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TV로 스포츠 경기를 보는 일이 거의 없지만 4년에 한 번씩 열리는 올림픽과 월드컵 중계방송만큼은 마치 4년치 스포츠 방송을 몰아서 보는 기세로 누구보다도 열심히 챙겨 보곤 한다. 그때마다 평소에 볼 수 없는 스포츠 종목만큼이나 관심 있게 지켜보는 것이 시상식이다. 평소에는 들을 기회가 없던 다양한 나라의 국가(國歌)가 울려 퍼지기 때문에 이를 비교해가며 듣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저마다 다르게 웅장한 ‘나라의 노래’
대부분의 국가는 4박자 행진곡풍의 씩씩한 분위기로 전개된다.
프랑스와 미국의 국가가 대표적이다. 반면 영국의 국가는 느린 3박자로 되어 있다.
아시아의 많은 국가도 개화기를 거친 이후 서양음악을 받아들이던 시기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유럽과 마찬가지로 4박자 계열의 행진곡풍 음악이 많다. 안익태의 <한국환상곡> 마지막 악장에 나오는 선율을 국가로 사용하는 한국의 애국가도 4/4박자로된 음악인데 씩씩함보다는 웅장하면서 서정적인 느낌을 전한다.
일본의 경우 국가(기미가요)의 선율이 일본 전통 음계를 상징하는 음 구조로 구성되어 있으며, 여운이 남는 듯한 마지막 선율이
특이하다.
미국 국가인
한편, 일반인이 쉽게 따라 부를 수 없거니와 가사조차 잘 알지 못하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경우
월드컵 경기를 챙겨 보다 보면 축구 강국 브라질이 등장하는데,
2년 전 브라질이 나오는 경기를 처음부터 지켜보다가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들의 국가는 다른 나라 국가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를 뿐만 아니라 모든 음에 가사가 붙어 있어서, 따라 부르려면 입을 쉬지 않고 재빠르게 벙긋거려야 하기 때문이다. 근엄한 표정으로 서 있는 선수들이 심각한 표정을 하곤
숨 쉴 새 없이 허덕이며 국가를 따라 부르는 모습을 보면, 다른 나라 선수들이 국가를 부를 때처럼 뭉클하고 벅차오르는 감정이 들기보다는 뭔가 코믹하게 느껴져 미소를 짓게 된다.
아르헨티나 국가는 다른 이유로 재미를 선사한다. 전주 부분이 아르헨티나 국가의 경우 아주 느리게 1분도 넘게 계속되기 때문에 선수들은 국가를 부르기 전에 전주가 다 연주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선수들은 카메라가 그들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는
동안 입을 다문 채로 어색하게 서 있어야 하고, 관중의 감동과 기대감에 부푼 표정도 서서히 지루함으로 변하기 시작할 무렵에야
비로소 노래가 시작된다.
스포츠 이벤트에서 국가를 감상하는 재미
지난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한국 선수의 시상식에 울려 퍼진
애국가는 본래의 엄숙하면서 웅장한, 듣는 이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분위기는 온데간데없는, 경쾌한 분위기의 곡이었다. 이는 저작권 문제 등의 이유로 올림픽조직위원회에서 작곡가 필립
셰퍼드(Phillip Sheppard)에게 위촉해 201개의 국가를 모두
직접 편곡하고, 올림픽이 개최되는 2012년 초에 전부 새로 녹음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런던 올림픽 시상식에 울려 퍼진 애국가는 필립 셰퍼드의 편곡 버전이었는데, 심벌즈만 10회가 넘게
들어가는 다소 가벼운 분위기의 애국가 편곡은 개인적으로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당시 영국의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애비로드(Abbey Road) 레코딩 스튜디오에서 52시간에 걸쳐서 2012년 올림픽에 출전하는 모든 나라의 국가를 녹음했는데, 그 수만 무려 200여 곡이 되어 오케스트라 단원이 각 국가의
악보를 읽고 연습하고 녹음하는 총 시간은 한 국가당 평균 12분 정도였다. 각 나라의 입장에서는 다소 서운할 수도 있는 시간과
정성을 들인 것이다.
올림픽조직위원회의 가이드라인에 의하면, 전 세계 모든
나라의 시상식용 국가는 60~90초 안에 연주돼야 한다. 이는 국기가 게양되는 시간과 엇비슷하게 맞아떨어져야 한다는 계산 때문이다. 리우 올림픽에서는 어떤 버전의 국가들이 울려 퍼질지,
기대와 우려가 섞인 마음을 담아 한국 선수들의 선전을 기원하고
시상식을 기다리고 있다.
- 글 신지수
- 음대 작곡과를 졸업하고 유학을 마친 후 현재 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현대음악 작곡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음악에 대한 글쓰기를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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