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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호

책 <고맙습니다>와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 죽음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죽음 앞에서 초연할 수 있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우리는 모두 죽는다는 사실을 알지만, 할 수 있는 한 끝까지 외면하고픈 게 죽음일 것이다. 신경정신학자 올리버 색스와 소설가 줄리언 반스가 각각 죽음에 대해 쓴 에세이가 나왔다. 작가들 모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감추지 않지만 그것이 삶의 한 과정이라는 것 역시 부정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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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칠 수도 없고, 받아들이기도 어렵다. 너의 죽음, 그의 죽음, 그들의 죽음도 말하기 괴로운데, ‘나’의 죽음이라니… 더더욱 생각하기 고통스럽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죽음. 그러나 각자에게는 저마다의 죽음.” 카뮈의 말이다. 우리는 모두가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알지만, 나에게는 그런 사건이 닥치지 않을 것처럼 생을 살아간다. 계속 살아가라는 유전자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한 종(種)의 본능일 테다. 그러므로 이 낡고 익숙한 동사가 ‘나’를 주어로 할 때, 우리는 의식의 향방을 기필코 다른 쪽으로 돌려버린다.
올리버 색스의 <고맙습니다>(알마 발행)와 줄리언 반스의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다산책방 발행)은 우아하면서도 우직한 태도로 자신의 죽음 앞에서 고개를 돌리지 않는 에세이다. 전자가 시한부 삶을 선고받고 생애 마지막 쓴 뭉클하고 품격 있는 산문이라면, 후자는 나이 예순을 넘기며 자연스레 죽음의 임박을 체감하게 된 지식인의 지적이고도 시니컬한 ‘죽음론’이다. ‘이 삶은 좋았다’로 요약할 수 있는 올리버 색스의 산문이 따스하고도 인간적인 어조로 건네는 다정한 감사의 작별인 사라면, 줄리언 반스의 <웃으면서 죽음을…>은 음악과 미술과 문학의 역사를 작가 자신의 가족사와 종횡으로 가로지르며 적나라한 죽음의 순간과 유형들을 독자 앞에 들이대는 저돌적인 ‘죽음학’ 강의다. 스타일은 다르지만, 인간 존재라는 갱도의 저 깊은 곳까지 탐침을 밀어 넣는 담대하고도 강인한 작가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삶에 감사한다
<고맙습니다>, 올리버 색스 지음·김명남 옮김, 알마

‘의학계의 계관시인’으로 불려온’ 올리버 색스는 10년 전 진단받은 희귀병 안구흑색종이 간으로 전이돼 2015년 8월 별세했다. 생의 마지막 2년간 쓴 네 편의 에세이를 모은 책 <고맙습니다>는, 80세 생일을 맞는 설렘과 기대를 담은 첫 에세이 ‘수은’을 제외하면, 살아갈 수 있는 날이 6개월밖에 안 될 것 같다는 의사들의 말을 들은 후 쓴 글이다. <나는 침대에서 내 다리를 주웠다> <깨어남> 등의 책을 통해 인간과 의학을 한데 엮은 휴먼 드라마를 선보여온 그는 감사의 염으로 여든 해 남짓의 생을 회고한다.
마지막 눈을 감는 날 감사의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고 해서, 그 삶이 쉽고 안락한 것이었다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열여덟 살의 색스는 아들이 게이인 것을 알게 된 어머니로부터 “혐오스러운 것. 너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어”라는 잔인한 말을 들어야 했고, 의사 자격을 획득한 27세에는 고향 영국을 훌쩍 떠나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고독한 신대륙에서 삶의 토대를 새로이 구축해야했다. 신대륙에서는 암페타민 중독으로 죽었다 깨어났으며, 40대에는 등산 중 실족으로 수술과 재활치료를 받는 ‘중환자’의 처지가 되었다.
“두렵지 않은 척하지는 않겠다”고 고백하면서도 “무엇보다 강하게 느끼는 감정은 고마움”이라고 말할 때, 이 작가가 말하는 감사는 반경이 넓다. 사랑을 주고받았다, 남에게 많은 것을 받았고, 조금쯤은 돌려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것이 없었더라도 그는 감사의 말로 영원한 무의 세계로 떠나는 소회를 밝혔을 것이다. 생각하는 동물로서 사유하고, 사회적 동물답게 세계와 교유해온 충일한 삶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아름다운 행성에서 지각 있는 존재이자 생각하는 동물로 살았다. 그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특권이자 모험이었다.” 인식과 사유에 바쳐진 삶. 죽음은 삶의 결산이지, 복권 같은 것이 아니다.

믿지 않는 신을 그리워함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
줄리언 반스 지음·최세희 옮김, 다산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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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과 위트가 번득이는 글쓰기로 영국적 스타일의 전범을 보여온 소설가 줄리언 반스(70)는 기독교 문명을 살아가는 무신론자가 죽음의 공포와 맞닥뜨렸을 때의 고통을 정면 돌파하고자 한다. 반스 가문의 족보와 예술사를 탈탈 털어 온갖 죽음의 유형을 집대성하는 그의 모습은 다소 신경증적으로 보일 정도지만, 누구도 죽음의 순간 의연하지는 못했다는 진실의 근거들이 축적될수록 독자는 절로 작가의 편이 된다. “나는 인간이 죽은 다양한 방식을 일람표로 만들 것”이라고 한 몽테뉴의 말을 실행에 옮기 듯 반스는, 에밀 졸라는 막힌 굴뚝으로 인한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죽었고, 괴테는 단 하루 동안의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며 무시무시한 공포와 불안에 사로잡힌 채 숨을 거뒀으며, 라벨은 자신의 곡을 듣고 감탄하며 작곡가 이름을 알려달라고 할 정도의 기억상실 상태로 5년에 걸쳐 서서히 죽어갔음을 상세히 열거한다. 수많은 죽음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행해지지만, 사무치는 공포속에 깜깜한 무(無) 속으로 소멸해버린다는 본질에서는 모두 동일하다. 거기에는 동물 종의 차이조차 없다.
신을 믿지 않고 죽음도 두려워하는 부류-그러니까 대부분의 사람들-를 대표해 고금의 수많은 죽음을 주유하면서도, 작가는 생이 어떠해야 한다는 성급한 결론은 도출하지 않는다. 죽음에 관해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삶의 향후 서사가 자동적으로 재구성되는 것이 이 주제가 가진 힘이기 때문이다.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신이 그립다.” 이 문장으로 시작한 책은 그러므로 무신론자의 신을 재정의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나날의 삶 속에서, 인간사의 아웅다웅 속에서, 저마다 자신의 신성(神聖)을 발견하고 실천하는 것. 믿지 않는 신을 그리워함은 바로 그런 것 아닐까. ‘나도 여기 있었다’를 대대손손 입증하려는 몸부림 대신 지금 여기의 삶을 되돌아보는 것. 죽음이 생에 부여하는 최후의 사명이 바로 이것일 터이다.문화+서울

글 박선영
한국일보 문화부 기자
사진 제공 알마, 다산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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