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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7월호

한강이 수상레포츠와 시민의 쉼터로 자리 잡기까지 위험한 ‘뽀-트 구락부’의 메카에서 안전한 시민의 쉼터로
서울 한강이 수상 레포츠의 메카로 자리 잡았습니다. 잠실과 여의도, 잠원, 양화, 망원, 뚝섬 등 한강 곳곳에서 수상스키와 웨이크보드, 윈드서핑, 요트 등을 즐길 수 있습니다. 한강에 처음 수상 레포츠가 도입된 시기는 1924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메모리 인 서울 관련 이미지<사진1> 1950년대 한강인도교 아래 풍경.

얼마 전 서울시 관계자는 “한강은 교통 체증과 기름값 걱정 없이 다양한 수상 레포츠를 즐길 수 있는 수상 천국”이라고 밝혔습니다. <사진2>는 서울 광진구 자양동 뚝섬한강공원에서 윈드서핑을 즐기는 시민들의 모습입니다.
한강에 처음 수상 레포츠가 도입된 시기는 1924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한강인도교(현 한강대교) 아래에 보트클럽이 개장했습니다. 그해 7월 31일자 한 일간지에 “뽀트 애호가들을 위해 환봉구락부라는 구락부가 새로 생겼는데 조선인 유일의 구락부로 그 본부를 한강인도교 아래에 두고 뽀트 운동가들의 편의를 돕는다”고 나와 있습니다.

1950년대 ‘뽀-트 구락부’의 메카 한강

메모리 인 서울 관련 이미지<사진2> 한강에서 시민들이 윈드서핑을 즐기는 모습(광진구 자양동 뚝섬한강공원).

예전에는 안전의식이 부족하고, 안전장비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서인지 보트 사고도 일어났습니다. 1937년 9월 젊은 직장인이 주말을 맞아 어머니와 부인, 아들과 함께 한강에서 배를 타다가 부인과 아들이 물에 빠져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죽은 부인이 임신 중이어서 주위를 안타깝게 했습니다. 또 1940년에는 20대 부부가 보트 전복 사고를 당해 목숨을 잃기도 했습니다.
<사진1>은 1950년대 한강인도교 아래 풍경입니다. 이곳에는 뱃놀이를 할 수 있는 보트클럽이 즐비했습니다. 당시 한강변 유원지는 이곳과 광나루교(현 광진교) 아래 두 곳뿐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보트를 ‘뽀트’라는 된소리로 표기했고, 영어 ‘클럽(club)’을 일본식 음역어인 ‘구락부(俱樂部)’로 써 ‘뽀-트 구락부’라는 간판들이 붙어 있습니다. 보트 클럽들이 조금 어수선해 보이지만 운치는 좋습니다. 다리 너머로 보이는 나지막한 산등성이도 정겹기만 합니다.
1956년 9월에는 폭우로 한강인도교 아래와 광나루교에 있던 보트 75척이 유실되는 사고도 있었습니다.
1957년 한 신문에는 한강이 ‘건전한 놀이터 못 된다’는 기획기사가 실렸습니다. 하루 평균 2만여 명이 찾는 서울시민의 휴식 공간인 한강변에 변변한 위생시설이 없어 급한 용변을 보려면 물속으로 뛰어들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또 차량 통행금지 지역에 일부 권력층이 차를 몰고 들어와 백사장에 누워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에게 먼지를 뒤집어씌우기도 한다고 썼습니다. 이 밖에 남녀의 애정 행각과 불륜의 온상이라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기사에는 특히 보트장의 문제점이 강조돼 있습니다. 15곳의 보트클럽과 60여 곳에 달하는 탈의장은 연일 성황을 이루지만 용변 시설이 없어 사람들에게 불편을 주고 있다는 겁니다. “이십여 평에 달하는 탈의장은 대지 값으로 육만 환씩 상이용사회에 지불한다. 50여 명의 의류와 소지품 등을 보관할 수 있는 이 탈의 장은 1시간에 100환씩 받고 있으며 부대 1개를 빌리자면 1시간에 100환씩을 더 내야 한다. 또 이곳에서는 남녀용 수영 빤쓰도 빌려주고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탈의장에 용변시설이 한 곳도 없다”고 쓰여 있습니다.
또 밤이 되면 보트를 뒤에 달고, 광목 포장을 덮은 유람선이 아베크족을 위한 환락의 보금자리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밤 9시경 소형 보트가 철수하면 이 유람선이 하룻밤을 별천지로 즐기려는 남녀들을 싣고 한강 상류로 올라가 그들이 원하는 장소에 닻줄을 매어놓고, 사공은 보트로 돌아가 다음 날 5시쯤 데리러 왔다고 합니다. 이 유람선은 승객들에게 담요 한 장을 주고, 평일 3000환, 휴일 5000환을 받았다네요. 이 유람선 주 고객은 20대 전후의 학생들이지만 오십 고개를 넘은 노인층도 끼어 있었고, 가끔 저명 인사도 있었다고 합니다. 50대를 노인이라고 표현한 기사 내용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합니다.
기사에서는 당시 한강을 찾는 사람을 두 부류로 나눴습니다. 낮에 오는 사람들과 밤 8시 이후에 오는 사람으로 구분했습니다. 밤 손님들은 대부분 남녀 커플로, 이들은 어두운 백사장에서 애정 행각을 벌였다고 합니다. 또 이런 손님들에게 행패를 부리는 불량배도 많았다고 하네요.

지금 한강은 안전시설과 경비 시스템이 갖춰진 시민의 쉼터

1959년에는 한강의 안전 문제에 대한 지적도 나왔습니다. 매일같이 익사자가 속출하지만 관내 경찰서에는 경비선 등 충분한 구호 장비가 없다는 겁니다. 여름이 되면 수만 명의 서울 시민이 푹푹 찌는 도심을 떠나 한강으로 모여드는 상황에서 뚝섬에는 1개의 망루에 3명의 경관만 배치돼 있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보트 클럽에서 보트 한 척을 기름값만 주고 빌려 사용했다고 합니다. 광나루에도 낡은 경찰용 모터보트 한 척밖에 없어 보트클럽에서 하루 2, 3척을 빌렸다고 하네요. 경찰들은 보트를 강변에 버려둔채 낮잠을 자기도 해 익사자에게 아무 도움이 안 됐다고 합니다. 하지만 경찰은 익사자들이 경찰의 경고를 무시하고 위험 수역으로 들어가는 게 문제라며 비난을 퍼부었답니다.
지금은 한강변 곳곳에 화장실이 설치돼 있고, 안전시설과 경비 시스템도 잘 갖춰져 있습니다. 또 길게 이어진 자전거길 등 다양한 휴식 시설이 구비돼 있습니다. 한강은 전 세계 어느 곳과 비교해도 자신 있게 최고로 꼽을 수 있는 휴식 공간입니다. 그런 한강이 있는 서울에 살고 있다는 게 참 좋습니다.문화+서울

사진 김천길
전 AP통신 기자. 1950년부터 38년 동안 서울지국 사진기자로 일하며 격동기 한국 근현대사를 생생하게 기록했다.
글 김구철
문화일보 문화부 기자. 대중문화팀장으로 영화를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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