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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호

책 <권혁재의 비하인드>와 <책가도> 그들의 렌즈가 주목한 것은 ‘삶’
사람은 어딘가에 저마다 삶의 흔적을 지니고 산다. 가장 직접적으로는 몸이 그럴 것이고, 직접 적은 글은 물론 읽은 글도 한 사람을 이야기하기에 부족하지 않다. 사람의 흔적에 주목하며 그들의 ‘삶’을 드러내고자 한 사진집을 소개한다. 평범해 보이는 얼굴, 비슷해 보이는 책장일지라도 사실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A형은 손이 참 곱다. 50대 남자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매끈하고 가늘다고, 나는 늘 생각한다. 그 손에 눈길이 이끌릴 때마다 그의 삶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궁금해졌다.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 A형인 데다, 직접 물어보지도 않아 잘 알지는 못한다. 다만 고운 손을 볼 때면 A형이 소설가라는 사실을 떠올린다. 저런 손이라야 그처럼 섬세하고 유려한 문장을 쓸 수 있는 걸까. 그가 육체노동과는 거의 인연이 없이 살아왔다는 건 확신할 수 있다.
얼마 전 책장을 정리했다. 책장 안쪽에 있어 평소엔 눈에 거의 띄지 않던, 대학 시절 읽었던 책에서 지금의 나를 봤다. 특별한 목표를 의식하고 읽은 책은 아니었다. 손 가는 대로, 그때 그때의 관심에 따라 읽었던 책이다. 20년 전과 지금의 나, 별반 다를 게 없는 것을 발전이 없다고 해야 하는 걸까, 꿋꿋하게 한길을 걸어왔다고 해야 하는 걸까.
시간은 그저 흘러가지 않는다. 켜켜이 쌓여 삶을 이룬다. 각자가 걸어온, 그리고 지금 걷고 있는 축적된 삶의 가장 뚜렷한 흔적은 몸과 책이 아닐지…. A형의 고운 손과 나의 책장처럼 말이다. <권혁재의 비하인드>(권혁재 지음, 동아시아), <책가도>(임수식 지음, 카모마일북스)가 누군가의 삶에 접근하는 방식이다.

몸보다 몸이 드러내는 ‘삶’을 찍다
<권혁재의 비하인드>, 권혁재 지음, 동아시아

권혁재는 자신의 사진이 “사람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집중하고자” 했던 결과라고 말한다. 멋있게 찍기 위해 고민하고, 그럴듯한 장소를 찾기 위해 시간을 쓰기보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고 자신의 작업 방식을 설명한다. “그들이 들려준 삶의 메시지가 제 사진의 부끄러움을 넘어설 것이라 믿기 때문”이란다.
그는 강수진 국립발레단 예술감독의 등을 우연히 본 적이 있다. 그때 언젠가 강수진의 등을 찍겠노라 다짐했다. 카메라 앞에서 선 강수진에 대해 권혁재는 “포즈를 취하자마자 등 근육이 툭툭 불거져 나왔고 격렬한 움직임이 없이도 근육 하나하나가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단다. “30년의 부단한 연습의 결과임에 틀림없었다. 등 근육이 그녀 자신의 역사일 뿐 아니라 우리가 기억해야할 역사”라며 강수진의 등에 주목한 이유를 밝힌다.
권철은 사진 속에서 험악하게 인상을 쓰고 있다. 눈은 사납게 앞을 노려보고 있고, 입은 신음하듯 살짝 벌어져 있다. 그는 일본에서 활동한 다큐 사진가다. 첫 번째 사진집은 <우토로-강제 철거에 맞선 조선인 마을>이고, 일본의 번화가 가부키초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담은 <가부키초>, 한센병 회복자 시인 사쿠라이데쓰오와 인연을 맺고 찍은 <텟짱! 한센병에 감사한 시인>을 잇달아 냈다. 가장 낮고 소외된, 그리고 인간의 밑바닥을 드러내는 대상을 카메라에 담은 권철은 “한 마리 고독한 늑대로 살고 싶다”며 권혁재의 렌즈 앞에 섰다.

공간공감 관련 이미지

비슷해 보이지만 모두 다른 책장
<책가도>, 임수식 지음, 카모마일북스

김윤식, 김훈, 황석영, 함정임, 이인화 등 50여 명 예술가, 학자들의 서재와 작업실에 있는 책장을 찍어 책으로 낸 임수식은 책장을 만나러 가기 전 상상을 한다고 썼다. “평소에 알고 있던 선생님의 모습을 비추어 만나게 될 책장을 마음속으로 그려보는데, 대부분 다르지 않은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책 한 권, 한 권이 한 사람이 이루어낸 존재의 증명이니, 책을 모아놓은 책장을 들여다보는 것은 그 사람의 내면을 탐구하는 여행이 된다.
<영원한 제국>으로 유명한 소설가 이인화는 요즘 한창 디지털 스토리텔링에 관심이 많다. 컴퓨터 프로그램이 시도, 소설도 쓴다는 말도 들려준다. 이인화와 한참을 디지털 시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 돌아본 책장, 임수식은 “선생님의 책가도는 더없이 아날로그”라고 감상을 적었다.
책장은 책뿐만 아니라 주인이 사랑하는 오브제의 거처이기도 하다. 사진가 홍순태의 책장. 비대칭의 그것에 책들과 오브제가 아름답게 자리를 잡고 있다. 가운데 나란히 배열된 것은 홍순태가 미국, 독일, 프랑스에서 구입한 대형 카메라다. 임수식은 “대형 카메라가 선생님의 삶을 또렷이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문학평론가 김윤식의 오래된 책으로 빽빽한 책장을 두고는 책장 주인의 강인한 인상과 닮았다고 말한다.
권혁재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각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이들이기는 하나 누군가에게는 낯설고, 잘생긴 모델처럼 눈길을 사로잡을 만한 미모를 가지지 않았다. 임수식의 작품들은 비슷비슷한 책장의 나열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저마다의 삶, 그것과 얽힌 이야기를 포착하고 부각한 사진 속에서 더없이 아름다운 피사체다. 두 책이 독자에게 보여주는 건 피사체 자체, 혹은 자신들의 빼어난 역량이 아니라 삶이다.
자신의 삶을 웅변하는 무언가는 누구나 갖고 있다. 두 책이 말하듯 몸과 책장일 수 있고, 그것이 아닌 무언가일 수도 있다. 들여다보면 자신의 삶이 보이는 그 무엇을 찾는 것은 과거와 현재의 나를 돌아보고, 미래의 나를 그려보는 꽤 괜찮은 방법이 아닐까 싶다.문화+서울

글 강구열
세계일보 기자
사진 제공 동아시아, 카모마일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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