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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호

예술과 검열의 역사 예술은 길고 검열은 오래 기억된다
예술과 검열의 역사는 깊다. 그것은 권력자와 제사장의 갈등 관계와 비슷하다. 어느 시대건 하늘의 뜻을 받들어 권력자를 부정하는 제사장은 권력자의 중요한 견제 대상이었다. 그래서 늘 권력의 견제를 받았고 권력자들은 제정일치를 도모하곤 했다. 이후 제사장의 역할을 대신해 권력을 견제한 것이 바로 예술가들이다. 민심을 담은 그들의 예술혼이 권력자들을 긴장시키곤 했다. 부당한 권력일수록 더욱 그랬고, 그렇게 검열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1 지난 연말 서울 한남동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는 현 정부의 문화예술계 검열을 성토하는 ‘문화예술인만민공동회’가 개최됐다.1 지난 연말 서울 한남동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는 현 정부의 문화예술계 검열을 성토하는 ‘문화예술인만민공동회’가 개최됐다.

과거와 달라진 검열 이슈, ‘정권의 입맛’

‘검열’은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 정책을 한마디로 요약하는 단어다. 이 정부의 문화예술 정책은 아마 검열로 시작해서 검열로 끝날 것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문화예술적 성취가 있다면 검열의 노하우가 늘었다는 것이다. 이것도 진화라면 진화라 할 수 있을까? 이제 검열의 맥을 짚을 줄 안다. 덕분에 문화예술인들은 자체 검열이라는 창작의 암을 품게 되었다.
물론 검열이 박근혜 정부 때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른 정권에서도 검열은 있었다. 예술의 역사는 검열의 역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구분해야 할 것이 있다. 검열의 대상과 양상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 당시에는 검열과 관련된 이슈는 주로 ‘표현의 자유’였다. 성 표현물의 수위, 청소년 연령 제한, 문신 및 대마 비범죄화 등과 같은 문화적 성격의 검열이 많았다. ‘사회 통념’이 검열의 주체였다. 하지만 지금은 군부독재 시절의 정치 검열과 메커니즘이 비슷하다. 검열의 내용이 권력에 대한 태도라는 점, 예술 검열과 예술 지원을 연계해서 압박한다는 점, 검열의 주체가 사법기관이 아니라 예술행정가라는 점에서 이전과 완전히 다르다.
풀어서 말하면 이렇다. 이전에는 ‘이런 것을 우리 사회가 허용할 수 있을까’가 검열의 기준이었는데 박근혜 정부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불편해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검열의 기준이 되었다는 것이다. 처벌이 아니라 검열의 대상이 되는 사람에게는 정부 지원을 줄이는 방식으로 반드시 보복을 하며, 이를 사법기관이 아니라 현장의 예술행정가들이 나서서 한다는 점도 달라졌다. 즉 현장 예술가들을 보조하고 예술을 부흥시켜야 할 당사자들이 검열에 앞장섰다는 것이다. 최근 벌어진 대표적인 검열 사례들을 들여다보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예술행정가의 손에 질식당하는 문화예술

2, 3 부산시는 부산국제영화제 이용관 집행위원장을 영화제 국고보조금 위반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2014년부터 계속돼 온 탄압에 국내 5개 영화제 관계자들이 지난 23일 한자리에 모여 부산국제영화제 살리기 좌담회(사진3)를 열어 공동성명을 발표했고, 세계의 영화인들이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사진2).2, 3 부산시는 부산국제영화제 이용관 집행위원장을 영화제 국고보조금 위반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2014년부터 계속돼 온 탄압에 국내 5개 영화제 관계자들이 지난 23일 한자리에 모여 부산국제영화제 살리기 좌담회(사진3)를 열어 공동성명을 발표했고, 세계의 영화인들이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사진2).

지난 연말 이슈였던 부산광역시의 부산국제영화제 고발을 보자. 부산시는 감사원의 부산국제영화제 감사 결과를 바탕으로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집행위원장 등 영화제 집행부 3인을 검찰에 고발했다. 핑계는 이렇지만 발단은 2014년 부산국제영화제 때 세월호 구조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다이빙벨>을 상영한 것 때문이다. 영화제 후 부산시는 행정 지적 사항이 발견되었다며 이용관 집행위원장의 사퇴를 계속해서 종용해왔다. 그러나 영화인과 해외영화제 집행위원장들이 부산시에 강하게 항의하자 부산시는 슬쩍 꼬리를 내렸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감사원과 검찰을 통해 영화제를 압박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의 태도다. 바람막이가 되어야 할 영진위가 오히려 부산국제영화제를 압박하는 데 앞장섰다. 다른 작은 영화제를 도와야 한다며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지원 예산을 40% 삭감했다.
국립국악원에서도 검열 논란이 있었다. ‘금요공감’ 프로그램에서 공연될 예정이던 <소월산천>에서 박근형 연출가가 맡은 연극 부문을 제외하라는 압력을 가했다. 국악원 측은 공연장인 풍류사랑방의 극장 시설이 연극 공연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를 들었다. 하지만 박근형 연출가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부녀를 풍자한 연극 <개구리>(2013년)를 무대에 올린 후로 박근혜 정부의 집중 견제를 받아온 터라 검열로 해석할 수밖에 없었다. 문화예술인들은 크게 반발했다. 당사자가 아닌 안무가들도 나섰다. 파장이 컸다. <소월산천>을 비롯한 5개 공연이 취소되고 김서령 예술감독이 사퇴했다. 하지만 정부 측은 ‘모르쇠’ 행정으로 일관했고, 누구 하나 징계를 받는 이도 없었다.
박근혜 정부의 검열은 국경도 넘었다. 10월 23일 프랑스 소르본 대학에서 열린 한국?프랑스 수교 130주년 기념 세미나에도 검열이 있었다. 한국과 프랑스는 2015년을 ‘한?불 상호교류의 해’로 선포하고 다양한 문화교류를 해왔다. 한국 정부기관(예술경영지원센터)이 후원하는 이 세미나에서 동국대 영상대학원 차승재 교수는 발제자로 예정되어 있었다. 프랑스 쪽 세미나 주관 교수에게 영문 발제문까지 보낸 상태였다. 그런데 정부기관으로부터 정부에 비판적인 차 교수가 포함되면 행사를 지원할 수 없다는 압박이 들어왔고, 결국 차 교수는 자진 하차했다.
지난해 대학로의 가장 대표적인 검열 사례는 한국공연예술센터가 세월호 사건을 연상케 한다는 이유로 팝업 시어터 작품중 하나인 <이 아이> 공연을 방해한 것이다. 이 사건은 ‘검열 당사자’인 유인화 센터장, 양효석 본부장, 임수연 문화사업부장이 ‘직무정지’ 처분을 받아 관심을 모았다. 그런데 눈여겨볼 대목이 있다. 논란을 거치는 와중에 공연예술센터의 상급기관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독립기관인 센터를 다시 예술위 산하 부서로 축소해버린 것이다. 검열이 문제가 되었는데 오히려 공연예술센터의 독립성이 낮아지는 쪽으로 일이 마무리 됐다. 연극인들은 검열이 더욱 직접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예술은 길고 검열의 역사도 오래 기억된다

최근에 일어난 일만 꼽아도 이 정도다. 지난 연말 서울 한남동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 ‘예술 검열 반대와 문화민주주의를 지키는 문화예술인 만민공동회’가 열렸다. 박근혜 정부의 검열을 성토하는 자리였다. ‘문화 융성’을 일으키겠다던 박근혜 정부가 ‘검열융성’만 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올해도 그리 나아질 것 같지는 않다. 문화예술계를 지원하고 방패막이 되어야 할 문화예술행정가들이 검열의 주체가 되는 양상이 계속될 것이다.
올해는 문화예술행정가들의 처신이 좀 달라졌으면 한다. 정권은 유한하지만 예술은 영원하다. 그들이 예술가들의 가슴에 못질을 한 것은 오래 기억될 것이다. 그리고 정권의 탄압에 방패막이가 되지 못하고 완장을 차고 검열에 앞장선 것은 뚜렷이 기록될 것이다. 정권 입맛에 맞게 수사를 한 사정기관 관료들이 그렇듯 일시적으로 승승장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한다. 예술은 길다는 사실을… 문화+서울

글 고재열
시사IN 기자
사진 제공 문화연대, 부산국제영화제, 서울아트시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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