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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11월호

자취를 감췄던 ‘청춘 드라마’의 귀환 청춘, 그 빌어먹을 청춘의 드라마
21세기, 청춘이란 단어는 ‘푸른 봄’보다는 ‘멍든 봄’으로 읽힌다. 분명히 쉬지 않고 열심히 했는데 많은 이들이 안은 기본값은 ‘꿈과 사랑’이 아닌 ‘낙오감과 빚’이다. 1990년대 중반까지 유행하던 청춘 드라마가 오랫동안 자취를 감춘 이유다. 올해 오랜만에 등장한 두 편의 청춘 드라마가 눈에 띈다. <청춘시대>(JTBC)와 <혼술남녀>(tvN). 이들의 미덕은 이 시대 청춘의 누추한 현실과 고민을 섬세하게 다루면서도 가능한 판타지의 끈을 놓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명석의 썰 관련 이미지

심장아 나대지 마! 푸를 청(靑)에 봄 춘(春)이라니, 그런 게 어디있니? ‘청춘(靑春) 드라마’는 20세기의 골동품이야. 풋풋한 젊은이들이 펼치는 아름다운 도전과 성장통의 이야기는 한때 우리 TV의 메이저 장르였다. 20대 초반의 짧은 순간에 예외적인 자유를 허락하며 그 시절에만 가능한 꿈과 사랑에 모두 눈을 맞추기도 했다. 그러나 혹독한 취업 전쟁 속에서 젊은 영혼들은 스스로를 포기의 세대, 잉여의 존재라 부르기 시작했다. 이를 틈타 30~40대가 추억의 학생복을 꺼내 입고 청춘의 라벨을 훔쳐가기도 했다.
섣부른 기대인지 모른다. 그런데 요즈음 뭔가 눈에 띈다. 작지만 반짝이는 젊음의 이야기가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얼떨결에 하우스메이트가 된 다섯 여대생이 등장하는 JTBC의 <청춘시대>와 노량진 학원가의 애환을 담은 tvN의 <혼술남녀>가 그 주인공들이다. 이 시대는 다시 청춘 드라마를 허락할 준비가 된 것일까?

자유·도전·낭만이 허락됐던 20세기 청춘

청춘이라는 단어는 생각보다 젊다. 20세기 초반 계몽 잡지들이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냥 젊은 연배를 뜻하는 중립적인 말이었지만, 1920년대 근대문학에 의해 특별한 감각의 말로 변신하게 된다. 광복 이후에도 이런 의미는 이어졌고, 청춘은 인생에서 특별히 예외적인 시기이며 자유와 도전이 허락되는 때로 여겨졌다. 1970년대 통기타와 청바지로 대변되는 청년문화가 등장하고, <바보들의 행진> <고래사냥> 등 대학생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가 인기를 모으며 청춘에는 황금의 테가 둘린다. 청년들은 기성세대에 저항하는 자기만의 정체성을 가지려 했고, 여타의 세대들도 청춘의 무모함에 예외적인 너그러움을 보이기도 했다.
1980~90년대의 실제 대학가에는 민주화의 열기가 거셌지만 TV 속에서는 아기자기한 청춘 드라마가 크게 유행했다. <사랑이 꽃피는 나무> <우리들의 천국> 등 대학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가 최고의 인기를 모았고, 대학 동기인 신입사원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질투>가 청춘 트렌디 드라마의 시대를 열었다. 여기에는 사실 일본에서 버블경제 시기에 낭만적으로 채색한 청춘물-영화, 만화, 드라마, 광고, 음악-의 영향이 적지 않았다. 어쨌든 우리가 청춘 드라마라고 하면 떠올리는 이상적인 이미지는 이때의 것들이다.
구제금융 시기 이후 경제적 위기와 실업률의 증가는 청춘의 환상을 앗아갔다. 혹독한 취업 전쟁, 학자금 대출 부담, 저임금 알바, 비정규직의 불안함 등이 ‘20대 초반의 예외적 몇 년’을 용납하지 않았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유의 통과의례론도 힘을 잃었고, 포기가 당연해진 세대는 청춘의 활력을 잃어갔다. <응답하라 1994> <응답하라 1997> 등 10대 후반~20대 초반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가 의외의 성공을 거두기는 했다. 그러나 이들 복고풍의 드라마는 기성세대의 환상 속에 존재하는,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그 시절의 청춘을 그리고 있을 뿐이다. 최지우가 주연을 맡은 <두 번째 스무살>은 40대 전후의 남녀가 대학가를 배경으로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이야기로, 캠퍼스 청춘 드라마의 주인공 자리까지 20대로부터 빼앗기도 했다.
당대의 진짜 청춘들은 스스로를 잉여라고 부르게 되었다. 주인공의 지위를 박탈당했다는 자조의 선언이다. 이제 영화나 드라마에서 이들의 진실된 내면을 담은 이야기를 만나기란 쉽지않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 <청춘시대>와 <혼술남녀>라는 청춘의 이야기가 우리 눈앞에 나타난 것이 작은 놀라움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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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누추한 현실을 안고 돌아온 청춘 드라마

<청춘시대>는 <응답하라 1994>의 하숙집이 아니라 알록달록한 셰어하우스에 모여 사는 다섯 하메(하우스메이트)들의 이야기다. 어느 정도의 판타지 필터가 들어가 있지만, 나름대로 개성과 현실성을 갖춘 다섯 여대생이 주인공이다. “애인 하나 만들어.” 미모를 적당히 팔면서 명품으로 치장하고 사는 강이나(류화영), 그와 대조적으로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며 칙칙한 얼굴을 하고 다니는 윤진명(한예리)을 중심으로 주요 등장인물 각각의 고민이 펼쳐진다. 처음에는 서로 거리를 느끼고 각자 외롭게 문제 속을 헤매던 친구들이, 하나둘 문을 열고 함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무척이나 애틋하다. 그리고 때론 너무 현실적인 말이 마음을 저리게 한다. “그냥 별일 없이 만나서 커피 마시고 영화 보고, 그런 거 한번 해보고 싶었어요, 남들처럼.” 한편에서는 힘든 나날을 이겨가게 하는 연애의 상대조차 데이트 폭력의 가해자로 변해버리기도 한다.
“노량진까지 왔으면 공부나 하시지.” <혼술남녀>는 제목을 <노량진 남녀>로 바꾸는 게 맞을 것 같다. 처음에는 퇴근 후 우아하게 와인을 홀짝이는 혼술족의 이야기를 그릴 것 같았지만, 속을 열어보니 노량진 학원가의 생활을 제법 꼼꼼히 그리고 있다. 그래서 주연인 두 강사의 코믹한 사랑보다는 기범(Key), 채연(정채연), 공명(공명), 동영(김동영) 등 공무원 수험생들의 ‘웃픈’ 현실이 더 가슴에 와 닿는다. “어떻게 방 안에 돈 주고 산 물건이 없냐?” 공부에 매달리느라 애인도 잃고, 라면 한 봉지에 티격태격한다. 그러다 한 친구가 바다로 간다. ‘자~ 떠나자. 고래 잡으러~’가 아니다. “합격해서 꼭 갚고 싶었는데 이렇게 빚만 지고 떠나네. 다음 생엔 부자로 태어나서 멋지게 술 한잔 살게.” 세상 하직하러 바다에 간 친구는 뒤따라 온 친구들이 사준 민어회를 먹고 재빨리 삶으로 복귀한다. 무모한 배짱조차 사치스러운 젊음이다.
그들은 “희망, 그 빌어먹을 놈의 희망”이라고 말한다. 손잡고 세상과 싸우지 못하는, 각자도생의 하루하루가 더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봄이 오기 직전의 그 시간이 가장 춥다. 오기로 한 때에 봄이 오지 않으면, 더욱 견디기 어렵다. 영원히 오지 않을까 두려워진다. 하지만 <청춘시대>와 <혼술남녀>의 주인공들 속에는 반짝거리는 그 조각들이 분명히 있다. 청춘, 그 빌어도 빌어도 되돌릴 수 없는 청춘이. 문화+서울

글 이명석
문화비평가 겸 저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여행의 즐거움과 인문학적 호기심을 결합한 <여행자의 로망백서> <지도는 지구보다 크다> <도시수집가> <모든 요일의 카페> 등의 저서가 있고, KBS 라디오 <신성원의 문화공감>, SBS 라디오 <책하고 놀자>에 고정 출연 중이다.
사진 제공 JTBC, CJ 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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