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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호

뮤지컬 <그날들>과 <도리안 그레이> 창작 뮤지컬, 그 가능성
1996년, 우리나라 최초 브로드웨이 진출작 <명성황후>가 초연된 해. 그 후로 어언 20년이 흘렀다. 창작 뮤지컬에는 유독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게 된다. 이제는 우리도 브로드웨이 같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자부심 때문이다. 올해 유난히 창작 뮤지컬이 무대에 많이 올랐다. 그중 우리나라 뮤지컬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두 작품이 여기 있다.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우리의 감성을 노래하는 <그날들>과 가보지 않은 어려운 길을 용감하게 택한 <도리안 그레이>다.

김광석의 음악을 충실히 살린 추리극
<그날들>, 8. 25~11. 3,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그날들>은 영원한 가객 고(故) 김광석의 명곡들을 엮어 만들어낸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뮤지컬이 연극, 영화와 대비되는 가장 뚜렷한 장르적 특성은 ‘음악’이다. 뮤지컬은 결국 사람들에게 뮤지컬 넘버로 기억되기 마련. 제목의 <그날들>을 비롯해 <먼지가 되어> <이등병의 편지> 등 누구나 제목은 몰라도 한 번쯤 들어봤을 시대의 명곡을 각색한 넘버들은 뮤지컬 <그날들>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작품의 배경은 1992년. 한중 수교 체결을 앞두고 양국의 비밀 대화에 참여했던 통역사와 청와대 경호원 무영이 사라진다. 20년 뒤 같은 날, 한중 수교 20주년 행사가 한창인 도중 대통령의 딸 하나가 경호원과 또다시 실종된다. 청와대 경호실장이자 20년 전 무영의 동기 정학이 하나를 찾아나서고 이와 함께 1992년 그날의 비밀이 밝혀지는 추리극 형식을 취하고 있다.
주크박스 뮤지컬의 경우 가수의 명곡은 강력한 무기인 동시에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애초 뮤지컬을 위해 작곡되지 않은 노래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내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날들>이 주크박스 뮤지컬로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복잡한 스토리텔링을 포기하고 대신 가사에 충실한 장면 표현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추리극의 긴장감보다는 김광석이 노래한 엇갈린 사랑과 우정을 담아내길 택했다.
일견 뻔하고 단조로울 수 있는 소재에 소소한 웃음거리와 공감 가는 대사로 변주를 준다. 경호원들의 절도 넘치는 동작을 바탕으로 한 칼군무와 그런 그들이 탈의실에서 펼치는 깜짝 상의 노출 안무에는 박수와 흐뭇한 미소가 절로 터진다. 창작극답게 계속해서 추가되는 ‘뭐시 중한디!’ 같은 유행어와 아재 개그가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한다. 정학 역에는 민영기·이건명·유준상이, 무영 역에는 오종혁·지창욱·이홍기가 캐스팅됐다. 이번이 벌써 세 번째 무대다. 믿고 보는 <그날들>은 11월 3일까지 충무아트센터에서 공연한다.

공간공감 관련 이미지1, 2 추리극의 서사에 고(故) 김광석의 명곡들을 녹아낸 주크박스 뮤지컬 <그날들>.

20세기 초 영국 유미주의의 실험적 현현
<도리안 그레이>, 9. 3~10. 29,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

공간공감 관련 이미지3, 4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을 원작으로 한 <도리안 그레이>는 볼거리, 생각할거리가 많은 화제작이다.

<그날들>에 김광석이 있다면 <도리안 그레이>에는 김준수가 있다. <도리안 그레이>는 이미 뮤지컬계에서 하나의 장르로 통하는 배우 김준수 원캐스팅에 이지나 연출과 김문정 작곡이 참여하면서 개막 전부터 큰 기대를 모았다. 영국의 귀족 청년 도리안이 영원한 젊음을 위해 자신의 초상화와 영혼을 바꾼다는 오스카 와일드의 유미주의* 소설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이 원작이다. 주크박스 뮤지컬이 이야기 부실로 무너진다면 원작이 있는 뮤지컬들은 원작을 다 담아내려다 쓰러지는 경우가 태반이다. 뮤지컬 <도리안 그레이>는 이런 위험에도 유미주의란 철학을 무대 위에 구현해내는 모험을 감행했다.
작품은 배우 김준수를 아낌없이 보여주기 위해 ‘도리안’의 아름다움을 반복해서 보여주지만 진정한 주제는 그 아래, 배질과 헨리의 대립 속에 숨어 있다. 도리안의 타락을 막으려는 화가 배질은 빅토리아 왕조의 도덕적 보수주의를 대변하고 도리안을 쾌락의 길로 이끄는 헨리는 이에 탐미주의로 맞선 당대 영국 지식인을 표상한다. 당대 영국의 분위기를 노래하는 앙상블은 기술의 발달로 인간이 하늘을 나는 시대를 맞이한 귀족들. 그들은 인간의 위대함에 감탄하며 신의 존재와 신이 대변해온 도덕과 기존 체제에 의문을 품는다. 순수했던 청년 도리안은 헨리와 시대에 설득당해 고통은 아름답지 않다 믿으며 죄책감 없는, 도덕으로부터 자유로운 신적 쾌락을 추구하다 결국 인간으로서 영혼의 타락을 맞이하고 만다.
스토리만큼이나 넘버는 음울하고 대사는 현학적이다. 이 뮤지컬의 대표 넘버라 할 수 있는 <찬란한 아름다움>부터 그렇다. “타락한 순결한 이 알 수 없는 삶이여. 미천한 고귀한 숙명 모순의 삶이여”란 어려운 단어로 가득한 가사에 단조인 불협화음의 기이한 멜로디가 붙어 무대 위를 맴돈다. 한 번에 이해되거나 뇌리에 꽂히는 넘버는 아니지만 김준수의 미성과 만나면 기묘한 넘버들의 여운은 작품이 끝나고도 귀를 감돈다.
무대는 도리안과 함께 관객들에게 끝없이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낸다. 20세기 유럽의 저택과 살롱과 같은 작품의 배경을 세련된 순백의 구조물로 구현했고 체코에서 직접 찍은 풍광 영상은 아름다운 유럽의 여름날을 무대 위로 불러온다. 2막에서의 무대 앞쪽 스크린에 배우들의 얼굴을 클로즈업해 촬영한 뮤직비디오를 틀어 배우들의 감정을 객석에 전달하는 실험적 무대 연출도 볼거리다.
<도리안 그레이>는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 작품이다. 새롭고 신선한 시도로 받아들여지는가 하면 너무나 많은 걸 담으려다 호흡을 잃었다는 평도 있다. 논쟁거리도 생각거리도 볼거리도 많은 ‘새로운’ 뮤지컬이다. 헨리 역에는 박은태가, 배질 역에는 최재웅이 캐스팅됐다. 10월 29일까지,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문화+서울

* 유미주의 미의 창조를 예술의 유일 지상의 목적으로 삼는 예술 사조. 미(美)를 진(眞) 이나 선(善)보다 높은 가치로 여기며 추구한다.

글 김연주
매일경제 기자
사진 제공 인사이트 엔터테인먼트, 씨제스컬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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