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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6월호

건축에서 차용하는 ‘복고’의 클리셰 ‘복고’, 클리셰와 크리에이티브 사이
건축계에서도 복고에 대한 관심은 끊이질 않는다.
이는 비단 현대의 트렌드에만 해당되는 게 아닌, 서양건축사를 관통해 이어져온 양상이다.
고전을 단순히 차용하거나 ‘느낌적인 느낌’을 복제한 건축은 오래 회자되지 못한다.
그 지역과 문화의 특성을 창의적으로 구현하려는 노력이 서울 어딘가에도 필요하다.

서울 건축 읽기 관련 이미지1, 2 젊은이들의 창업을 재래시장으로 적극 끌어오며 건축적·디자인적으로도 변화를 줘 공간의 의미를 살리고 시민의 호응도 얻은 광주 송정역시장.
3 지역적인 특성을 살리지 못한 피상적인 복고 콘셉트 차용으로 인기를 잃은 중국 닝보시 와이탄 거리.

고전적 복원 vs. 창조적 복원

건축에서 복고의 움직임은 끊임없었다. 서양 건축사의 흐름을 보더라도 로마 전성기에는 그리스의 기둥이 차용됐고, 르네상스 때에도 프랑스의 계몽주의의 물결에서도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적 양식은 끊임없이 차용됐다. 18세기 산업혁명 후 양산된 철강산업에 의해 건축의 구조가 급진적으로 발전할 당시 프랑스의 건축가 비올레 르 (Viollet le Duc)은 스스로 두 갈래의 건축 작업을 하고 있었다. 1830년경에 프랑스에서 유행한 고딕 건축의 복고적 경향에 맞추어 많은 복원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우리도 알 수 있는 유명한 작품으로는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 몽생미셸 등이 있다. 그는 당시 영국의 산업화에 반대하며 고딕 건축의 모든 면, 특히 형제애를 보이며 협동적으로 돌을 쌓아가는 모습에 반한 존 러스킨(John Ruskin)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그러나 존 러스킨과 비올레 르 의 복원 방법은 상반적이었다. 러스킨은 원안 복원에 힘을 썼고, 르 은 창조적 복원, 즉 상상에 의한 복원도 마다하지 않았다. 상상에 의한 창조적 복원 작업은 철강 산업 발전 시기에 나온 철 구조를 적극적으로 이용한 계획안에서도 드러난다.

옛 것을 ‘어떻게’ 살려야 할까

사실 이 부분이 현재까지 논쟁이 되는 주요한 이슈이며 복원을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필자가 대학에서 공부하던 1990년대 초에도 ‘한국성’에 대한 논의는 전통 건축의 계승 방법에 기반했다. 기와지붕이나 돌담 등은 흔히 적용될 수 있었지만 목조 구조와 지붕은 본격적인 적용이 왠지 낯간지러운 타이밍이었다. 1990년대는 호황의 기운에 도심 한옥을 철거하고 근린생활시설이나 다세대주택을 짓는 분위기였다. 한옥 지역에 살더라도 헌 집을 부수고 5층 이하의 새집을 짓는 것이 대세였고, 북촌에도 한옥 건물이 반절 이하로 줄어들게 됐다. 이런 맥락에서 1993년에 지어진 강남구 논현동의 ‘수졸당’은 주위와는 다른 용적을 지닌 주택이었다는 점이 특별하다. 호황의 분위기 속에서 그 당시 유행을 따르기보다는 문향을 지닌 사람으로서 자존심을 지키는 데 힘쓴 결과였다. 현대적으로 바뀌었어도 수졸당은 골목에 면한 사랑방에 친구들을 부담 없이 맞이할 수 있는 구조였다. 마치 그 옛날의 양반집처럼 말이다.
그후 IMF 체제는 지역경제의 파탄과 더불어 그동안의 개발과 투자에 대한 맹신을 재고하게 했다. 개발 이면에 있던 동네의 가치, 역사에 대한 관심 등으로 ‘북촌 가꾸기’가 시작됐고, 몇 년 후 관광이라는 코드와 맞아떨어져 현재 북촌은 다양한 이해관계로 유지되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뜨내기손님을 잡기 위한 음식점들이 들어서서 건축적 분위기보다는 맛집 트렌드를 따르게 되었다.
서울의 기존 역사도심지구인 종로구 인사동, 가회동 등의 건축디자인 가이드라인이 처음 시행됐을 때는 지역에서 새롭게 시작되는 익명의 건축적 특징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었으나 시간이 갈수록 이는 오히려 새로운 건축적 창조를 막는 걸림돌이 됐다. 가이드라인이 옛것을 새롭게 번안해내는 건축적 상상력을 막기 때문이다. 새롭게 설정되는 역사도심지구인 장충동 등 사대문 안의 구역은 같은 방식보다는 다른 창조적인 대안이 나왔으면 한다.
실제로 한 지역이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되는 모습은 흡사 디자인 가이드라인이 적용된 것 같은 분위기가 많이 나기도 한다. 디즈니월드의 에프콧(EPCOT)은 세계의 마을이라는 콘셉트로 테마화된 거리의 원형이다. 디즈니의 이상적인 확장과는 달리 실제로는 그곳에 가야만 즐길 수 있는 테마파크적 성격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으며, 세계의 모든 특화거리의 모델이 되었다. 그러나 젠트리파이(Gentrify)된 특화거리일지라도 망할 수 있다. 실제로 중국 닝보시의 와이탄 거리는 개점휴업 상태다. 과거를 박제한 것처럼 복고 느낌을 복원하고 이국적인 먹거리가 있는 곳은 외국인의 왕래가 뜸해질 뿐만 아니라 자국인들의 흥미도 끌지 못한다.

지역성을 창조적으로 취한 건축을 기대한다

바로 며칠 전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2016년 미국건축사 연례회의(AIA Convention)에서 네덜란드 건축가 렘 쿨하스(Rem Koolhaas)는 그로서는 처음으로 건축적 보존에 대해 언급했다. 보존에 관계된 설계 프로젝트는 이전 문화와 정신세계에 새로운 차원을 더하는 것이고, 그동안 추구해온 세계화에 대해 재고해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했다. 또한 유럽에 국한해서 보더라도 국제적으로 난민이 증가하는 시대에 건축의 사회적 책임도 중요하다고 느끼며, 대가적 건축가의 출현보다는 사회에 새로운 생각기반(Platform)을 전파할 수 있는 건축가의 출현을 기대했다. 요약하면, ‘세계화’와는 다른, ‘지역적 보존’도 중요하며, 보존을 통해 사회적 이슈에 관심을 돌리자는 내용이다.
보존을 보존 그 자체에 충실하기보다는, 한 차원 위의 다른 프레임의 기반에서 주무를 수 있는 변화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최근에 이슈가 된 광주의 송정역시장과 평창의 봉평시장의 경우 젊은이들의 창업, 대기업의 중소기업 살리기 운동, 디자인된 가게 내·외부를 통한 재래시장의 느낌 살리기, 야시장의 유행 등에 의해 많은 이들이 찾고 있다고 한다. 반면,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다고 지역 자생적인 콘텐츠와 결합하지 않은 야시장들은 점점 운영 시간을 줄이고 있다고 한다. 맛집, 먹거리를 중심으로 사람들의 움직임이 일어나는 현상은 진리인 듯하다. 그것도 특정 나이대에서 말이다.
건축적 보존과 변형을 통해 순식간에 형성되는 먹거리 문화의 배경을 만들기보다는 눈에 띄지 않더라도 젊은이들의 창업이나 혁신이 이루어지는 커뮤니티를 만들 수 있을까? 코펜하겐의 운하를 돌아다녀보면 목조 창고나 오래된 건물 안에 업무 환경이 펼쳐지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상하이의 예술가 장소 M50은 여행객의 명소 티엔즈팡과 달리 조용하다. 예술가들의 작업 인큐베이터 M50은 관광에 초점을 맞춘 티엔즈팡과 천지차이다. ‘어디가 뜬다’ 하는 얘기는 복고에 대한 맹신과 동격이 아닌가 싶다. 시각적 안도감과 장관을 바라는 마음, 다시 말하면 눈과 입이 즐겁고자 하는 본능, 또다시 말하면 복고 맹신과 맛집 탐방 행위는 정신적 지형의 형성과 지적인 창조력의 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것으로 재조준되어야 할 것이다.문화+서울

글 송하엽
중앙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미국건축사. 저서로 <랜드마크; 도시들 경쟁하다> <파빌리온, 도시에 감정을 채우다> <표면으로 읽는 건축>이 있으며, 서울건축문화제에서 ‘담박소쇄노들: 여름건축학교’ ‘한강감정: 한강건축상상전’을 기획했다.
사진 제공 송하엽, 1913송정역시장 페이스북(www.face book.com/1913 songj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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