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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호

고용 불안 심화하는 예술강사 제도 변경 예술강사, 더는 물러설 곳이 없다
예술강사 제도는 공교육에서 예술교육을 활성화하고 예술가의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강사 평가가 고용에 직접 영향을 준다는 점, 10년째 강사료가 동결된 점 등 예술강사의 처우 개선 문제도 끊임없이 지적돼왔다. 최근에는 학교가 강사의 고용을 선택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전환될 움직임이 보여 예술강사들이 반발하고 있다. 제도를 받아들이기에 예술강사들은 더 물러설 곳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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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반대에 부딪히면서도 제가 선택한 길이니까 연극을 포기할 수 없었어요.”
성석주(50) 씨는 23년차 베테랑 연극배우다. 2004년부터는 학교와 복지관 등에서 학생과 어르신들을 상대로 연극을 가르치는 ‘예술강사’일을 병행해왔다. “세 아이까지 다섯 식구를 부양하기 위해 생계 목적으로 시작한 일”이지만, 12년 동안 학생들을 만나며 행복한 순간이 많았다. “젊은 시절 배우가 되고 싶었다는 복지관 어르신들이 공연을 마치고 내려와 ‘꿈을 이뤘다’며 손을 잡아주세요. 아이들이 기진맥진하면서도 행복한 얼굴로 ‘드디어 탈고했어요’ 라면서 대본을 들고 달려오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연극을 떠나지 않고도 고정적인 수입을 얻을 수 있어 참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웃던 성씨가 한숨을 지으며 덧붙였다. “내년에 대한 불안만 없다면.”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진흥원)이 당장 내년부터 ‘예술강사 제도’를 크게 바꾼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예술강사들이 수업계획서를 제출하면, 이것을 보고 학교 교사들이 직접 예술강사를 선택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했다. “이미 활동하고 있는 예술강사와 계약을 모두 해지한 뒤, 원점에서 다시 계약을 맺는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지난 10여 년 제도가 수시로 바뀌고 뒤늦게 통보되는 일이 흔했지만, 이번 변화는 심상치 않았다.

학교가 예술강사를 선택하는 방향으로 전환, 무엇을 의미하나

예술강사 제도는 현장 예술인을 학교나 복지관에 파견해 예술교육을 활성화한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5,047명의 예술강사가 학교 8,776곳과 550여 개 복지관에서 활동하며 국악, 무용, 연극, 영화, 공예, 사진, 디자인, 만화애니메이션 등 8개 분야의 수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예술강사의 계약은 1년 단위인데 방학 때는 임금을 받지 않으니 실제 계약기간은 8개월 보름 정도가 된다. 자조를 섞어 서로를 ‘8개월 목숨’이라고 하지만 그동안 재계약이 어려운 편은 아니었다. 진흥원의 예술강사 풀에 한번 들어간 이들은 간단한 심사만 거쳐 다시 예술강사 자격을 얻을 수 있었다. 자신의 예술 분야에 따라 원하는 학교를 살펴보고, 선택해 지원했다.(이상 2016년 기준)
예술인, 교사, 무엇보다 노동자인 예술강사들은 지난 8월 16일 서울 상암동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앞에 자리를 잡았다. 이들은 예술강사 지침 변경에 거세게 반발하며 보름 동안 노숙농성에 나섰다. 예술강사의 장기농성은 처음 있는 일이다. 시민 서명을 받고 촛불집회도 벌였다. 무엇이 이들을 거리로까지 나오게 했나?
학교가 직접 예술강사를 선택하는 제도로의 개편은 예술강사의 고용이 전적으로 ‘학교 교사의 선택에 달린다’는 것을 의미했다. 진흥원과 문체부 등은 “학교들이 상황에 맞게 예술강사를 고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격무에 시달리는 학교 현장에서 일선 교사들이 예술강사를 심사하고 선택하는 번거로운 과정을 치르기보다는 예술강사의 수업 자체를 없애버릴 가능성이 크다”며 전국예술강사노동조합(예술강사 노조) 쪽은 맞섰다. 교사 마음먹기에 따라 일자리 자체가 사라질 위험이 크다는 의미다.
‘학교(교사) 눈치보기’가 심각해질 거란 우려도 있다. “학교와 예술인이 협력해 예술교육을 해나간다는 취지는 훼손되고, 학교가 원하는 성과 위주의 교육만을 하게 될 수밖에 없다. 현재도 대회 수상 성적만을 압박하는 학교가 많다. 이런 경향은 더 심각해질 것이다.” 김광중 예술강사 노조위원장의 말이다.
‘이미 활동하고 있는 예술강사와 원점에서 다시 계약을 맺는다’는 이야기는 수년씩 학교와 복지관 현장을 누비며 예술강사들이 품고 살아온 ‘고용 불안’이 현실화하는 것을 의미했다. 문체부와 진흥원은 “더 많은 예술인에게 일자리 기회를 주겠다”는 의도이지만, 예술강사들은 “1년짜리 불안한 일자리를 서로 돌려 갖는 식의 일자리 창출이 대체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반발했다.

10년째 임금 동결, 주관적 평가와 고용 불안 심화되는 예술강사들

문체부와 진흥원은 9월 말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내년 예술강사 지침을 내놓지 않았다. 다만 예술강사들의 반대를 고려해 전체적으로 올해와 같은 틀을 유지하되, 일부 예술강사에 대해서만 학교선택권 강화 등의 새 지침을 적용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예술강사도 원점에서 계약을 맺도록 하는 방안도 잠시 보류했다.
“한숨 돌렸지만 언제까지 이 상태로 버틸 수 있을지 알 수 없으니까요.” 김광중 위원장은 한발 물러선 문체부와 진흥원의 태도에도 마음을 놓지 못했다. 고용 불안과 저임금은 예술강사 제도가 시작된 10여 년 동안 지속된 화두다. 제도가 바뀔 때마다 예술강사들의 입지는 좁아졌다. 예술강사 평가 제도가 대표적이다. 예술강사의 점수를 매기는 평가 제도는 2010년 이후 매년 다른 기준으로 바뀌어왔는데, 그때마다 예술강사들은 마음을 졸였다.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하면 이듬해 지원 때 후순위로 밀리는 등의 불이익을 받게 된다.
(외부 심사위원) 현장 방문만을 통해 예술강사를 평가하던 제도에 2010년부터 교사 평가, 학생 평가 등이 들어왔고 비중이 늘더니, 2013년부터 아예 외부 심사위원의 평가가 사라졌다. 객관적인 제3자의 평가가 완전히 사라져버린 상황은 현장에서 문제를 낳았다. 예술강사가 학교 교사의 개인적인 책상 정리, 짐 정리를 떠맡거나 자신의 전공과는 무관한 예술교육에 동원되는 일이 폭로됐다. ‘좋은 평가 점수가 일자리와 직결돼 문제를 제기하지 못했다’고 했다.
임금 수준도 후퇴했다. 예술강사들의 시간당 강사료는 4만원으로 10년째 같다. 그나마도 한 해 예술강사가 수업할 수 있는 시간이 줄었다. 한때 400여 시간에서 374시간이 됐다. 강의시간 삭감은 ‘강의한 만큼만 돈을 받는’ 예술강사들에게 임금 삭감을 의미한다. 예술강사들의 한 해 수입은 2016년 평균 1,200만원 언저리에 머물러 있다.
연봉 1,200만 원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예술강사들은 거리로 나왔다. “아이들이 ‘선생님 내년에도 볼 수 있는 거죠?’ 라고 물을 때 저는 어떻게 대답하면 좋을까요. 이 일이 없으면 저는 제 연극을 이어갈 수 있을까요?” 한숨을 내쉬는 성석주 씨는 올해 연극과 정부지원금으로 400만 원 남짓을 벌었다. 연봉 1,200만원 예술강사 일자리는 그가 가족과 연극을 지키기 위해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한계선이다.문화+서울

글 방준호
한겨레 기자
사진 서울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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