (사이) 상자를 왜 이렇게 놔두셨어요.
남1
어허.
여1 상자를 건드리지 못하고 물러선다.
여1
아저씨. 저 기억 안 나세요? (사이) 기억날 텐데문화+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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