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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호

장정일 작가가 이야기하는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전쟁: 아직껏 의미를 붙이지 못한 박근형의 무의식
박근형 작·연출의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에는 2015년 한국, 1945년 일본 오키나와, 2004년 이라크 팔루자, 2010년 한국 서해 백령도 등 서로 다른 시대와 공간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역사적 사건들이 하나의 목소리로 담긴다. 그동안 현시대 소시민들의 일상과 아픔을 주로 담아온 박근형의 작품과 이번 작품은 결이 달라진 걸까? 장정일 작가는 박근형의 무의식에 있는 ‘퇴적된 전쟁의 기억’을 끄집어내며 이야기를 펼친다. 짧은 글로 다하지 못한 장정일 작가의 이야기는 공연 기간 주말에 열리는 대담 프로그램인 ‘장정일의 연극읽기’(3. 12~26, 토·일 공연 종료 후 오후 5시, 남산예술센터)에서 들어볼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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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10일, 남산예술센터에서 막이 오르는 박근형의 신작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는 전쟁이 주제다. 삽화적 구성이 갖는 장점은 뭐니뭐니 해도 시간과 공간의 자유로운 운용으로, 작가는 네 편의 에피소드가 교직되고 있는 이 작품에서 삽화적구성이 누릴 수 있는 자유를 한껏 구가하고 있다. 그 덕분에 관객은 대한민국 육군 탈영병의 애환(2015), 일본제국의 가미카제 자살특공대원이 된 조선인 병사의 사연(1945), 이라크 팔루자에서 이라크 무장단체에 납치된 한국인 미군 물품 납품 업체 사원의 비극(2004), 백령도 해상에서 침몰한 천안함 생존자의 증언(2010)을 한자리에서 듣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박근형 작품을 꽤 읽거나 본 사람들에게 그가 이번에 선택한 주제는 굉장히 의외인 듯 여겨진다.

작가의 지문, 작가의 무의식

박근형의 신작이 나올 때마다 번번이 평을 남긴 연극평론가 안치운은 <연극과 기억>(을유문화사, 2007)에서 “그가 쓰고 연출한 일련의 작품들은 모두 가족사에 관한 아픈 이야기이다.”(32쪽), “그가 연출한 거의 모든 작품들은 이 시대 가족혹은 집의 아픔을 말하고 있다.”(36쪽)고 썼다. <박근형 희곡집 1>(연극과인간, 2007)에 실린 다섯 편의 작품과 똑같이 다섯 편의 작품을 묶은 <너무 놀라지 마라>(애플리즘, 2009)를 읽고서, 두어 번이나 글을 발표한 나의 독해도 안치운의것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작가들은 모두 지문(指紋)을 가지고 있다. 나는 ‘작가의 지문’이라는 용어를 작가의 개성이나 특징을 훨씬 뛰어넘는 것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이 용어는 작가의 정체성과도 많이 다르다. 내가 생각하는 ‘작가의 지문’에 가장 근접한 것은 ‘작가의 무의식’이다. 흔히 무의식은 ‘심층(속)’에 ‘숨어 있는것’이라고 잘못 알려져 있으나 무의식은 심층이 아닌 ‘표면(겉)’이며, 숨어 있지 않고 온전히 ‘드러나 있는 것’이다. 이처럼 겉으로 모두 드러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의식이 채 ‘의식’이 되지 못하고 유령처럼 우리 주변을 부유하는 까닭은, 그것이 ‘다 드러나 있지만, 아직 의미를 붙이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박근형의 작품에 나오는 가족과 집은 단순히 ‘아픈 이야기’ 정도가 아니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가족은 심심찮게중혼(重婚)(<대대손손> <삽 아니면 도끼> <너무 놀라지 마라> <경숙이, 경숙아버지>)과 근친상간(<쥐> <푸른 별 이야기> <너무 놀라지 마라>)으로 얼룩져 있다. 이런 대죄(大罪)에 비하면,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니나돌이(지위와 나이가 다른 사람이 서로 말을 놓거나, 맞담배질을 하는 것)’가 벌어지는 <청춘예찬>은 차라리 천진하게 느껴질 정도다. 일반적인 도덕규범이나 성규범의 파괴를 보여주는 박근형의 지문(중혼?근친상간)에 꼭 알맞은 이름은 ‘콩가루 집안 서사(이야기)’다.

박근형의 서사-콩가루 집안 이야기

앞서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가 박근형의 그동안 작품에 비추어 뜻밖의 주제라고 했지만, 두 희곡집에 실린 열 편의 작품을 다시 읽어보면 생각이 크게 달라진다. 박근형의 작품에는 전쟁이 중요한 배경이 되거나, 딱히 중요 배경은 아니더라도 군대(군인)나 6·25전쟁·베트남전쟁 등의 기억이 끊이지 않고 언급되어왔다. 그 가운데 전쟁이 중요한 배경 노릇을 하는 작품을 꼽으라면 단연 <경숙이, 경숙아버지>를 들어야겠지만, 이번에 박근형의 작품을 다시 읽으며 새롭게 발견한 것이 첫 번째 희곡집에 나오는 <쥐>다.
<쥐>의 무대는 황야에 세워진 사설 라디오 방송국이며, 작가의 무대 지시문에 따르면 그 방송국 “벽에는 멈춰 있는 시계와 2000년을 표시한 달력이 걸려 있다.” 그리고 막이 오르면 극장 가득히, 슬라브주의자였던 러시아 작곡가 차이콥스키가 나폴레옹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한 <1812년 서곡>이 울려 퍼진다. 어머니·큰아들·작은아들·막내딸·며느리로 이루어진 다섯 명의 가족은 황야에서 길 잃은 사람을 유인해 식량으로 삼는다. 오래전에 읽었을 때, 나는 “1812년 겨울/ 황량한 벌판에 쓰러진 수많은 시체들 사이로 지금 우리의 이웃, 다 아시죠?/ 쥐들이 있었습니다.”라는 지시문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곧바로 이 작품을 약육강식과 무한경쟁이 벌어지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동화로만 읽었다. 이처참한 풍경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알레고리로 읽어도 손색없지만, 박근형 작품에서 그동안 의미를 부여받지 못했던 ‘전쟁’ 혹은 미발견된 ‘전후 풍경’으로 읽으면 새로운 게 보인다.
6·25전쟁이 중요 모티프가 된 <경숙이, 경숙아버지>에서 대포 소리에 놀라 혼자 도망을 갔던 아버지는 전쟁이 끝난 후,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만났다는 꺽꺽이 형님을 데리고 3년 만에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무슨 밀약이 있었는지, 꺽꺽이 형님에게 집문서를 주고 사라진다. 이렇게 해서 꺽꺽이는 경숙의 ‘아재’로 불리다가, 차츰 ‘아배’로 승격(?)되는데, 그사이에 어매는 꺽꺽이의 아이를 가졌다. 이후, 집을 떠난 경숙이 아버지가 새 아내를 얻어 돌아오고, 이 두 부부는 한 지붕 아래 이상한 동거를 막 시작하려고 한다.
이런 ‘콩가루 서사’는 <삽 아니면 도끼>에서 반복된다. 영화감독을 사칭하면서 친구 여동생의 몸과 마음을 빼앗은 맨발이 뒤늦게 그를 찾아온 아내와 아들을 따라나서려고 하자, 순정을 빼앗긴 친구의 여동생은 마치 체호프의 어느 여주인공처럼, 감독과 그의 본부인에게 “감독님! 언니! 감독님은 언니를 버린 게 아니라 예술을 위해 언니 만나기를 참고계셨던 거 같아요. 하시고 싶은 그걸 할 때까지 스스로를 누르고……. 전 감독님이 불쌍해요. 그날이 올 때까지 여기서 우리 모두 조금씩 참고 살아요.”라고 애원한다. 그러자 맨발의 아내는 곧바로 “동생!”이라며 즉답하지 않았는가? 이러구러 세월은 흘러, 이 화목하고 성스러운 ‘의사(疑似) 가족’이 사는 것을 보라!

여동생
(아내의 방을 가리키며) 감독님 날이 찬데 들어가 주무시지 않고?
아내
아니에요, 동생. 저 여보 내일 큰일도 있고 한데 오늘은 동생방에서 주무세요. […]
맨발
오늘은 우리 함께 잡시다.

박근형의 작품에 퇴적된 전쟁의 기억

이와 같은 ‘콩가루 서사’는 박근형이 체험한 전쟁 혹은 전후 풍경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성립되지 않는다. 물론 1963년생인 작가가 전쟁을 체험했을 리는 없다. 하지만 월남한 실향민 사이에서 태어난 작가의 이력은, 그가 부모로부터 전쟁의 트라우마를 물려받거나 가까이서 참혹한 역사를 간접 경험했을 가능성을 높여준다.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인간 실존이나 신학적 목마름으로만 해석한 탓에, 그 작품에 가득한 전후의 이미지를 음미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세상 놈들은 다 유혈이 낭자한 원숭이들이야.”(<고도를 기다리며>, <오, 행복한 날들>, 세계사, 29쪽)를 비롯해, 88쪽에 나오는 “이 시체들은 모두 어디서 온 걸까?”라는 블라디미르의 질문과 “이 해골들 말이지.”라는 에스트라곤의 반문, 또 누군가가 바꿔치기해놓은 에스트라곤의 장화가 “온통 피범벅”(93쪽)이었던 사실과, “우리는 포위당했군!”(101쪽)이라는 작중의 군사 용어는 베케트가 이 작품을 쓰기 직전에 경험한 제2차세계대전의 트라우마를 반영한다. 베케트는 작중에 “고도씨는 뭘 하고 있느냐?”라는 블라디미르의 질문에 “아무것도안 하십니다.”(123쪽)라는 소년의 대답을 천연덕스레 써놓았는데, 이 대사에는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참상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희망이 되지 못한 신에 대한 회의와 비난이 섞여 있다.
박근형의 작품에는 노아의 홍수를 연상시키는 그치지않는 장마가 설정되어 있거나 죽음의 동의어인 비가 자주 내리며(<쥐> <푸른 별 이야기> <경숙이, 경숙아버지> <백무동에서>), 그의 작품에 나오는 집은 물이 새거나 환풍기가 고장 나 있는 등 반드시 어딘가 탈이 나 있다(<쥐> <푸른 별 이야기> <너무 놀라지 마라>). 또 그의 등장인물들은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하는 ‘장소(場所) 상실’을 겪고 있으며, 그가 애용하는 다방?노래방?숙박업소 등은 대표적인 ‘비(非)장소’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모든 증거는 박근형의 작품에 퇴적된 전쟁의 기억을 드러낸다. 비로소 우리는 그의 지문이 되어버린 중혼과 근친상간 등의 일탈된 도덕규범과 성규범이 그의 의식을 투과한 뒤 변용된 6?25전쟁과 그 이후의 전후풍경이라는 흥미로운 추측을 할 수 있게 된다.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의 첫 번째 에피소드에 나오는 탈영병은 술집에서 헌병을 기다리면서 술집 여자에게 “우린모두 전쟁 중이고, 우린 모두 군인”이라고 말한다. 두 번째 에피소드의 조선인 가미카제 자살특공대원은 자신의 목숨을 천황에게 바침으로써 더는 차별받지 않는 “영원한 일본인”이 되고자 한다. 세 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이라크로 돈을 벌러 떠나는 전날, 애인에게 “이 오빤 절대 비 안 맞아!”라고 말한다. 네 번째 에피소드의 생존 수병 한 명은 “그날 무슨일이 있었는지 다 보았습니다. 그날 나는 죽은 자들의 곁에서 다 보았습니다.”라고 말한다. 전쟁과 정면으로 승부를 내는 박근형의 신작을 어서 보고 싶다. 문화+서울

글 장정일
1962년 경북달성에서 출생해 그곳의 성서중학교를 졸업했다. 1984년 무크지 <언어의세계>에 처음 시를 발표한 이래로 다양한 장르의 글을 쓰고 책을냈다.
그림 손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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