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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2월호

서울공예박물관 크래프트 그라운드 북촌 지형의 회복
옛 풍문여고 일대는 역사의 흐름과 함께 변화해왔다. 별궁이었다가 양반집이 되고, 학교로 바뀌었던 이곳은 새로운 도시 문화가 움트는 공공의 광장으로 다시 한 번 변모할 예정이다.

경복궁에서 창덕궁에 이르기까지 북촌 일대에는 근대화 이후 학교가 여럿 지어졌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도 1933년 경성의 학전문학교 외래진료소로 지어진, 엄밀히 보면 의대 건물이었다. 그 후 기무사로 쓰이며 정치적 오욕이 새겨졌지만, 현재는 현대미술관의 기프트숍과 학예사 사무실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복원 과정에서 시멘트를 벗겨내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스타일의 붉은 벽돌 벽과 콘크리트 띠장으로 된 수평성을 되살렸고, 건물군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이끄는 원형으로 자리매김했다.
경기고등학교가 강남으로 이전한 뒤, 옛 건물은 외관을 바꾸는 리모델링 없이 내부만 바꿔서 정독도서관으로 쓰이고 있다. 기숙사 건물이던 빨간 벽돌의 화동랑도 서울교육문화관으로 바뀌어 전시관으로 쓰이고 있다. 최근에는 화동길을 따라 이어지는 높이 4m의 옹벽을 허물어 북촌관광안내소와 공중화장실, 운치 있는 작은 공원을 만들었다. 다소 권위적이었던 학교가 다정한 공공공간으로 바뀐 것이다.

서울 건축 읽기 관련 이미지1 북촌의 입구 감고당길. ‘서울여성공예 창업대전’에서 수상한 수공예 작가들이 참가하는 판매, 전시의 장이 펼쳐지고 있다.

예술 공공공간으로 변화하는 풍문여고 터

최근 북촌과 그 주변 지역은 거주인구와 학령인구가 줄어듦에 따라 기존 학교가 다른 곳으로 이전하고 있다. 정독도서관에서 감고당길로 내려오는 길에 있는 풍문여고도 이전했다. 현재는 서울시가 그 땅을 매입해 서울공예박물관으로 바꾸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 동쪽에 위치한 송현동 대한항공 부지는 조선시대 양반 계층의 주거지였는데, 소나무가 많아 송현(松峴)이란 이름을 얻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 식산은행원 숙소로 쓰이다 광복 이후엔 미대사관 직원 숙소로 이용되기도 했다. 현재는 한진 그룹 소유로, 호텔 건립을 추진하다가 한류복합문화공간 조성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이곳에 문화공간이 들어선다면 현대미술관, 앞으로 들어설 서울공예박물관과 더불어 뮤지엄 트라이앵글(Museum Triangle)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풍문여고 자리는 옛 안동별궁 터로 궁 동쪽의 종친부와 더불어 왕가의 안가였던 곳이다. 2006년에는 돌담을 복원해 시민을 위한 산책로로 조성하기도 했다. 이 공간을 21세기의 예술 공공공간으로 만들어 도시의 단절된 시간과 골목길을 엮는 다소곳한 마당으로 탈바꿈시키려 한다. 주변의 공공 문화시설과 다양한 공간은 연속되는 선과 면, 그리고 건축적 볼륨으로 이어져 근 대화에 의해 단절된 시공간을 공공의 장소로 다시 엮어준다. 인사동길에서 시작되는 보행길의 흐름은 남북으로 이어지며, 높은 담을 낮추고 새로 제안되는 남쪽의 아트플랫폼은 도시의 불확정적인 공공공간을 마련해준다. 또한 북쪽의 연지, 후정의 공간은 돌담을 돌아서서 들어갈 수 있는 은밀한 정원이 된다. 의도된 질서보다는 땅에 축적된 역사를 엮는 것으로부터 얻어진 질서가 도시의 시간 연결체가 되는 것이다.
오래된 은행나무는 궁의 뒤편에 있다. 북쪽의 높은 메 아래에는 연지가 있어서 운치를 더했다. 은행나무 동산은 원지형을 회복하며 서서히 감고당길로 경사를 지어 내려오는 곳이며, 계단과 자연이 어우러진 화계를 만들어 뒷동산이 회복된다. 뒷동산에서 동관 밑의 필로티(Pilotis)를 통해 북촌을 내려다본다. 운동장은 윤보선길의 레벨에서 학교 레벨에 맞추어 아트플랫폼을 만들고 박석을 깔아 광장으로 사용한다. 마치 종묘 정전의 월대처럼 낮에는 사람들도 북적이고, 밤에는 별을 보는 곳이다. 광장은 길이자 마당으로서, 향후 대한항공 부지 개발 시 공공 보행공간을 연장하는 너른 공간이다. 주말에는 프리마켓으로 북적이고, 한 해에 한 번은 가례 행사가 치러진다. 구석구석 남아 있는 숨은 보석 같은 골목길을 입체적으로 연결함으로써 도시의 비움은 채움이 되며, 동서로 연결되는 공공공간을 만든다.

역사의 흔적에서 도시재생의 원리를 찾다

감고당길에서 내려오다 만나는 사고석담의 모서리는 담장의 기단석으로 쓰이는 석재 3개를 바닥에 묻고 보이는 않는 장대석 위에 수직으로 쌓아 해학적으로 보강했다. 이렇듯 대지에서 찾은 오래된 시간의 흔적은 도시의 고고학적 깊이를 더하므로 보존· 유지한다. 더 내려가다 보면 사고석담이 콘크리트벽으로 흉하게 끊어진 부분 아래에 남은 문지방이 있다. 아마 별궁의 후정을 드나드는 뒷문이었을 것이다. 콘크리트벽을 걷어내고, 그곳을 후정을 바라보는 창으로 변용한다. 옛것에 대한 오마주다. 높은 곳에서 물이 흘러 모인 예전의 연지는 원래의 위치에 복원되어 판판했던 학교 땅에 촉촉한 기운을 더하며, 높은 곳과 낮은 곳의 위계를 설정한다. 둔덕, 돌담, 은행나무, 연지 등 땅이 가지고 있는 요소는 고고학적으로 재발견되며 도시재생의 원리가 되었다.
학교 건물의 원형은 최대한 보존하며, 꼭 필요한 기능을 위해서는 새로운 코어를 삽입하는 형식으로 땅과 더불어 새롭게 발견되는 공간의 깊이를 더한다. 창은 회랑이 되고, 필로티도 되고, 큰 동선 프레임도 된다. 학교 건물은 대지의 연결과 실내의 필요에 의해 매스를 비우는 형국으로, 은행나무가 있는 쪽으로 가기 위해서 1, 2층을 덜어내기도 한다. 동그란 정보관은 다양한 두께의 루버로 마감되어 마치 얼레와 같은 느낌을 주는데, 세미나, 체험공방, 도서관 등의 공유공간으로 변모한다.
조선시대, 조선시대 말기, 20세기의 근대화 등을 거쳐오면서 이 땅과 그 주변은 변화를 감내해왔다. 위정자에 의해 터가 정해지고 별궁이 되었다가 양반집이 되고 학교로 바뀌는 등 그 나름대로 공공의 길을 걸어왔다. 역사도시 경관 디자인의 흐름을 타고 만들어진 돌담이 운치를 더하기도 했지만 진정한 공공화는 아니었다. 도시화, 개발에 의한 사유화로 궁과 종묘를 잇는 길 사이에 감돌던 정신적 기운은 약해졌으나, 21세기에는 그 단절을 새로운 길로 잇는 지형의 회복이 이뤄지고 있다. 보행을 위해 과감히 담을 허물고 바닥을 만들며 지형을 살려주는 작업은 거대한 청사진보다는 새로운 도시 문화와 정신이 싹트기를 기대하는 소박한 배려로부터 시작됐다. 사회적 비용이 지금보다 더 커지기전에 하루빨리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문화+서울

서울 건축 읽기 관련 이미지2 서울공예박물관 주 투시도

글 송하엽
중앙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미국건축사. 저서로 <랜드마크; 도시들 경쟁하다> <파빌리온, 도시에 감정을 채우다> <표면으로 읽는 건축>이 있으며, 서울건축문화제에서 ‘담박소쇄노들: 여름건축학교’ ‘한강감정: 한강건축상상전’을 기획했다.
사진 제공 페어스페이스, 송하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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