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와 곡의 부조화, 홍난파 곡 <고향생각>

내가 중학교에 입학해 첫 음악시간에 배운 노래는 홍난파가 작곡한 <고향생각>이다. 이은상의 시에 곡을 붙인 <고향생각>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당시 예민한 사춘기 소녀의 귀에는 이 노래가 그렇게 어색할 수 없었다. 일단 선율 자체가 매우 동요스러운데 그에 상응하는 가사는 꽤 나이 찬 어르신의 정서를 담고 있어 부자연스러웠다. 서울의 어느 병원에서 태어나 평생 을 아파트에 살았던 내 또래 친구 대부분은 이 가사가 그다지 와 닿지도 않았겠지만, 서양음악과 동요에 길들여져 선율 자체의 느낌은 익숙했을 것이다. 그런데 자세히 뜯어보면 선율도 그다지 아름답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특별히 개성 있는 멜로디가 아닌 데다 가사도 곡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4/4박임에도 불구하고 서양음악의 대표적인 2+2 프레이징이 철저하게 지켜지지도 않는다. 특히 이 부분이 그러하다.

결국 ‘물만 출렁거린다’는 표현에서 ‘거’와 ‘리’가 무척 강조되는 구조로 멜로디가 만들어졌다. 그나마 2절은 조금 낫다. 같은 불안정한 5마디 선율이긴 하지만 ‘그’와 ‘립’이 강조되었으니까. 당시 음악 교과서에는 전형적 인 4마디 선율에서 마지막 세 음절에 늘임표(페르마타)가 붙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나름의 설명이 담겨 있긴 한데, 그렇다면 그냥 4마디로 두면 나을 것을 왜 저렇게 바꿔놓았을까 하는 의아함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일단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이 곡은 개인적인 음악 취향의 차이 때문이라고 해두기로한다.

불안정한 박자로 흥을 깨는 <어린이 날 노래>

사실 2+2 프레이징이 안 지켜지는 대표적인 예는 윤석중 작사, 윤극영 작곡의 <어린이 날 노래>다.

시만 읽었을 때는 당연히 한국의 시조와 흡사하게 4개의 단어로 각 행이 이루어져 있고 이것이 일정하게 유지되어 노래도 이에 상응하게 작곡될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어린이 날 노래>는 그렇지 않다.

이런 박자 체계는 과장되게 생각하면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연상시킬 정도로 불안정하다. 어린이날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던 이유가 결국 마음에 드는 선물을 받지 않았거나 놀이공원에 가지 않았기 때문만은 아니었나보다. 이 노래가 얼마나 잘못 작곡되었는지는 대학교 때 작곡과 교수님이 열변을 토하며 설명하시곤 했는데 그때마다 속으로 크게 공감했다.

아직 한국 음악에서 씻기지 않은 역사의 얼룩

지난해 음악인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던 지휘자 구자범의 칼럼에서는 애국가 또한 비판의 칼날을 피해가지 못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로 시작되는 가사에, 선율은 ‘해’와 ‘두’가 강조되게끔 쓰였기 때문이다. 원래 애국가는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의 멜로디를 사용했다. 오늘날의 애국가 선율은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을 연상시키는 안익태의 <한국환상곡>의 마지막 합창 부분인데, 이것이 1948년 대통령령에 따라 국가의멜로디로 정해진 것이다. 그 사실만 보면 안익태는 민족을 대변하는 위대한 음악가처럼 보이겠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에키타이 안’이라는 이름으로 독일 등지에서 활동했던 작곡가 안익태는 1942년 만주국 건국 10주년을 경축하는 <만주국 춘전곡>을 의뢰받아 4개의 악장으로 구성된 <큰 관현악과 혼성합창을 위한 교향적 환상곡 ‘만주’>를 완성한 바 있기 때문이다.
이런 역사적인 맥락까지 생각해보면 차라리 독립투사들이 가사만 바꿔 불렀다는 <올드 랭 사인> 선율이 훨씬 애잔하고 아름답게 들려온다. 가수 김장훈은 <올드 랭 사인>의 곡조에 애국가 가사를 붙인 속칭 <독립군 애국가>를 2012년 하계 올림픽 응원가로 리메이크해 발표하기도 했다.
안익태, 홍난파, 윤극영 등 개화기 음악가들이 서양음악의 도입과 보급에 지대한 공을 세운 것은 사실이지만, 어찌 보면 서양음악이 국악보다 우월하다는 위험한 인식도 함께 보급한 셈이다. 게다가 서양음악에 대한 기초가 제대로 쌓이지 않은 상태에서 음악적으로 세련되지 않은 노래들을 만들었고 이것이 현재까지 불리게 된 것은 다소 유감스러운 일이다.
사실 이런 현상은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던 개화기 시절에 팽배했던 인식일지도 모른다. 지금은 표면적으로는 많이 사라졌고 한국 전통의 것을 소중히 하려는 움직임이 생겨났다. 하지만 서양의 어법에 깊게 물든 한국의 음악적 전통과 음악인들의 귀는 돌이키기 쉽지 않을 것 같다. 많은 젊은 국악인들이 국악기를 연주하면서도 서양음악의 패러다임을 놓지 못하는 점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