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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호

오디션 프로그램의 끝판왕 <프로듀스 101> 당신의 소녀에게 투표했나요
엠넷의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은 방송 기간 연일 화제를 낳으며 인기를 끌었다. 아름다운 10~20대 소녀들이 재능과 노력을 한껏 발휘해 노래와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시청자의 선택을 받아 가수로 데뷔하는 포맷. 여기에는 한국인의 취향과 욕망, 가치는 물론 불공정한 구조까지, 한국 사회의 면면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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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의 완전체가 나타났다

1년간 가장 많은 영화를 제작하는 나라는 미국이 아닌 인도다. 흔히 ‘발리우드(Bollywood, 봄베이와 할리우드의 합성어) 영화’로 통칭되는 인도 영화는 관습과 변화라는 서로 다른 가치관의 대립을 다루는 경우가 많으며, 스토리와는 별개로 뮤지컬 형식의 화려한 군무를 보여주기 일쑤다. 이러한 특성은 영화를 대하는 인도 사람들의 태도에서 기인한다. 인도인들은 영화에서 단순한 유희만이 아니라 고단한 현실을 위무하는 치유와 안식까지 함께 얻길 바란다. 말하자면 그들은 3시간이라는 비교적 긴 러닝타임 동안 인생의 희로애락을 한꺼번에 ‘체감’하길 원하는 것이다. 이런 인도인들의 태도는 발리우드 영화를 굉장히 이질적인 장르로 만들어냈다. 덕분에 오늘날 발리우드 영화는 인도인들의 가치관을 오롯이 담아낸 문화로 평가받는다.
발리우드 영화가 일정 부분 인도인의 속성을 대변한다면, 한국인의 특성은 급변하는 방송에서 읽어낼 수 있다. 한동안 갖가지 오디션 프로그램이 각광받더니 ‘쿡방’ ‘먹방’이 바통을 이어 받았고, 최근에는 인테리어를 다루는 ‘집방’이 점차 떠오르는 추세다. 물론 오디션 프로그램 열풍이 예전만은 못하지만 무한경쟁 사회의 일면을 반영하는 양 여전히 다양한 방식의 서바이벌 프로그램 또한 꾸준히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중에서도 최근 가장 뜨거운 프로그램은 단연 엠넷(Mnet)의 <프로듀스 101>이다. <프로듀스 101>은 연예기획사의 아이돌 지망 연습생 101명이 경연을 벌여 최종 11명을 선발, 국민 걸그룹을 구성하겠다는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한동안 주춤했던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의 불씨를 되살렸을 뿐만 아니라, 그 즉시 과거 <슈퍼스타K>(Mnet)나 (SBS) 등의 인기에 견줄 만한 화제의 프로그램으로 떠올랐다. 실제로 지금까지 존재한 모든 오디션 프로그램의 집약체, 나아가 완전체를 자처하듯 한국인이 좋아하는 요소는 모두 쓸어담은 것처럼 보일 정도다. 발리우드 영화가 인도인의 특성을 대변하는 문화라면, <프로듀스 101>은 오늘날 한국과 한국인의 모든 것을 담아내고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라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닐 것 같다.

한국인이 열광하는 요소가 총망라된 세계

<프로듀스 101>이 기존의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과 다른 점은 우선 참가자들의 면면에서 찾을 수 있다. 기존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의 참가자들이 대부분 아마추어 음악인이었던 것과 달리 이들은 이미 연예기획사에 소속돼 있는 ‘준(準)연예인’이다(물론 개중에는 소속사가 없는 개인 연습생도 있다). 참가자 모두가 아이돌 그룹이라는 비교적 협소하고도 분명한 목표를 추구한다는 점도 특별하게 작용한다. 일정 수준 이상의 음악적 자질만이 아니라 춤과 외모 또한 이들이 갖춰야 할 중대한 덕목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프로듀스 101>에는 심사위원이 없다. 오로지 시청자들의 투표만으로 당락이 결정되는 것. 참가자들은 매번 주어진 미션(대부분 합동 공연으로 이루어진다)을 통해 자신의 실력을 보여주고, 미션이 완료되면 지금까지의 득표 수에 따라 정해진 수만큼 탈락한다.
기본적으로 그동안의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의 형식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는 만큼 <프로듀스 101>에는 인기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요소가 모두 담겨 있다. 주어진 미션을 완벽히 수행하는 실력자들의 뛰어난 면모를 보여줌과 동시에 경쟁과 협력을 동시에 자극함으로써 하모니와 불협화음의 재미를 동시에 유발한다. 자연히 10대, 20대 초중반의 어린 여성 참가자들은 극한의 압박감에 시달리며 이를 슬기롭게 헤쳐가거나 혹은 스스로 무너지기 마련이다. 제작진은 시청자로 하여금 참가자에게 훨씬 이입하기 쉬운 구조를 취하며 이 과정을 더욱 면밀히 보여준다. 마치 이겨내든 무너지든 어쨌든 재미있을 거라고 말하는 듯하다. 게다가 평가의 절대 기준이던 심사위원을 아예 배제함으로써 보다 공정한 게임을 추구한다는 인상을 더욱 적극적으로 풍긴다. 그동안 정직한 게임에 목말랐던 시청자들은 외모나 나이같은 조건들을 배제한 채 오로지 개인의 역량으로 승패를 가른 오디션 프로그램에 지속적으로 환호를 보냈기 때문이다. 눈물의 드라마 역시 빠질 수 없다. 심지어 <프로듀스 101>에서는 거의 1분에 한 번씩 울음이 터져 나온다. 소녀들은 기뻐서 울고, 슬퍼서 울고, 힘들어서 울고, 서러워서 울며, 안타까워서 운다. 여기에 더해 참가자 전원을 아이돌을 지망하는 어리고 예쁜 여자들로 구성해 지금까지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는 볼 수 없었던 ‘플러스 알파’까지 갖췄다. 마침내 외모지상주의마저 아무런 저항 없이 용인되는 세계가 완성된 것이다.

공정함이란 없다, 한국 사회가 그렇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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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이런 점만이 한국인의 습성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이합집산을 통해 다양한 미션을 준비하는 사이에도 이들은 끊임없이 시청자에게 평가받는다. 심사위원을 완전히 배제한 결과 춤과 노래 실력만이 아니라 성격이나 인품마저 어느덧 당연하다는 듯 심사의 대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를 장려하고자 제작진은 ‘몰카’를 통해 이를 더더욱 충분히 보여준다. 정치인에게나 적용되어야 할 잣대를 고작 연예인에게 요구하는 우리네 특성이 여과없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또한 가장 공정한 게임을 하고 있다는 겉모양새와는 달리 카메라에 비치는 횟수나 다루는 방식도 참가자마다 천차만별이다. 이른바 ‘악마의 편집’을 통해 본의 아니게 비판 여론에 휩쓸린 연습생이 있는가 하면, 누가 봐도 실력은 모자라지만 적당한 성장 드라마로 포장해 월등한 인기를 누리는 참가자도 있다. 스포츠가 아닌 이상 이 정도의 불공정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만, 카메라에 비칠 기회조차 별로 없었던 몇몇은 실력을 보여주기도 전에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마치 연줄이나 ‘빽’, 혹은 운이 곧 실력이라는 한국 사회의 면면을 그대로 투사하고 있는 것만 같다.
이 밖에도 <프로듀스 101>은 참가자들의 출연료를 ‘0원’으로 못 박았을 뿐 아니라 방송 후 어떠한 사유로도 민·형사상 법적 청구를 제기할 수 없다는 계약서로도 구설에 올랐다. 이런 불공정 계약을 감수하고도 소녀들은 모험에 임했다. 아니, 임할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몇 년 더 연습해야 데뷔할 수 있을지, 데뷔한다 해도 지금 같은 아이돌 포화 시장에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이나 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이들에게 이 기회는 무엇보다 소중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들은 절박하다. 그렇게 힘 있는 자들은 절박한 이들이 벌이는 서바이벌 게임을 관장하며 돈을 번다. 그리고 나머지는 여기에서 재미와 위안을 얻는다. 예쁘고 재능있는 소녀들의 노력과 성장, 승리를 지켜보는 것은 그만큼 즐거운 일이니까. <프로듀스 101>이야말로 오늘날 한국 사회의 명암을 모두 담아낸 참으로 멋진 우화다.문화+서울

글 강상준
등의 매체에서 줄곧 기자로 활동하면서 영화, 만화, 장르소설, 방송 등 대중문화 전반에 대한 글을 쓰며 먹고살았다. <위대한 망가>를 썼고, <매거진 컬처> <젊은 목수들>을 공저했으며, <공포영화 서바이벌 핸드북>을 번역했고, <좀비사전> <탐정사전>을 기획, 편집했다. 현재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겸 프리랜스 편집기획자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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