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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10월호

시민들의 다양한 추억이 깃든 여의도 공원 역사의 수레바퀴를 따라 변화하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여의도공원은 여러 차례 그 모습을 바꾸며 서울시민에게 다양한 추억을 선사해왔습니다. 이 공간은 1971년까지 비행장으로 사용됐습니다. 1916년 일제(日帝)에 의해 이곳에 한국 최초의 비행장이 건립됐습니다. 일제는 여의도 백사장에 길이 600m의 활주로를 만들며 민간 항로 개설을 위해 비행장이 필요하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중국 대륙 침략의 교두보로 쓰기 위한 것이 실제 목적이었습니다. 개장 당시 활주로와 격납고만 있었던 이 비행장에서 군사 훈련도 했다고 합니다. 1917년에는 이 비행장에서 미국인 곡예 비행사의 시범이 펼쳐졌는데 이를 보기 위해 당시 서울 인구의 4분의 1인 5만 명의 관중이 모였습니다. 또 1922년에는 한국 최초의 비행사인 안창남이 이곳에서 시범 비행을 선보였습니다. 1925년 대홍수가 나 비행장이 유실됐고, 한동안 방치되다 1929년 조선박람회를 앞두고 새 단장해 경성비행장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6·25전쟁 때는 이곳이 몇 차례 북한군의 손아귀에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여의도비행장은 휴전 이후 국제공항으로 승격됐다가 1958년 김포국제공항이 생기며 민간 공항 기능을 이전하고 공군기지로 사용됐습니다. 1971년에는 공군기지도 경기 성남에 조성된 비행장으로 옮겨갔고, 이곳은 ‘5·16광장’으로 변신했습니다.

1973년 5·16광장.1973년 5·16광장.

비행장에서 5·16광장으로

1971년 9월 29일 박정희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5·16광장 준공식이 열렸습니다. 착공 7개월 만에 완공된 이 광장은 12만 평 규모로 55만 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었습니다. 서울시는 이 광장의 이름으로 ‘5·16광장’ ‘민족의 광장’ ‘통일의 광장’ ‘서울대광장’ ‘여의도대광장’ 등 5개를 검토한 끝에 청와대의 재가를 얻어 5·16광장으로 최종 결정했다고 합니다. 엄청난 공사비를 투입해 만든 이 광장에는 하수시설이 잘못돼 여름 장마철이 되면 물이 고 여 차량 통행을 못했습니다. 물이 고이면 청소부들이 물길을 내고 비로 물을 쓸어냈습니다. 또 겨울철에도 비가 내리면 얼어붙어 빙판이 됐다고 합니다. 이 광장에는 6·25전쟁 때 ‘하늘의 요새’로 위용을 떨친 B29 폭격기를 비롯해 F51 ‘무스탕’ 전투기, F86D ‘세이버’ 요격기 등이 전시됐습니다. 1972년 8월 14일 미군이 기증한 B29 폭격기가 처음 공개됐습니다. 이 B29 폭격기는 제2차 세계대전을 종식하는 데 크게 기여한 전투기로 총 3970대가 생산됐는데 남아 있는 3대 중 1대가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분해된 상태로 들여와 두 달 동안 조립 과정을 거친 이 폭격기는 ‘통일호’로 명명됐습니다. 위 사진은 1973년 5·16광장의 모습입니다. 지방에서 올라온 할아버지들이 B29를 구경하고 있습니다. 1970년대에 마포에서 살며 이 광장에서 친구들과 뛰어놀던 기억이 납니다. 저녁 무렵 마포대교를 건너와 B29 아래에서 숨바꼭질을 했습니다. 뻥 뚫린 광장이었지만 숨을 곳이 참 많았습니다. 커다란 비행기 바퀴 뒤와 꼬리 날개 쪽 그늘에 숨어 있으면 술래가 찾기 힘들어했습니다. 숨바꼭질이 지루해질 때쯤 친구들과 넓은 광장을 뛰어다니며 깔깔거린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유신 시대의 종말과 함께 여의도광장으로, 다시 여의도공원으로

1973년 6월 30일에는 세계적 복음 전도사인 빌리 그레함 박사가 한국에 와 전도대회를 열었습니다. 5일 동안 열린 이 행사에는 하루 30만 명씩 총 150만 명의 신도가 모였다고 합니다. 이 행사를 위해 높이 5m의 설교대가 세워졌고, 연합성가대가 앉을 스탠드와 귀빈석도 마련됐습니다. 또 광장 남쪽 입구에는 7000~8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식당과 화장실, 의무실 등도 설치됐습니다. 해가 진 후에도 26개의 조명장치가 광장을 대낮처럼 밝혔습니다. 이 광장에서는 대규모 행사도 열렸습니다. 6·25전쟁 24주년을 맞은 1974년 이 광장에서 ‘6·25 반공 시민 궐기대회’가 개최됐습니다. 당시 신문에는 “각 사회단체 회원들과 교육자, 학생, 시민 등 100여 만 명이 참가해 북괴의 남침 야욕을 강력히 규탄했다”고 나와 있습니다. 하지만 55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이 광장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모였다는 게 믿어지지 않습니다. 국군의 날 행사도 이 광장에서 열렸습니다. 넓은 광장에 육·해·공군과 해병대, 예비군 등이 늠름하게 행진했고, 기계화 부대의 각종 신예 장비도 공개됐습니다. 학생들의 카드섹션도 펼쳐졌고, 수만 개의 풍선과 1000여 마리의 비둘기가 하늘을 수놓기도 했습니다. 부처님오신날 행사도 열렸으며 명절 버스표 임시예매소도 설치됐고, 자전거 대회, 마라톤 대회도 진행되는 등 이광장은 다용도로 사용됐습니다. 이 광장은 유신 시대 종말과 함께 ‘여의도광장’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1997년 서울시가 광장의 아스팔트를 걷어내고 공원화 사업을 추진해 1999년 ‘여의도공원’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와 영국 런던 하이드파크 못지않은 도심 속 녹색 공간인 여의도공원에는 휴일이면 많은 시민이 찾아 휴식을 즐깁니다. 아늑한 숲과 연못, 오솔길 등이 갖춰져 있고, 자전거도로와 산책로도 마련돼 있는 이곳은 서울의 명소로 자리 잡았습니다. 가족, 친구, 연인과 함께 공원을 방문한 시민들이 이 공간이 변모해온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역사관’이 마련됐으면 좋겠습니다. 문화+서울

사진 김천길
전 AP통신 기자. 1950년부터 38년 동안 서울지국 사진기자로 일하며 격동기 한국 근현대사를 생생하게 기록했다.
글 김구철
문화일보 문화부 기자. 대중문화팀장으로 영화를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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