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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호

일상을 벗고 예술로 씻는 행화탕 예술로 목욕합니다!
재개발로 헐릴 예정인 시한부 건물. 기존의 유휴 시설을 활용한 복합 문화 공간들과는 무언가 다르다. 나중에 자본에 의해 쫓겨날 것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떠날 것을 알고 시작하는 행화탕 프로젝트 얘기다.

공간, 공감 관련 이미지1 행화탕 개관 전시작품 중 ‘예술로 목욕하는 공간’을 표현한 이원형 작가의 <몸의 정원>.

왕년엔 최고(最古)의 목욕탕

행화탕은 아현동 재개발 지구의 신축 브랜드 아파트와 오피스텔에 둘러싸여 있다. 옆집 한옥과는 담 없이 벽을 공유한다. 이질적인 건물들 사이에 서 있는데, 그 모습이 어색하지 않다. 데칼코마니 같은 두 개의 출입문 중 한 곳으로 들어가 보니, 목욕탕이던 시절에는 서로 한 번도 보지 못했을 남탕과 여탕이 벽 없이 하나가 되어 있다. 아쉽게도 온탕과 냉탕은 없다. 목욕 시설은 이미 정리된 상태로 오랫동안 비어 있었기 때문이다. 내부는 아직 음산하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한쪽 벽이 허물어져 있고 보일러실로 이어지는 구멍도 그대로 뚫려 있다. 목욕탕만 있는 게 아니라 뒤편에는 2층 양옥이 숨어 있다. 엄밀히 말하면 지하까지 3층이다. 여기에 마당, 창고, 기름저장실까지 합치면 그 규모가 엄청나다. 일과 삶의 공간이 분리되지 않은 일종의 상가주택이다. 양옥의 1층은 공동작업실로 사용하고 2층의 방3개는 입주를 받았다.
행화탕은 원래 1960년대 초 문을 연,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목욕탕이었다. 파란 타일이 붙은 타원형의 욕조는 전형적인 근대식 목욕탕 구조였다. 50여 년간 아현동 주민들의 지친 몸과 마음을 씻겨주다가 2007년경 문을 닫았다. 주택에 살고 있던 주인 할아버지마저 돌아가시고 난 후 집도 방치되었다. 오래전부터 재개발에 묶여 있어 언제 헐릴지 모르는 상태라 보수를 할 수도 다시 지을 수도 없었다.

행화탕의 마지막 손님

공간, 공감 관련 이미지2 행화탕 전경. 목욕탕 굴뚝은 그대로이고 노란 벽에 이름이 걸려 있던 흔적도 역력하다.
3 행화탕 개관 공연, 상상발전소의 <수중인간>.

쓸쓸하게 버려져 있던 행화탕을 마지막 순간까지 돌보기로 결심한 이는 ‘축제행성’의 공동대표 서상혁과 주왕택이다. 행화탕은 두 사람이 의기투합해서 만든 ‘축제행성’의 첫 번째 프로젝트다. 축제도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기획을 해온 서상혁은 후즈쌀롱의 대표이며, 주왕택은 서울댄스프로젝트 기술감독으로 첫 회부터 참여해온 테크니컬 슈퍼바이저다. 서로 알고 지낸 지는 햇수로 5년. 사실 두 사람은 이 동네 주민이 아니다. 과거에 행화탕을 이용해본 적도 없다. 정말 아무런 연고가 없단다. 재개발 지역을 중심으로 사무실을 구하다가 우연히 행화탕을 발견했다. 일단 질러보기로 하고 올해 2월 22일 덜컥 임대차 계약부터 했다. “행화탕은 시한부 판정을 받은 거라고 생각해요. 아무도 찾지 않아 흉물스럽게 고독사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가는 길을 아름답게 예술로 상조한다는 느낌으로 시작했어요.”(서상혁)
행화탕 프로젝트를 같이 이끌어나갈 공동기획단 61311(육일삼일일)의 이름은 지번(아현동 613-11)에서 따왔다. 서상혁 대표는 하고 싶은 걸 하게끔 하는 관계에 관심을 두고, 공간을 매개로 여러 장르의 사람들과 작업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10명 모두 30대이다. 출퇴근하는 직장인도 있고, 절반은 프리랜서다. 1년에 1회 2주 동안 자기가 하고 싶은 프로젝트를 행화탕에서 진행할 수 있다. 활동 기간은 건물이 재개발될 때까지. 자칭 목욕주의자였다는 서상혁 대표는 샤워주의자에 대응하는 목욕주의자를 위한 축제, 급하게 하는 샤워가 아니라 스스로 노동을 하면서 온전히 자신을 벗겨내는 목욕재계 프로젝트를 구상 중이다. “샤워는 혼자 할 수 있지만 등은 혼자 밀지 못해요. 누군가에게 말을 걸어야 하죠. 등을 맡긴다는 의미도 있고요. 커뮤니티가 거기에서 생겨날 수 있어요.”
공간 보수는 61311 구성원인 이원형 건축가(워니스튜디오)를 중심으로 직접 진행했다. 목욕탕 천장을 걷어내어 숨어 있던 서까래를 드러냈다. 건물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라 원래의 느낌을 최대한 살리려고 했다. 행사의 성격에 따라 출입구가 달라지고, 거기에 따라 수많은 동선이 나올 수 있다. 본업이 있는 기획단원들은 틈날 때마다 와서 공사와 청소를 거들었다. 공간이 워낙 넓다 보니 정리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처음부터 완전히 다 갖추고 시작하기보다는 일단 개관부터 하고 차차 만들어나 가기로 했다.
2016년 5월 15일, 폭우 속에 치른 개관식에는 200여 명이 다녀갔다. 정돈된 10곳의 공간을 활용해 퍼포먼스 4개, 전시 3개 작품을 선보였다. 6월 29일부터는 서울문화재단의 ‘복작복작 예술로(路)’사업의 지원을 받아 ‘예술로 목욕합시다’를 시작한다. 61311 권효진 기획자와 후즈쌀롱이 같이 신청했다. 잘 먹기,그리기, 입히기와 같은 의식주를 기반으로 하고 예술을 전면에 드러내지 않는다. 행화탕을 아현동 주민에게 다시 돌려주는 작업이다.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겼던 행화탕에 다시 주민들이 찾아와 명절 대목처럼 복작복작해질 조짐이다.

행화탕과 아름답게 이별하는 방법

철거를 앞둔 건물에 들어가 화사한 꽃을 심고 잠시나마 사람의 기운을 불어넣어주고 마지막까지 함께하는 일, 재개발로 인해 점점 사라지는 서울의 오래된 동네와 이별하는 가장 좋은 방법 아닐까. 2년 후 행화탕이 사라져도 아쉬울지언정 마음은 덜 아프게 말이다. “이 건물은 노년의 사람이고 언젠가는 죽을 거예요. 여러 사람이 때를 밀던 목욕탕 영업은 종료되었지만 예술로 다른 목욕을 하는 것으로 기억되어서 각자의 USB에 담겨지고 이 건물이 사라지더라도 함께했던 사람들이 남았으면 좋겠어요.” (서상혁)문화+서울

글 전민정
객원 편집위원
사진 제공 축제행성, 박창현 사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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