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의 매혹과 괴로움
웹진 [비유] 47호 포스터
비평 특집으로 꾸려진 웹진 [비유] 47호에는 강수환·강희정·박서양·성현아·이연숙·최가은 평론가의 글이 실렸다. 주제를 특정하지 않고 주어진 지면에 비평가들이 쏟아내는 말들이 자유로워 재미있다. 강수환 평론가는 대학에서 비평을 강의한 경험을 통해 유튜브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매체 시대의 비평 을 진단한다. 그리고 한국문학장 내의 전통 비평이 사유해야 할 문제를 짚는다. 박서양 평론가의 글도 흥미롭다. 그는 지난 7월 ‘문장웹진’에 발표한 자신의 글을 이어 쓴다. 마감일에 맞춰 글을 마무리하면 뒤늦게 찾아오는 “‘마감 이후’의 가능성”을 이번 지면을 통해 실험하고자 한 것이다. 강희정·성현아 평론가는 비평이 있어야 할 ‘자리’를 물음으로써 비평의 사회적 역할을 묻는다. 최가은 평론가는 비평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문단의 구조 문제를 톺아본다. 이들의 사유를 따라가며 진지함에 놀라고 유연 함에 감탄할 줄 알았지만 때때로 웃게 될 줄은 몰랐다. 나는 특히 이연숙 평론가의 글을 즐겁게 읽었다.
“나는 내 ‘일’이라는 것이 내게 있어 거의 유일하게 의미를 가지는 존재임을 안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이 ‘현실 세계’에서의 유용성과 효용성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도 안다.”
이연숙 <막간 intermission> 부분
최근 문학 팟캐스트를 통해 추천받아 프레드리크 셰베리의 《파리덫》을 읽고 있다. 스웨덴의 한 섬에서 파리를 연구하는 학자의 에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나는 자주 웃는데 이런 대목 때문이다. “우리가 처음 여기에 왔을 때 나는 당연하게도 글을 쓴다고 말했는데 섬에 사는 모든 여자들이 내 아내를 너무 딱하게 여겨 그다음부터는 생물학자라고 내세우고 다녔다. 그게 그렇게 됐다.” 파리를 채집하고 관찰하고 관련 논문을 읽는 것이 프레드리크 셰베리의 본업일 터인데, 아무리 봐도 그에게 있어 거의 유일하게 의미를 갖는 저 일들이 그와 아내를 먹여 살릴 것 같지는 않다. 글쓰기 노동은 고정 수입도 기대하기 힘들지만 노동 가치가 돈으로 잘 환원되지도 않는다. 실제로 글을 쓰기 위해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것 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글쓰기와 관련된 일에 바쳐야 한다. 평론가는 파리 대신 문학을 연구할 뿐이므로 이연숙을 읽으며 《파리덫》의 문장을 떠올린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불행하게도 글 쓰는 일에 의지해 생계를 꾸릴 수 없는 작가들은 강의를 하거나 기관에 사업을 신청한다. (프레드리크 셰베리 역시 위 인용한 문장 뒤에 이런 말을 덧붙였다. “풍요로운 자연환경으로 널리 알려진 섬에 사는 생물학자라면 시시때때로 멍텅구리들에게 걸려오는 전화를 감수해야 한다. 그네들도 나를 같은 부류로 여기는 것 같다.” 여기서 ‘멍텅구리들’이란 허술하고 허황된 생각으로 국가에서 사업 지원금을 얻어보려는 다른 학자들을 말한다.) 이연숙 평론가 역시 지원 사업을 통해 글 쓰는 삶을 유지하기 위한 생활비를 마련하는 듯하다. 글 쓰는 일, 글을 쓰는 데 필요한 일에 돈 버는 일이 더해진 삶. 이에 관한 이연숙의 체념적(?) 자기 분석은 다음과 같다. “이제 나는 나의 쾌락이, 곧 성과에 대한 집착과 중독적 자기 착취를 재생산할 수밖에 없다는 비판에 아무런 이의 제기를 하지 않는다.”
성과사회의 부드러운 ‘제안’-‘할 수 있음’을 계속할 수 있는 주체이든, 또는 ‘할 수 있음’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된’ 주체이든 간에, 우리 시대의 가장 중대한 문제가 우리 내부의 ‘정신적 탈진’이자 ‘몰락’임은 자명한 사실이자, 무엇보다 고통스러운 진실이다.
이연숙 <막간 intermission>
“아무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어찌나 어려운지.” 단지 자신을 돌보기 위해서 모든 것을 멈춰야 하는 순간에도 성과사회에 길든 글쓰기 노동자는 자기 앞에 놓인 일을 계속한다. 직업과 생활을 이어가기 위한 지리멸렬하고 관료주의적인 잡무로 인해 정말로 탈진하기 전까지 말이다. 돌봄도 사랑도 모르겠고 모든 것을 그만두고 “그저 지루하고만 싶다”는 그의 문장을 읽을 땐 내 속을 들킨 것만 같아서 즐겁게 피식거리며 읽는 중에 한숨을 쉬고 말았다. 그가 말하는 저 괴로움이 자기를 돌보는 데 실패해 왔다는 고백으로 들려서 함께 마음이 아팠다.
글 김잔디 [비유]편집자 | 사진 제공 웹진 [비유]