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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호

연극 <태풍기담>과 <올드위키드송> 역사의 상처를 보듬는 재치 혹은 예술
역사를 소재로 한 이야기는 이목을 끌기 쉽지만 호평을 받기는 쉽지 않다.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사람들은 기존 역사관을 크게 벗어날 수가 없다. 그러니 연극으로 역사를 곱씹는다는 건 매우 어렵고 또 위험천만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시선을 제시하고, 도전적인 질문을 던지는 ‘역사적인 무대’는 끊임없이 탄생하고 있다. 기꺼이 모험에 동참하는 창작자들이 존재하기에. 각기 다른 방식으로 역사를 되짚어 본 작품이 나란히 무대에 올랐다.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를 각색해 1920년대 한일 관계를, ‘언어’의 힘 속에서 찾는 <태풍기담>과 아름다운 음악의 도시 빈에서 역설적으로 오스트리아의 나치, 유태인 학살 등 어두운 기억을 끄집어 내는 음악극 <올드위키드송>이다.

한일 관계사를 바라보는 색다른 시선
<태풍기담>, 10. 24~11. 8,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1 <태풍기담>은 한일 양국의 관계를 은유적으로 드러내는 설정에, 원작의 주제인 ‘화해와 용서’를 가볍지만 재치있게 풀어낸다.1 <태풍기담>은 한일 양국의 관계를 은유적으로 드러내는 설정에, 원작의 주제인 ‘화해와 용서’를 가볍지만 재치있게 풀어낸다.

<태풍기담>은 용기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극작가 겸 연출가 성기웅과 동아연극상 최초 외국인 수상자인 타다 준노스케(多田淳之介). 갈등 밖에서 자란 한일 양국의 두 젊은 창작자가 의기투합했다. <태풍기담>은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의 줄거리를 그대로 가져왔지만 인물의 역할과 관계를 새롭게 구성했다. 배경은 상상 속 어느 무인도 국가다. 나라를 잃고 피신해 온 조선의 황제 이태황이 외동딸 소은과 함께 살고 있는 곳. 인근 바다를 지나던 일본 함선이 난파를 당하고, 1920년대 한일 상황을 알려주는 (가상의) 다양한 인물들이 표류한다. 이들은 이태황의 왕조를 멸망시킨 귀족 일행으로, 이태황의 동생이자 사이다이지 공작의 사위가 된 이명도 포함되어 있다.
연극은 지배하는 자(일본)와 지배 받는 자(조선)의 구도에, 또 다른 지배(이태황)-피지배(섬 원주민 얀꿀리)관계를 엮었다. 그 속에서 권력이 공고해지거나 무너지거나, 혹은 이동하는 과정에서 언어가 갖는 힘을 탐구한다. 화해와 용서의 과정을 그려낸 원작의 주제에 비하면, 다소 가벼워진 측면이 없지 않지만 다양한 언어가 무대 위에서 얽히는 상황을 재치 있게 그려냄으로써, 한일 관계사를 바라보는 색다른 시선의 틀을 제공한다. 이때 성기웅의 전작들에서 종종 등장하는 이중 언어 상황, 즉 조선어(한국어)와 내지어(일본어)가 함께 쓰이던 식민지 시기의 현실이 재료로 적극 활용된다.
극이 전개되는 내내 말장난 같은 언어유희가 이어지고, 무거운 주제가 경쾌하게 풀린다. 예컨대, 이태황의 지배를 받아 원주민어를 쓸 수 없는 얀꿀리에겐 조선어가 권력이고, 다마사부로의 조수 을돌이에겐 일본어가 권력이다. 이 세 사람이 만나면서 원주민어>조선어>일본어 순으로 권력관계가 바뀌는 과정이 흥미롭다. 사이다이지의 아들인 나루야스는 소은과 뜻과 발음이 비슷한 한자로 필담을 나누는데, 대화가 통하면서 사랑을 느끼게 된다. 압권은 이 다섯 사람이 만났을 때. 세 가지 언어가 섞이고, 자막도 쉴 새가 없다. 관객석은 요절복통. 역사를 떠나 관객 누구라도 즐거울 수 있는 장면이다.
이태황과 사이다이지, 나루야스 등이 목적을 이루지 못한 채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갈 때, 끝까지 살아남는 건 누굴까. 조선어와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을돌이, 그리고 원주민어와 조선어를 할 줄 아는 얀꿀리가 또 다른 기회를 얻는다는 결말은 의미심장하게 다가올 것이다. 원작의 프로세우스와 안토니오 역은 정동환(이태황), 박상종(이명)이 맡았다. 오다 유타카, 나가이 히데키, 전수지, 마두영 등 출연.

역사의 상처 속에서 마음을 움직인 음악
<올드위키드송>, 9. 8~11. 22, DCF대명문화공장2관 라이프웨이홀

2 <올드위키드송>은 유태인 학살과 나치 등 불행한 역사적 사실을 경험한 스승과 제자가 갈등하고 연민을 느끼는 과정을 그렸다.2 <올드위키드송>은 유태인 학살과 나치 등 불행한 역사적 사실을 경험한 스승과 제자가 갈등하고 연민을 느끼는 과정을 그렸다.

예술과 역사. 어떤 주제를 부각 시켜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던 연극은 스승과 제자의 소통과 치유, 그리고 우정 이라는 다소 식상 하지만 ‘안전한’ 길을 택했다. 물론, 이를 가능케 하는 건 두 사람의 공통점인 예술(음악)과 상처의 역사(유태인)다. 음악극 <올드위키드송>은 유태인 학살, 최초의 의학 생체 실험실이 만들어진 뮌헨 다하우 수용소. 오스트리아 나치 등 불행한 역사적 사실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마슈칸(스승)과 스티븐(제자)이 티격태격하고, 오해하고, 갈등하고, 연민을 느끼는 과정을 그렸다. 낡은 피아노와 빗줄기가 떨어지는 창문, 고즈넉한 응접실 등 고풍스러운 무대는 볼거리를 더하고, 두 남자의 이야기는 누구라도 보편적으로 공감할 내용이다. 그러나 예술과 역사의 본질 어느 것도 꿰뚫지 못한 채 일반적인 인생론이 두리뭉실 펼쳐지는 점은 아쉽다.
주인공 두 사람은 오스트리아 빈, 어느 대학의 음악 연습실에서 만난다. 이 작품으로 1996년 퓰리처상 드라마 부문 최종후보에 오른 극작가 존 마란스는 나치가 독일의 전유물이 아니었음에 주목했다. 히틀러뿐 아니라 유태인 학살을 총괄한 아돌프 아이히만, 게슈타포(독일 비밀국가경찰)의 수뇌였던 에른스트 칼텐브루너 등이 모두 오스트리아인이었다는 것. 특히, 유고슬라비아 나치 전범 5000여 명 가운데 절반 가량이 오스트리아인이었다. ‘음악의 도시’가 간직한 이 그림자는 마슈칸이 스티븐에게 철저히 감추려 한 자신의 삶과 닮아있기도 하다. 그러나 마란스의 의도가 한국 초연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신흥 공연 제작사로 떠오른 영화배급사 NEW의 자회사 쇼앤뉴의 작품에, 영화배우 김수로(예술감독)가 참여해 개막 전부터 화제를 모았으나, 원작의 명성에는 약간 못 미치는 것 같다. 대신 역사·음악적 설명이 빼곡한 프로그램 북은 매우 훌륭하다. 극에서 느끼지 못한 감동이 밀려올 정도로.
극 내내 슈만의 ‘시인의 사랑’이 흘러나온다. 스티븐은 “시인의 사랑이 도대체 우리 삶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라고 비아냥거리지만, 마슈칸은 “인생이란 건 언제나 그렇게 명확할 수만은 없는 거야. 이 안에 마음이라는 게 있어. 그걸 움직이라”고 주문하며 다시 노래를 한다. 음악이 아름다울 수록, 상처는 더욱 아프다. 마치 슬픔과 환희가 교차 되는 게 인생임을 알려주듯. 송영창, 김세동, 김재범, 박정복, 이창용, 조강현 출연.문화+서울

글 박동미
문화일보 기자. 2014년 10월부터 문화일보 문화부에서 공연과 패션, 팝 음악 등을 담당하고 있다.
사진 제공 남산예술센터(촬영: 이강물), 쇼앤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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