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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11월호

다시 돌아온 유토피아 ‘세운상가’ 도시의 이상(理想)
그리고 상상(想像)
세운상가가 다시 이어진다. 청계천을 사이에 두고 끊어졌던 종로세운상가와 청계·대림상가의 공중가로(공중보행데크)가 다시 이어진다. 학창 시절 내게 자유로움을 느끼게 해준 그 공중가로가 다시 이어진다.

세운상가는 나만의 공간이었다. 지하철 종로3가역에서 내려 계단을 타고 올라와 공중가로 위에 서면 자동차 소리와 지저분한 풍경도 모두 사라지고, 북쪽으로는 종묘를 거쳐 푸른 북악산이, 서쪽으로는 빌딩 사이로 검은색 삼일빌딩이, 남쪽으로 남산타워(N서울타워)가 오롯이 남산 위에 서 있고, 동쪽으로는 성곽과 함께 낙산이 어렴풋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온전히 나만의 서울을 가질 수 있었다. 특히 종로세운상가와 청계·대림상가 사이의 공중가로를 건너며, 위쪽 청계고가도로의 구조물을 통해 전달되는 수많은 차량의 진동과, 아래쪽 복개된 청계천로의 차량 소리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으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미지의 세계, 나만의 공간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 들었다. 한쪽 공중가로를 타고 세운상가와 청계·대림상가로, 다시 반대쪽 공중가로를 타고 청계·대림상가에서 세운상가로 육상트랙을 돌듯이 시계 반대 방향으로 한 바퀴 돌면, 내 안에 억눌렸던 욕망이 해소되는 느낌이 들었다. 세운상가는 내 사춘기 시절, 그토록 갈망했던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 세운상가를 부수고 지워버리겠다고 했다.

서울 건축 읽기 관련 이미지세운상가의 내부.

세월과 이해관계에 의해 좌절된 이상(理想)

세운상가의 시작 역시 도시를 지우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태평양전쟁 말기 수세에 몰린 일본은 대규모 화제를 유발하는 소이탄(燒夷彈) 공격을 대비해 종로에서 남산 기슭까지 멀쩡한 마을을 철거하고 길이 1km 폭 50m의 소개공지(疏開空地)를 만들었다. 그렇게 비어 있던 땅에는 6·25전쟁 후에 집을 잃은 이재민과 월남한 이주민이 판잣집을 지어 살기 시작했고, 어느새 몸을 사고 파는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종삼(鐘三)’이라 불리는 대규모의 사창가가 만들어졌다. 1966년 4월 서울시장으로 부임한 ‘불도저’ 김현옥 시장은 도심 한복판에 판잣집과 사창가가 있는 것을 아주 못마땅해했고,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후광을 업고 전격적으로 이 일대 정비 사업을 추진했다. 당시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 부사장이던 건축가 김수근은 이렇게 종로3가에서 퇴계로3가까지 무려 1km에 이르는 대한민국 최초의 주상복합건물을 지을 수 있는 일생일대의 기회를 얻게 되었다.
김수근이 계획했던 세운상가는 단지 긴 건물이 아니라, 건물마다 파출소, 소방서와 공중정원 등 공공시설이 있고, 보행자만을 위한 공중가로로 연결된 이상적인 입체 도시였다. 프랑스 근대 건축가 르 코르뷔제(Le Corbusier, 1887~1965)가 설계한 단위 주거 아파트(불어로 ‘위니테다비타시옹 Unite d’ Habitation’)와 르 코르뷔제를 흠모한 일본 건축가 겐조 단게(Kenzo Tange·丹下健三, 1913~2005)의 동경만(東京灣) 프로젝트의 입체적인 공중가로를 연상시키는 세운상가에서, 김수근은 역동하는 대한민국을 위한 유토피아를 꿈꿨을지 모른다.
하지만 세운상가는 건축가 김수근의 의도대로 지어지지 않았다. 건물의 위압감을 줄이기 위해 유리로 계획되었던 외벽은 콘크리트 덩어리 그대로 노출되었고, 공중가로는 을지로 위에서는 하나로 줄어들고 마른내길 위에는 아예 지어지지 않았다. 공중가로를 지지하는 V자형 열주들이 만들어냈을 리드미컬한 공간은 지루한 수직 기둥들로 대체되었고, 여유로운 공공 공간을 만들기 위해 뻥 뚫린 공간은 모두 채워지고 상가로 분양되었다. 분양 초기 인기도 잠시, 1970년대 말부터 시작된 강남 개발로 서서히 외면당하고, 그 빈자리는 은밀한 욕망의 공간으로 채워지게 되었다. 특히 1987년 조성된 용산전자상가는 그나마 세운상가를 유지하고 있던 전자상가에는 치명적이었다. 세운상가는 당연히 철거해야 하는 흉물처럼 취급되었다. 시장이 바뀔 때마다 세운상가를 철거하겠다고 하고, 건축학도들은 그 위에 온갖 이상향을 그려보았다.

다시, 이곳은 유토피아(Utopia)

하지만 세운상가는 지워지지 않았다. 그 끈질긴 생존의 끝에 드디어 빛을 보려 한다. 예술가들이 몰리고, 협동조합이 생기고, 시장이 살리겠다고 한다. 사람들은 왜 세운상가를 다시 찾을까? 그 답은 세운상가가 어디에도 있지 않은 장소이기 때문이다. ‘어디에도 있지 않은 장소’는 바로 ‘유토피아’다. 유토피아(Utopia)는 원래 그리스어 Ou(not)와 topos(place)가 합해 만들어진 라틴어로, 그 의미를 직역하면 존재하지 않는 장소 ‘no-place’이다. 즉 어느 곳에도 없기 때문에 끊임없이 지향하는 어떤 곳인 것이다. 세운상가 어디에도 대한민국의 이상향이 구현되어 있지 않다. 그랬다면 이곳 역시 수많은 건물처럼 유행에 따라 철거되고 또 다른 건물에 의해 대체되었을지 모른다.
한동안 세운상가는 영화감독들에게 인기 있는 곳이었다. 2010년 개봉한 영화 <초능력자>에서, 사람을 조종하는 초능력을 가진 초인(강동원)이 초능력이 통하지 않는 유일한 사람인 규남(고수)을 위협하기 위해,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을 비처럼 떨어뜨리던 음침한 실내 중정이 있는 곳이 바로 세운·현대상가 아파트 내부였고, 2012년 개봉한 영화 <도둑들>에서, 마카오박(김윤석)이 영화 끝부분에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이에게 복수하기위해, 홍콩 암흑가 보스를 자기 집으로 유인하고 복도 가운데 중정에 뛰어내려 빠져나오는데, 바로 청계·대림상가 아파트 내부다. 마카오박이 줄 하나에 매달려 총격전을 펼치던, 총천연색 차양이 붙어 있던 부산의 이국적인 아파트는 사실 충무로 진양상가 아파트 외벽이다. 그렇게 세운상가는 어느 곳에도 있지 않은 곳이기에, 영화라는 상상의 세계를 펼치기에 좋은 곳이었다. 이제 이곳은 모든 이에게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곳이 되어가고 있다. 단지 희망하는 것은 억지로 답을 주려 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그저 여기 사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게만 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래야 우리 모두에게 아무 곳에도 없는 곳, 모든 선입견과 편견과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그곳에서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금 이어진 그 공중가로에서 자유롭게 나만의 공간을 만들기를 간절히 바라본다.문화+서울

글·사진·스케치 조한
현재 홍익대학교 건축대학 교수이며 한디자인(HAHN Design) 대표로 건축·철학·영화의 경계를 넘나들며 ‘시간·공간’에 관한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서울, 공간의 기억 기억의 공간: 건축가 조한의 서울탐구>(돌베개, 2013)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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