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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호

‘스트리트뮤지엄’ ‘예술통 축제’ 만든 박동훈 핸즈BTL미디어그룹 대표 필동 인쇄골목에 예술의 싹을 틔우다
후미진 필동 인쇄골목에 3년 전부터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작고 독특한 전시 공간, 이른바 ‘스트리트뮤지엄’이 하나둘 주변에 들어서면서 ‘예술골목’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 거리를 지나는 이들 누구나 24시간 예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이곳에는 온기가 돈다. 놀랍게도 이 변화는 개인이 사비를 털어 진행하는 것이다. 지난 5월에는 예술가 120여 명이 참여한 골목축제를 기획했다. 필동 24번지 핸즈BTL미디어그룹의 박동훈 대표의 이야기다.

사람과 사람 관련 이미지

사람과 사람 관련 이미지

박동훈 대표의 명함에는 광고기획사 ‘핸즈BTL미디어그룹’ 외에 여러 로고가 함께 들어가 있다. 스트리트뮤지엄, 24번가 서재, 코쿤뮤직, 아이스큐브푸드컴퍼니 등이 그것이다. 경남 산청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서울에 와 청계고가 아래에서 폐지를 줍는 것으로 밥벌이를 시작한 그는 폐지더미에서 만화를 발견한 것을 계기로 애니메이터 일을 했고, 식당을 차리고 싶어 중국음식점 배달원도 했으며 막노동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게 다양한 직업을 거쳐 충무로로 들어와 커리어를 쌓은 분야는 광고. 눈썰미와 손재주가 좋은 그는 그곳에서 보고 듣고 익히고 일해 1992년에 핸즈BTL미디어그룹을 설립했고, 승승장구했다.
20년 만에 필동 24번지에 사옥을 마련한 그는 문득 자신이 쌓아온 것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자문하다 ‘필동’이란 답을 얻었다. 더불어 그가 거리에서 일을 익혔듯 다음의 누군가는 이 거리에서 예술을 아주 일상적으로 만나면 좋겠다는 마음에 후미진 필동 골목을 문화예술로 채워 보답하기로 했다. 3년간 충무로 일대 곳곳에 채운 8개의 스트리트뮤지엄은 모두 그가 디자인했다. 그리고 올해 5월, 예술가들과 함께 ‘필동 골목축제 예?술?통’을 시작했다.
박 대표가 현재 진행하는 일을 가늠하며 누군가는 그의 미래에 대해 ‘예술의 방향으로 뻗어나갈 것’이라고 표현했다. 적어도 새로운 판을 짜서 예술축제의 다른 가능성을 보 이고 있다는 점을 미루어보면 그가 원하는 ‘작가와 관객의 가교 역할’이 일단 성공적인 듯하다.

사람과 사람 관련 이미지1 제1회 필동 골목축제 예술통의 오프닝에서 진행된 켈리그라퍼 강병인 선생의 퍼포먼스.

광고기획사를 운영하면서 축제기획자?문화기획자로 활동하고 계시다.

어떤 면에서는 예술통 골목축제도 광고회사 운영의 연장선상에 있는 셈이다. 회사에서 프로모션 이벤트, 신제품 론칭 등을 많이 해봤고, 그런 행사들을 하면서 중요한 것이 간과되는 것을 많이 봐왔다. 예술통 축제가 열린 공간을 보면 관객이 축제를 즐기는 공간만큼 공연자가 공연을 준비하는 공간이 충분히 마련돼 있다. 출연자가 무대에서 퍼포먼스를 100% 이끌어내려면 공연 전후에 긴장을 풀고 놀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경험을 통해 그런 것이 행사에서 부족하다고 생각했기에 예술통 축제를 하면서는 그런 부분에도 중점을 뒀다. 더불어 재구매, 즉 어떻게 하면 관객이 다시 방문하게 할 것인지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사람과 사람 관련 이미지2 예술통 기간(21일)에 코쿤뮤직에서는 다양한 팀의 음악 공연이 진행됐다(사진은 이스터녹스의 공연).
3 스트리트뮤지엄 모퉁이.

예술통 축제 전에 대표님이 문화예술계에 알려진 중요한 계기는 ‘스트리트뮤지엄’이다. 스트리트뮤지엄의 개념은 무엇이고 어떻게 시작하게 된 것인가. 필동과의 인연도 각별하다고 들었는데.

개인적으로 이곳 필동은 나에게 많은 걸 가르쳐준 선생이자 학교 같은 존재다. 고향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올라 왔는데, 청계천에서 폐지 줍는 일로 시작해 배달, 행상, 막노동 등 다양한 일을 하며 충무로 인쇄골목에 들어오게 됐다. 명보극장 옆에 있던 인쇄소에서 일하다가 광고회사에 스카우트됐는데 직무가 인쇄 담당이었고, 그렇게 여기서 겪고 배운 것이 쌓여 광고회사를 차리게 되었다. 미술도 광고도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는 나에게 필동은 학교이고 선생인 셈이다. 학비를 갚듯이 이 지역에 보답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먼저 이곳에 부족한 것, 사라진 것을 찾아보기 위해 필동주민센터에 찾아갔고 1년 동안 주민자치위원으로 활동했다. 나는 필동에서 일만 하느라 몰랐는데, 역사적으로 덜 알려진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그게 문화예술적으로 어떻게 조명되도록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필동 프로젝트에서는 이곳에 필요한 것, 존재의 당위성이 분명한 것을 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시작이 스트리트뮤지엄인데, 충무로가 사진, 영화, 광고 등 시각매체와 인연이 깊은 곳이고 이들이 모두 순수예술에 젖줄을 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순수예술 콘텐츠를 이곳에 만들고 싶었는데 짧은 시간에 적은 비용으로 넓은 범위를 묶을 수 있는게 지역의 공간 공간에 씨앗 뿌리듯이 작은 뮤지엄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들이 나중에 모이고 연결되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해 스트리트뮤지엄을 만들게 되었다.

스트리트뮤지엄의 모델이 되거나 영감을 준 곳이 있나.

해외의 타운 프로젝트 사례를 많이 찾아봤는데 그중 가장 인상적인 곳이 영국의 테이트모던과 일본의 나오시마 재생 프로젝트였다. 결정적으로 참고하고자 한 곳은 화력발전소를 재생해 만든 테이트모던이다. 나오시마는 환경적인 요소가 컸고 공공 자금이 꽤 많이 투입돼 만들어졌다. 두 번 가봤는데 갈 때마다 박물관에 간 관광객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반면 테이트모던에 갔을 때엔 관광객이 아니라 내가 이곳에 기여하고 참여해야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모두에게 열려 있고 유희적이다. 그곳에 가면 꼬마들이 슬라이딩하면서 미술관에 들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공간에는 빈 종이와 펜이 놓여 있는데 아이들이 작품 앞에서 자유롭게 그림을 그린다. 그런 풍경을 보면서 시스템의 관리자들이나 아이들(관람객)이 모두 예술에 열려 있는 점이 퍽 인상 깊었다.
미술이 일반인과 만나려면 서로 문턱을 낮춰야 한다고본다. 365일 내내 작품을 볼 수 있되 미술관의 기능을 온전히 가진 곳, 규모가 작아도 온도?습도 조절과 보안, 보험 등 작품을 위해 필요한 것들이 잘 갖춰 있어 제 기능을 하는 곳을 만들고 싶었다.

공적 지원을 전혀 받지 않고 사재를 털어 이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는 게 놀랍다.

처음에는 내가 필동에서 얻은 것에 대한 빚을 갚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일이 점점 커졌다(웃음). 공공 영역에서도 이 사업에 관심을 가졌고 주변에서도 지원을 받으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그런 도움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고.
이곳 뮤지엄들은 좋은 자재를 써서 비용이 많이 들거나 공사에 1년 6개월이 걸리는 등 내 마음대로 짓고 있다. 공기관의 지원을 받았다면 기금 신청서와 보고서를 쓰는 데 시간을 많이 할애해야 했을 것이다. 나는 스스로 ‘필동의 머슴’이라고 칭하곤 하는데 기관의 지원을 받아 페이퍼워크에 많은 시간을 소모해야 했다면 다른 의미로 머슴이 된 느낌을 받았을 것 같다. 프로젝트를 온전히 완성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추가로 건물을 지어갔고, 적어도 내가 여기 있는 한 지속적으로 이곳을 키워가려고 한다(현재 스트리트뮤지엄은 8개가 완성됐으며 앞으로 24개까지 만드는 것이 목표다). 3년은 공간을 마련하고 그 후 2년은 콘텐츠를 채워가야 어느 정도 대중이 인지할 수 있고 이곳이 자발적으로 운영되는 시스템을 갖출 수 있으리라고 본다. 그래서 최근에 하는 작업들은 콘텐츠나 사람을 채우는 것이다.

여러 예술가와 네트워크를 확장하고 있고 그게 올해 시작한 예술통 골목축제의 원동력이 됐다고도 볼 수 있다. 이렇게 예술가들과 인연을 맺어온 비결은 무엇일까.

나는 순수예술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애정은 남달랐다. 회사 직원들에게도 순수예술에서 출발하는 것이 많으니 관심을 놓지 말라고 한다. 필동 프로젝트를 하면서 파인아트가 이곳에 들어와야 한다는 생각을 한 후로 예술가와 소통할 방법을 찾았다. 미술 쪽에서 우리에게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했는데 갤러리에서 전시 오프닝이 있을 때 케이터링 서비스를 이용하더라. 우리 회사에서 음식 관련 광고를 많이 하고 건물 지하에 쿠킹 스튜디오와 케이터링 서비스를 운영하던 터라, 마침 아는 분이 성북동의 한 갤러리에 이야기를 전해주셨고 그곳의 행사에 케이터링 서비스를 재료비만 받고 제공했다. 이를 계기로 갤러리에 초대받아 작가들을 비롯한 미술 관련 사람들을 만나며 미술이 무엇인지 이야기도 듣고 친해졌다. 작가들의 전시에 초대받는 일도 늘었고, 내가 가진 자산을 나누면서 순수예술에 지극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공통분모 삼아 다양한 사람과 만나게 됐다. 작가들이 종종 ‘뭘 하고 싶으냐’고 물어보는데, 나는 작품을 사고파는 역할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작가들의 작품이 대중과 만나는 데 가교 구실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해왔다.

사람과 사람 관련 이미지4 예술통 축제를 즐기기 위해 필동 24번지 골목을 찾은 관객들. 뒤로 보이는 미디어파사드는 한성필 작가의 작품이다.

예술통 골목축제는 동적인 예술 형태다. 거의 모든 장르의 예술가들이 모인다. 정적인 형태의 스트리트뮤지엄에서 왁자지껄한 축제로 활동을 이어가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예를 하나 들면, 전주소리예술축제에 간 적이 있는데 개별 콘텐츠는 너무 좋은 반면 음악 외의 다른 장르에는 신경을 쓰지 않더라. 공연장에서 음악을 흠뻑 즐기고 나왔을 때 전주의 음식을 즐길 수 있도록 갖추어놓으면 좋을 것 같다는, 즉 음악에서 느낀 감흥을 이어갈 수 있도록 다른 여러 장르와 협업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계기로 만든 것이 예술통 골목축제다.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을 한데 모아보자, 그래서 협업해보자, 그렇게 예술가들을 한 통에 담으면 다른 문화가 만들어지고 소통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공연 공간인 코쿤뮤직을 만들기 전에 실험적인 무대를 기획한 적이 있다. 재즈 뮤지션 정란과 개념미술 작가인 박영훈, 그리고 벨기에에서 분자요리를 하던 조계형 셰프와 함께 ‘우리가 한 번 프로젝트 공연을 해보자’고 했다. 그 세 장르가 만나면 색다른 무대가 나올 것 같았다. 아트센터 나비의 노소영 관장과 상의해서 타작마당(통섭인재양성소)에서 공연하기로 하고 사람을 모았다. 음악 장르는 크로스오버였는데 그에 맞춰서 박영훈 작가가 무대 디자인을 했다. 바다를 콘셉트로 꾸며 어부들을 유혹하는 세이렌의 음악이 나오면 무대에서 LED 조명을 이용해 천장에 물이 일렁이게 보일 수 있도록 효과를 주고, 스모그를 뿜으면 요리가 등장하는 식. 이런 협업에 대해 함께한 사람들이 너무 좋다고 하더라.
이것이 예술통 축제의 전조가 됐다고도 볼 수 있다. 축제의 방향성은 ‘장르 간 협업’이 되었고. 그것이 작가들을 중심으로 자발적으로 시작된다면 더 좋을 것 같다. 축제가 만들어졌을 때 작가들이 어떻게 다음을 이어가도록 고민하느냐가 중요하다. 예술통을 계기로 다양한 콘텐츠의 협업이 이루어지는 게 우리가 원하는 것이다.

‘제1회 필동 골목축제: 예술통’은 5월 19~21일까지 3일간 진행됐다. ‘예(藝)와 술(術)이 통하였느냐’, 즉 이름의 뜻을 그대로 옮긴 슬로건 아래 미술, 음악, 문학, 음식이 다채롭게 조화를 이루는 자리였다. 앞으로 예술통은 1년에 네 번 본축제를 개최하면서 그 중간에 (한 달에 한 번 정도) 작은 프로그램을 열어 지속성을 가질 계획이다. 먼저 기획 중인 프로그램은 골목영화제 ‘六甲(육갑)하고 자빠Cine(씨네)’. 이렇게 한 장르를 모티프 삼은 작은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열고, 3개월에 한 번 여는 본축제에서 이들 장르가 협업해 예술적 시너지를 일으키는 큰 장을 선보이고자 한다. 예술통 축제에서는 아티스트가 자발적으로 참여한다는 점 역시 중요하다. 아티스트도 즐기고 관객 역시 부담 없이 예술을 만나는 장으로, 이는 문화예술 판에서 골목축제의 좋은 모델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박동훈 대표는 이 모든 활동이 궁극적으로 타운의 발전을 향한다는 점을 잊지 않는다.

사실 성공적인 축제의 공통점으로, 마니아가 멀리서부터 찾아올 정도로 특색이 분명하고 특정 범위에 집중된 주제여야 한다는 점을 꼽곤 한다. ‘모든 게 다 있는’ 백화점식 구성이 아니라. 예술통 골목축제에서 문화예술의 다양한 장르가 만나 협업하고 시너지를 내는 것도 좋지만 결국 그게 어떤 특색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축제를 보는 관점은 모두 다르겠지만 우리는 축제가 이 지역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중요하게 의식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곳을 언제든 방문해도 축제에 오는 것처럼 느낄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고 싶다. 먼저 시도한 것은 예술통 축제 후에 스탬프투어를 기획해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맥주와 와인을 무료로 제공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축제가 이어지기를 바랐다. 작가들께도 이곳에 설치한 작품들을 축제가 끝나면 다시 가져가기보다는 이곳에 두고 가시길 부탁드린다. 축제가 끝나도 관객이 작품을 볼 수 있는, 이 타운 전체가 미술관이 되는 것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축제를 3개월에 한 번씩 이어나가면 운영에 노하우가 생기면서 축제를 치르는 비용도 힘도 점점 덜 들게 될 것이다. 그런데 시에서 축제를 허가해줄 때 ‘너무 자주 하는 것 아니냐’고 하시더라. 나는 지속가능한 것을 원한다. 그게 지역(필동)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도 맞다고 본다. 계절마다 한 번, 나중에는 한 달에 한 번씩 개최하고 1년 내내 축제가 열리도록 하고 싶다.

최근에는 축제 운영 및 후원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재단법인 멍석’을 설립하셨다.

재단법인 설립에는 몇 가지 목적이 있는데, 축제에 후원하길 원하는 사람들이 있어도 이들이 어디에 어떻게 후원해야 할지 주체가 없던 것이다. 예술통 골목축제를 하며 ‘예술통축제조직위원회’를 만들었지만 임시 조직일 뿐이어서, 후원과 관련한 업무를 운영할 시스템이 필요했다. 서울시나 중구청에서 행정적인 지원을 받게 될 때도 필요할 시스템이기 때문에 재단을 만들게 됐다.

대표님의 현재보다 미래가 사실 더 궁금하다. 어떤 변화를 몰고 올 수 있을지, 대표님의 꿈과 비전에 대해 얘기해달라.

실현 가능한 아이디어를 현실로 계속 만들어내는 것이 꿈이다. ‘세상에 할 수 없는 일은 없다. 하지 않을 뿐이다’라는 말을 하곤 한다. 예전에는 소통하고 경험할 수 있는 경로가 한정적이었는데 지금은 좋아하는 것을 경험할 수 있는 매체가 다양하게 열려 있으니 소통을 꾸준히 하면서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
내가 어릴 때 스트리트뮤지엄처럼 쉽게 문화예술을 경험할 기회가 있었다면 지금 어떤 일을 하게 되었을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지금 누군가가 그런 경험을 자연스럽게 하고 나중에 창작자가 됐을 때 ‘어떻게 작가가 되었냐’는 질문에 ‘우리 집 앞에 스트리트뮤지엄이 있었어요’라고 대답하는걸 들을 수 있으면 정말 좋을 것 같다. 아이들 돌잔치에서 돌잡이하듯이 그들이 창조적인 것을 선택하고 경험할 수 있도록 손이 닿는 곳에 문화예술을 씨앗 뿌리듯이 뿌려놓으면 좋겠다. 그렇게 된다면 지금 기성세대가 소통하는 방식과는 또 다르게, 다음 세대가 자발적으로 소통하는 계기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문화+서울

진행 김영호
서울문화재단 경영기획본부장
정리 안현미
서울문화재단 홍보팀 차장
이아림
축제 사진 제공 핸즈BTL미디어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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