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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호

다른 감수성을 깨우는 도시의 빈틈, ‘문화공간 숨도’ 잃어버린 서식지가 여기에
대흥역 1번출구 방향으로 걷다 보면 버스정류장이 하나 나오고 그 뒤로 빈 의자가 놓여있다. 언제부터인가 이 도시에서는 빈 벤치 하나 찾기가 어려워졌다. 길을 가던 누구든 앉아서 숨을 고를 수 있는 의자. 바로 근처에 있는 ‘문화공간 숨도’도 그런 곳이다. 의자와 책을 마련해두곤, 놓치고 살기 십상인 감수성을 찾게 하는 공간이다.

1 숨도 1층 책극장(숨도의 가을_역행여행).			2 숨도 1층 작은 전시관.			3 숨도 1층 카페, 책극장, 작은 전시관(활생_ecoscape). 모든 공간은 유동적이어서 기획팀이 어떻게 공간을 나누고 오브제를 설치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1 숨도 1층 책극장(숨도의 가을_역행여행).
2 숨도 1층 작은 전시관.
3 숨도 1층 카페, 책극장, 작은 전시관(활생_ecoscape). 모든 공간은 유동적이어서 기획팀이 어떻게 공간을 나누고 오브제를 설치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공터가 있었다. 동네 아이들이 와서 흙장난을 하고 길고양이가 사람 다니는 길을 피해 볕을 쬐는 곳이었다. ‘땅을 놀리면 뭐해.’ 어느 날 공사가 시작되고 곧 1층에 가게가 있는 건물이 들어섰다. 놀지 않는 땅이 되었지만 그곳에서 놀던 아이들과 고양이는 소리 없이 흩어져야 했다. 길에 빈 의자 하나 놓인 걸 보기 힘든도시, 사람들은 움직여야 하고 어딘가에 앉아 쉬기 위해서는 비용을 치러야 한다.
문화공간 ‘숨도’는 이런 도시에서 좀 별난 곳이다. 공터에서 놀던 아이들과 길고양이에게 자리를 내 주는 곳이랄까. 건물 1층에 널찍하게 자리잡은 공간은 ‘카페 싯따’를 중앙에 두고 왼쪽에 벽면 가득 책이 진열돼 있는 ‘책극장’과 오른쪽에 전시 겸 극장 공간인 ‘극장 소우주’·‘작은전시관’으로 구성돼 있다. 밖에서 보면 평범한 북카페 같지만, 이곳의 책극장에서는 음료를 주문하지 않고도 책을 볼 수 있다. 노트북과 자기계발서, 스펙 쌓기는 금지다. 뭔가를 계속 종용하는 이성을 잠시 접고 우리가 놓친 ‘감수성’을 찾기 위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 숨어있는 감수성을 찾아서

4 숨도 1층 책극장.4 숨도 1층 책극장.

‘숨도’의 ‘숨’은 호흡과 숨겨짐을 함께 담은 말이며 ‘도’는 길(道), 마을(都), 섬(島)을 뜻한다. 즉 숨도는 ‘생명의 숨결’ ‘진실의 깊이’라는 뜻이 담긴 말로, 운영진은 이러한 뜻을 공간에서 그대로 이어가고자 한다. 2011년에 문을 연 이곳은 대한불교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문화집단 ‘희망과 자연’이 프로그램을 기획, 운영한다. 기획의 중심에는 책과 독서가 있다. 책공장의 두 벽면을 가득채운 책장과 진열장에는 ‘우울한 막내의 책장’ ‘연락 안 되는 언니의 책장’ 등 재치 있는 이름이 붙어있는데, 이는 운영진들의 닉네임으로 계절에 한 번씩 추천 책 리스트를 만들고 책극장을 찾는 이들이 읽을 수 있도록 진열해 둔다. 책 수다 모임인 ‘책벌클럽’도 진행된다. 특정 주제를 잡고 그에 맞는 책을 함께 읽는 모임이다. 한 권의 책을 샅샅이 파헤쳐 깊이 있게 읽고 참여자와 나누는 ‘책해부학’ 프로그램도 반응이 제법 좋고, 그 외에 책에서 영감받은 행사와 공연이 진행된다.
책이 중심이라고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식이 아닌 ‘감수성의 회복’이다. 이는 책극장 외 다른 워크숍 및 프로그램에서 더 잘 드러난다. 1월에 진행 중인 미술 워크숍 ‘8교시 미술시간’을 비롯해 ‘멋연구소’ ‘나무공부’ ‘구름요가’ 등 알 듯 말 듯한 이름의 프로그램이 수시로 열리는데, 이 중 ‘멋연구소’는 말그대로 멋을 연구하는 자리였다.
“우리는 뭐가 멋있는지 잘 고민하지 않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뭔가를 선택하거나 즉각적으로 반응할 때 사실 이성이나 윤리가 앞서기보다는 그게 멋있는지 아닌지를 먼저 판단하죠. 그런데 정작 멋에 대한 연구는 찾기 힘들고, 한국에서는 조지훈의 <멋의 연구> 이후 끊겼다고 해요. ‘풍류’를 얘기하기엔 그 시절에 그저 먹고 살기 바빴던 거죠. 어찌 보면 이건 가치나 신념을 고민하며 사느냐의 문제일 수도 있어요.”
멋연구소를 진행한 최창혁 운영자는 숨도의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세 가지를 기본 철학으로 삼는다고 한다. 다양성, 생태적인 가치, 그리고 문화적인 것인가의 여부다. 숨도의 다양한 활동은 하나의 키워드로 수렴되지 않고 뚜렷한 의도가 보이지않는 것들인데, 이는 감수성을 회복하는 다양한 접근방식을 수용하기 때문이다. 책극장에서 스펙 쌓지 말고 그냥 책을 보자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요즘 대학교에서는 잔디광장을 없애고 상업시설이 운영될 건물을 지어요. 감수성을 기를 수 있는 공간이 점점 없어지는 것이죠. 저는 독특한 감수성을 지닌 이들이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봐요. 헬조선, 헬조선 함에도 불구하고 그런 사람이 있기에 사회가 버티는 것인데, 그들이 놀 수 있는 서식지가 없어져요. 그럼 생명체도 없어질 테고, 그건 안타까운 일이잖아요. 숨도가 그런 서식지 역할을 하면 좋겠어요.”

언제나 실패할 것을 알지만 진행할 것이다’

6년째 숨도의 방향이 꾸준히 유지되며 ‘느슨하지만 단단한’ 관계를 운영진 내부에서, 그리고 참여자들과 유지해올 수 있었던 건 어쩌면 거창한 목적이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취업을 위해 스펙을 쌓고, 승진을 위해 외국어 공부를 하고, 무엇을 위해 다른 무언가를 끊임없이 하게 되는 도시는 생산성 없는 행위를 못 견디는 듯하다. 이런 곳에서 우리는 종종 가만히 숨을 고르거나 책장 사이에 숨을 시간이 필요하다. 어느 날 갑자기 놀이터를 잃고 아무 소리 내지 못한 채 돌아서야 하는 아이나 길고양이처럼, 우리는 자주 외로워도 잘 모르고, 목적 없는 행동이 민망하다. 최창혁 운영자가 ‘멋연구소’를 진행하며 내걸었던 출사표(?)는 의미있게 다가온다. ‘우리는 언제나 실패할 것을 알지만 진행할 것이다.’ 멋과 감수성을 찾는 건 답을 구하지 못할 일인지 모르지만 이 공간은 꾸준히 서식지를 만들고 누군가 잃어버린 감수성을 찾도록 함께할 것이다.문화+서울

글 이아림
사진 제공 문화공간 숨도 soomdo.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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